"살아남은 가족까지 다시 죽인 국가의 만행"... '4·3연좌제' 피해 통한의 증언

제주방송 신동원 2023. 3. 3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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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 제22회 증언본풀이 마당 열려

"'억울한 죽음마저 이념의 탈과 누명까지 씌워 또다시 살아남은 가족까지 죽여버린 국가의 만행'이 연좌제의 정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 행사 인사말 中)

4·3연좌제 피해자 양성홍 유족.


가족이 희생당한 것도 모자라 남아남은 가족까지 수십 년 넘게 피해를 받아온 4·3 연좌제 피해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제주4·3연구소는 오늘(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스물두 번째 증언본풀이 행사를 가졌습니다.

올해 주제는 '4·3, 재심과 연좌제 창창한 꿈마저 빼앗겨수다(빼앗겼습니다)'.

4·3 당시 아버지를 잃은 양성홍(76) 유족은 연좌제 때문에 어린 시절 꿈마저 포기해야 했습니다.

양씨의 아버지 양두량 씨는 4·3이 발발 직전 전도적으로 벌어진 3·10 총파업의 주동자로 몰려 1949년 군사재판에서 7년형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행방불명됐습니다.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수재였던 양씨의 아버지 양두량 씨는 당시 제주도에 하나뿐인 고등교육기관인 제주농업학교에 다니다 4·3의 광풍 속에서 고초를 겪다 행방불명된 것인데, 그의 가족들도 무사하진 못했습니다.

제주4·3연구소 제22회 증언본풀이


양씨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 경찰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고문이 혹독했는지 경찰서에서 집으로 올 때는 기어 올 지경이었고, 이후에도 후유증 때문에 고통을 받았습니다.

양씨는 "어머니 고문당한 얘기를 들어보면 다리에다가 나무를 끼워서 막 밟고 그랬다는 것이다"라며, "우리 외삼촌이 그때 3・10 총파업 서부 주동자로 알려졌는데 경찰들이 가족 관계 알고는 저것도 오라비 닮아서 지독한 년이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라산으로 피신했던 아버지가 당시 군·경 당국의 회유로 산에서 내려와 4·3 당시 최대 수용소였던 제주주정공장에 갇히게 됐는데,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을 남편에게 보여주려고 3살이던 양씨를 안고 수 차례 주정공장으로 먼 걸음을 했습니다.

군사재판을 받은 아버지는 대전형무소로 이송된 이후 몇 차례 편지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다가 연락이 끊겼습니다.

(사진 맨 앞줄 오른쪽부터) 오늘 행사에서 증언을 한 오희숙, 계숙, 기숙 유족


4·3 당시 젖먹이였던 양씨도 연좌제의 굴레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양성홍 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4·3으로 희생돼) 집안에 진로를 얘기해 줄 어른이 아무도 없었다. 육군사관학교에 가려고 마음을 가졌는데 동네에 법학과에 다니는 선배가 연좌제 때문에 육군사관학교는 커녕 공무원도 안 된다고 얘기를 해줬다"며 "선배가 그 얘기를 했는데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양씨는 제주지역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창창한 꿈을 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씨는 또 "1970년대에 선거관리위원회에서 6개월쯤 다니다가 연좌제 때문에 그만뒀다"라며 "선거관리위원장이 법원장이라던가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나중에 그만두라고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양씨는 노인이 된 후에야 처음으로 소리 내어 '아버지'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 봤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보니까 거울을 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아버지, 할아버지 말 한 번 불러본 적이 없었다"며, "2018년도에 대전 골령골에서 진혼제를 할 적에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소리 내서 불러봤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대전시 동구에 위치한 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8일부터 7월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군·경에 의해 희생된 학살터입니다.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수형인들도 이곳에서 희생됐는데, 4·3으로 대전형무소에 갇혔던 다수 수형인들도 이곳에서 학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양씨의 아버지 양두량 씨는 지난해 8월 30일 4·3직권재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사진 맨 앞줄 왼쪽부터) 강상옥 유족, 양성홍 유족,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


양씨 외에도 아버지가 희생되면서 사위인 남편까지 연좌제 피해를 겪었던 오희숙(86), 계숙(79), 기숙(77) 세 자매의 이야기, 지은 죄 없이 관공서와 경찰을 피해 다녔다는 강상옥(74) 유족의 이야기가 연좌제 피해를 겪어온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흘러나왔습니다.

한편,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은 "저는 연좌제 정의를 이렇게 내리겠다. '억울한 죽음마저 이념의 탈과 누명까지 씌워 또다시 살아남은 가족까지 죽여버린 국가의 만행'이 연좌제의 정의라고 저는 생각한다"며 "4·3이 끝난 뒤 가족들에게 부모가 4·3과 연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폭도, 빨갱이라는 사상적 낙인이 찍혀 연좌제 피해를 겪어야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연좌제 피해는 이번 4·3사건 추가 진상조사에 포함됐다. 연좌제 피해를 어떻게 당했는지 알아보는 진상조사와 명예회복까지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강조하며 "오늘 증언본풀이 마당에서 속 시원하게 속에 있는 마음 다 표현하시고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치유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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