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조공 외교’를 아십니까

천남수 2023. 3. 3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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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질서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신 냉전시대라고 할 수 있는 미·중 간의 대립과 갈등은 남북 관계와 한미일, 북중러 등 동북아 정세에 직접젹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2017년 중국 언론들은 “중국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일본이 미국에는 ‘굴종 외교’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본의 대(對)미 저자세 정책을 직격한 것이다. 이에 미국도 중국이 남중국해 주변 국가들을 ‘조공 국가’처럼 대한다고 비난하면서 맞불을 놨다. 중국이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에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당시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 패권을 두고 힘겨루기할 때, 당사국인 일본이나 남중국해 주변 국가들은 졸지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조공(朝貢). 한자 조(朝)는 ‘아침’을 뜻한다. 역사적으로는 소국이 대국의 조회(朝會)에 참석해 예를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조회는 학교에 가면 한자리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거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지시사항을 듣는 자리였다. 왕조시대에는 벼슬아치들이 정전에 모여 임금에게 문안드리고 정사를 논하던 자리였고, 힘이 약한 나라의 왕족이나 사신이 대국(大國)의 조회에 참석해 황제에게 예를 갖추는 것도 ‘조(朝)’다. 한자 공(貢)은 ‘바친다’라는 뜻이다. 백성들이 그 지방에서 나는 특산물을 조정에 바치던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국이 대국에 바치는 물품 역시 ‘공(貢)’이라 했다. 이 두 글자가 합해진 조공은 제후국이 황제국에 바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공을 두고 ‘조공 외교’, ‘조공 무역’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한다. 조공 관계가 반드시 강대국에 의한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는 취지다. 이를테면 약소국 스스로 종속적이면서 불평등한 관계를 감수하면서도 실리를 위해 이를 수용하고, 나아가 사상적 가치를 공유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또한 조공 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 사이의 무역거래도 일방적으로 수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경제적 관계가 이루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으로 고려가 잠재 적국이었던 거란을 견제하기 위해 송나라와 조공 관계를 유지했던 것도 엄혹한 외교 현실과 실리를 찾는 책략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과 영토, 주권이다.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영토 침탈을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고, 주권자 국민의 권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국가가 아니다. 사진은 지난 3월 16일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기시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연합뉴스)

조선 시대를 관통했던 사대(事大)주의는 조공 외교의 이념적 배경이 됐다. 당시 사대는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에서 약소국이 강대국을 섬기는 조공 관계를 기초로 하는 외교정책이었다. 소국이 대국을 섬기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며, 대국은 소국을 어질게(仁) 대함으로써 천하가 유지된다고 했다. 조선의 기본 외교전략인 큰 나라를 섬기고 이웃나라와 교류한다는 ‘사대교린(事大交隣)’이 그것이다. 당시 조공 관계가 “결코 자기보존을 위한 자율성이 상실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유연한 외교 수단으로서 양국 간의 힘의 관계를 완화시키기 위한 외교적 수사(정용화, 사대중화질서 관념의 해체 과정)”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꽤 있다.

그러나 조공 외교는 결국 강대국에 예를 다하면서 물품을 바친다는 점에서 굴종 외교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다. 조선 시대 은혜로운 중국 사신을 영접한다는 뜻으로 세운 영은문(현 독립문)이 이를 상징한다. 영은문을 세운 태종은 “조금이라도 사대의 예를 잃어서는 안되며, 마땅히 왕보다 높여 지성으로 천사(天使)를 섬겨야 한다”고 했다.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온 명나라 사신이 영은문에 도착하면 왕이 직접 나와 사신과 맞절을 하고 칙서를 받는다. 명나라 사신 대부분이 내관이었음에도 왕은 깎듯이 예를 갖췄다. 대접을 잘 받았을 때 ‘칙사대접’을 받았다는 말도 예서 유래했다.

명나라와의 조공 과정에서 조선을 가장 어렵게 한 것은 수많은 여성을 공녀로 요구한 것이었다. 공녀에 차출되지 않으려고 혼인을 서두르는 것을 막기 위해 그 기간에는 금혼령까지 내렸다. 차출 대상은 13~35세 미혼녀였다. 그 나이의 딸을 둔 부모들은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여성들은 공녀 차출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얼굴에 상처를 내기도 하고,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기도 했다. 명나라로 끌려간 공녀들은 대부분 고관대작들의 성 노리개로 상납됐다. 이를 보면 외교라는 수식어만 붙었지, 백성들 입장에서는 ‘약탈 외교’였던 셈이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3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대일굴종외교 규탄 태극기달기 운동 행사에서 태극기 스티커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한·일 정상회담 이후 대일 굴욕외교라는 야당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병 기술에서 강제성을 희석하고, 독도가 고유의 일본 영토라고 주장한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원전 오염수가 배출되는 후쿠시마 수산물도 수입하라고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의 대일본 감정은 악화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우리 정부의 ‘조공 외교’에 호응하기는커녕 ‘적반하장’으로 답하는 일본을 규탄한다면서, 이런 사태를 몰고 온 윤석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교라는 수식이 붙어있지만, 본질적으로 약자가 강자에 의해 선택될 수밖에 없는 것이 조공 외교다. 공녀 차출과 위안부, 조공 물품의 일방적 요구와 일본의 반도체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수출규제는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어쩌면 이렇게 닮아있는지. 이를 보면 적당히, 선의로 할 수 없는 것이 냉혹한 국제관계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조공 외교가 실리를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굴종 외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과 영토, 주권이다.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영토 침탈을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고, 주권자 국민의 권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국가가 아니다. 사대주의에 따라 조공 외교가 필요했다고 강변하는 것은 약소국의 역사에 대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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