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반도체 보조금 신청 '스타트'...삼성·하이닉스 '시기 저울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신청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초과이익 환수·영업비밀 공개 등 각종 독소조항들이 곳곳에 깔려 있지만, 현실적으로 보조금 신청을 할 수 밖에 없다는게 업계의 판단이다.
3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이날부터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이하 칩스법) 보조금 신청 접수를 시작했다. 접수는 분야는 로직칩, 메모리칩 등 최첨단 제조시설이며, 현세대, 성숙노드 또는 후공정 제조시설은 6월26일부터 신청을 받는다. 지난해 8월 발효된 미국 칩스법은 반도체 등 시설투자에 50조원 규모 보조금과 최대 투자세액공제를 25%까지 해주는 걸 골자로 한다.
미국 상무부는 국내·외 기업들이 제출한 신청서를 토대로 △경제·국가안보 △투자계획의 상업적 타당성 △재무상태 및 투자이행 역량 △인력개발과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지원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보조금을 받을 경우 중국 등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주는 다른 국가에 투자가 10년간 5% 이내로 제한된다. 유지와 일부 업그레이드는 가능하다. 다만 이를 어기면 보조금은 환수된다.
문제는 독소조항이다. 미국 내 생산시설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익 일부를 공유해야 하고, 안보문제를 이유로 주요 공정공개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반도체 생산량·수율 등 기밀정보까지 대놓고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조건을 완화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렵다고 아예 외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1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패키징(후공정) 공장 건립을 약속했다. 미국 본토 내에 대규모 시설투자를 하면서 정작 바이든 미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꺼내 든 투자인센티브 패키지를 외면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일단 보조금 신청은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기나 조건은 함구한다. 반도체 보조금은 △의향서 제출 △사전 신청(선택) △본 신청 △기업실사 등의 절차를 거쳐 지급된다. 사전 신청은 의향서를 제출한지 최소 21일 이후부터 할 수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 2월28일부터 기업의 지원금 신청 의향서를 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미 상무부에 신청 의향서를 제출했는지 여부도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이와 관련한 움직임을 극비에 붙이고,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한 기업의 고위관계자는 "의향서 제출 여부는 공개할 수 없지만, 보조금을 안 받을 수는 없지 않겠냐"며 "보조금을 받기 위한 조건 등을 협상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도 "우리도 최대한 기다리다가 신청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29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와 관련한 고민을 털어놨다. 박 부회장은 "신청이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많이 고민해보겠다"며 "우리는 패키징이니까 전체 수율 데이터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생산) 공장을 지어야 하는 입장보다는 약간 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후공정으로 올 중순 관련 서류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반도체 업계는 4월 26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보조금 조건이 다소 완화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다.
미국 내에서도 반도체법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최근 미 상무부에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을 넘어선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반도체 보조금 조건을 수정하라고 촉구했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14명은 22일(현지시간)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에게 "불필요하고 당파적인 반도체 보조금 조건을 즉시 수정할 것을 촉구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서한에서 "많은 보조금 기준(NOFO)들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비용을 더 높이고 경쟁력을 떨어뜨려 의존적으로 만드는 등 법을 제정한 의회의 의도와 반대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동욱 기자 dwlim@mt.co.kr 이재윤 기자 mt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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