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죽음과 소멸의 공포
7년 전 한 대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저는 지금 죽음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며칠 전 죽음에 관한 꿈을 꾼 이후 죽음이 두려워졌습니다. 어차피 죽을 텐데 지금 고생하거나 즐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에 지배되어 저는 매우 무기력해져 있습니다. 몇 십 년을 더 사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 자살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이 학생이 느끼는 공포는 18년 전 나이 50을 바라보는 시점에 불현듯 필자에게 떠오른 두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가 궁금증의 핵심이자 두려움의 근원이었다. 내과의사로서 20년 넘게 환자에게 심폐소생술도 하고 많은 환자의 임종을 옆에서 수없이 봐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는 죽음을 늘 타자의 것으로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어서 내 존재와 이를 받쳐주던 모든 게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다. 밤에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을 겪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그러나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과 두려움에 대해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의과대학의 긴 교육 과정과 전공의 과정에서 배운 건 오로지 생물학적 죽음뿐이어서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고, 죽음에 대해 오래전부터 인류가 해온 철학적 사유 역시 죽음 너머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으면 나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이 깜깜한 암흑 내지 심연 속으로 사라진다니, 암울하고도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함과 막막함이 몰려들면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에 의지해 볼까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수십 년간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입각한 과학교육을 받아오면서 그러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끝없는 훈련을 받아 온 터라, 그때 내게 필요한 건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한 객관적 사실 자체였다.
그러던 중, 아내가 사다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사후생-죽음 이후의 삶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죽어감 그리고 죽은 후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이 책을 읽으며 단번에 해소되었다. 수십 년간 의료 현장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겪은 삶의 종말체험과 심장이 멎었다가 되살아난 환자들이 경험하는 근사체험의 수많은 실제 사례들을 목격하고 관찰한 후 쓴 책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신뢰할 수 있었다.
사망 판정을 받아 육체는 부패해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인간의 의식은 명료하게 유지될 뿐만 아니라, 눈이나 귀와 같은 감각기관이 없더라도 의식체는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경이로움은 내 인생 행로를 바꾸어 놓았다. 새로운 눈이 뜨이면서 시작된 죽음에 대한 탐색은 존재와 우주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켜 주었다.
죽음으로 자아가 완전히 소멸해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크나큰 두려움과 불안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사후에 의식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삶의 유한함이나 죽음의 예측불허성에 대해서도 더 이상 허망함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정현채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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