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학업'과 '일' 병행한 LPBA 신성 '손수연'

홍성완 기자 2023. 3. 3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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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학도의 꿈 잠시 접고 프로의 길 선택
입문 3년 만에 우승자들 꺾고 깜짝 8강
프로당구 선수 손수연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학업과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무리 좋아하는 분야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학업과 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는 여자 프로당구(LPBA) 선수가 있다.

대학생의 신분으로 LPBA 투어 8강까지 오르며 화제가 된 손수연(23.숙명여대)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8강까지 오르면서 LPBA 우승자 출신들을 꺾는 기염을 토해 더욱 주목을 끌었다. 2022~2023 프로당구 개인전 8차 대회인 '크라운해태 챔피언십 PBA-LPBA 투어' 32강 서바이벌에서 정상급 반열에 오른 임정숙(크라운해태)과 김세연(휴온스) 선수를 탈락시킨 것이다.

2000년생으로 3년여의 짧은 구력에도 불구하고 돌풍을 일으키며 LPBA의 또 다른 미래로 성장하고 있는 손수연을 만나 짧지만 강렬한 그의 당구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 동네 당구가 배출한 풋풋한 신인
    "당구장 오빠, 삼촌, 사장님들이 스승"

손수연은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함께 처음 당구장을 찾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당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저 친구들이 당구를 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보통 당구장을 가면 중대에서 4구를 치잖아요. 제가 친구들이랑 처음 당구장을 갔을 때 4구를 치는 모습을 보고 '당구란 게 저렇게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구경만 했어요. 그때 옆에 중대보다 더 큰 테이블에서 공 3개를 가지고 당구를 치시는 어른들이 계셨거든요. 그 분들 경기를 보고 있는데 4구보다 훨씬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뭐랄까, 그냥 멋있어 보였어요. 공 하나를 굴려서 나머지 2개의 공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맞히는 게 너무 신기했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가서 저도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그게 제 당구 인생의 시작이 됐죠."

손수연은 딱히 붙임성이 좋은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낯가림이 심한 편인 그에게는 서울 반포동 토박이였던 점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당구장에서 3쿠션을 치는 어른들이 동네를 오가면서 어느 정도 낯을 익힌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3쿠션을 배우고 싶다는 당돌한 여고생이 신기하면서도 기특했는지 당구장 어른들은 열과 성을 다해 당구 기술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실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그런데 3쿠션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정말 배우고 싶었거든요. 친하진 않았어도 동네에서 대부분 장사하시거나 익숙하게 마주치던 분들이다 보니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것 같아요."

프로당구 선수 손수연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스로 흥미를 붙여 배움의 열정을 장착한 손수연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그의 습득력은 어느 누구보다 빨랐고, 동네 어른들은 흥에 겨워 손수연에게 점점 더 많은 기술들을 전수해주기 시작했다.

"저는 딱히 누구한테 배웠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그냥 당구 잘 치시는 동네 삼촌들, 오빠들, 사장님들한테 배웠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분들하고 같이 밥도 먹고 친해지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죠. 저한테는 너무 고마우신 분들이죠. 사실 LPBA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분들 덕이라고 생각해요."

나날이 실력이 늘어가는 손수연에게 같이 당구를 치던 동네 지인이 프로선수로 도전해볼 것을 권했다. 꼭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좀 더 큰 무대에서 당구를 쳐 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손수연은 별다른 고민 없이 트라이아웃(선발신험)에 참가하기로 결정했고, 덜컥 합격하는 사고(?) 아닌 사고까지 쳤다.

"당시만 해도 제가 프로당구 선수를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당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당구를 가르쳐 주시던 삼촌들 중 한 분이 2021년 대전에서 열리는 LPBA 트라이아웃에 참가해 보라고 권해 주셨어요. 매일 시합하던 사람들이 아닌 실력을 갖춘 다른 사람들과 경기를 해보면서 스스로 당구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경험해 보라는 의미였죠. 저도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서 합격하고 와일드카드로 선택을 받아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된 거죠."

물 먹은 솜처럼 모든 것을 흡수하는 습득력과 함께 저돌적으로 배우려는 성향이 더해지면서 손수연의 재능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단순히 3쿠션을 즐기는 동호인 수준을 넘어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저를 가르쳐 주시던 어른들이 특정 공을 잘 친다는 이야기보다는 이해가 빠르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사실 고점자들은 어느 정도 자세부터 잘 잡혀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 뭔가 정석적인 건 아닌데 본인만의 방식으로 잘 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아직 머리가 말랑말랑해서 가능한 것 같기도 해요."

◆ '학업'과 '선수'의 기로에서 딜레마
    "깜짝 성적은 실력이 아닌 운" 자각

손수연은 학업과 프로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어려운 점들도 많았다. 특히 대회 참가 등 모든 일정을 스스로 챙겨야 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참가를 하지 못한 대회도 여럿 있었다. 짧은 구력으로 인해 친분이 있는 LPBA 관계자나 선수가 거의 없다는 점들은 제약 아닌 제약으로 다가왔다.

"이미 오래 전부터 당구를 치고 대회에 참여한 선수들은 서로 잘 알고 있잖아요. 관계자와도 다들 친분이 어느 정도 있더라고요. 저는 아직 잘 아는 분들이 없어서 혼자서 대회 일정이나 이런 것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봐야 해요. 제가 원래 그런 것들을 빠릿빠릿하게 못하다 보니 여러 부분에서 놓치는 게 많았어요."

2021년 6월 '경주 블루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 2021-2022 시즌' 개막전 당시 모습 ⓒ손수연 선수 제공

손수연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학업이었다. 관광학을 전공하는 그는 한 학기만 마치면 졸업이다. 일단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집중을 할지, 아니면 탄력이 붙은 프로선수 활동에 더 몰두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고민은 깊었지만 결론을 내렸다.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당구에 좀 더 집중하자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운이 따라주긴 했지만 어쨌든 8강까지 올랐으니 좀 더 집중해서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대학 생활과 병행하면서 당구를 쳐야 할지, 아님 당구에만 당분간 집중해야 할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거든요.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 거죠. 결론은 당구에 집중하기로 하고 졸업까지 한 학기 남았지만 휴학을 선택했어요. 무엇보다 공부는 재미없지만 당구는 너무 재미있으니까요.(웃음)"

손수연은 인터뷰 내내 당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왜 그렇게까지 당구가 좋은지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할 정도로 당구 자체에 대한 매력을 거듭 강조했다.

"당구는 정말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것 같아요. 처음에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는 보통 '길'이라고 하는 게 다 정해져 있는 건 줄 알았어요. 그냥 누가 더 많은 길을 외우고 있느냐에 따라 실력차이가 나는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거든요. 막상 배울수록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죠. 물론 공을 맞히는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하나의 답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미세한 차이로 많은 차이가 발생하니까 그것도 참 매력적이에요. 정말 알아갈수록 어렵다 보니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당구의 매력을 느끼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손수연은 본격적인 담금질을 위해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123당구클럽'으로 연습구장을 옮겼다. 자신을 키워준 기존 당구장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한 채 프로선수의 길을 다지기 위한 새로운 터전으로 대대전용구장을 선택한 것이다. 

"처음 제가 당구를 배우고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준 반포 구슬모아당구장 식구들을 생각하면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지금의 제가 이 자리에 있게 해준 분들이니까요. 그렇지만 좀 더 당구에 집중하기 위해서 지금은 용인까지 와서 연습하고 있어요. 대대전용 클럽이 필요했거든요. 이곳에서도 정말 많이 지원해주세요, 생각해보면 전 정말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에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LPBA트라이아웃을 소개시켜주신 분도 그렇고 처음 당구장에 같이 온 친구들도 생각나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절 여러모로 챙겨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손수연은 최근 8강에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기존 선수들과의 큰 격차를 실감하고 있다. 8강에 오른 것 자체가 '운이 좋았다'라는 객관적인 평가를 스스로에게 내렸다. '반짝' 성적에 우쭐하거나 자만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프로선수라는 자각을 할 때마다 부담감이 커요. 웬만한 프로선수들은 오로지 당구인의 길을 걸어오고 있잖아요. 혹시라도 저 때문에 그들이 쉽게 보일지 모른다는 부담 아닌 부담감이 크게 다가와요. 사실 저는 취미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온 게 지금까지 더 컸으니까요. 내가 어떻게 이런 자리까지 와서 그 쟁쟁한 선수들과 경기를 할 수 있는지 지금도 실감이 안 나요. 그래서인지 최근에 오른 8강은 정말 운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들어요."

최근 돌풍을 일으켜 잠시 화제가 되긴 했으나 냉정하게 보면 그는 아직 이렇다 할 성적을 내고 있진 않다. 본인에게 첫 시즌이었던 2021~2022 시즌에서 3번 대회에 참가해 모두 1회전에서 탈락했다.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22~2023 시즌에서도 참가한 2차, 6차 대회에서 역시 1회전 탈락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프로당구 선수 손수연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그러다 시즌 7차 대회였던 '웰컴저축은행 웰뱅 LPBA 챔피언십'에서 처음으로 1회전을 통과했으나 64강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곧이어 열린 8차 대회에서 8강에 오르는 기세를 보였지만 최고의 피지컬과 엄청난 연습량으로 유명한 백민주(크라운해태) 선수에게 완패를 당했다.

"처음 32강을 통과하고 토너먼트 경기를 하게 되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요. 경기 전에는 방송 경기이고 워낙 대단한 선수들과 계속 경기를 할 생각으로 들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 마음이 편했어요. 그 순간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8강이라는 자리까지 오른 것 같고요. 백민주 선수는 정말 잘 치시더라고요. 감탄만 하다가 경기가 끝난 것 같아요."

◆ "매일 꾸준하게 발전하는 것이 목표"
     전국 고수들 찾아가 실전 경험 도모

당장 거창한 목표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발전해 나가고 싶다는 것이 그의 작은 바람이다. 입문 경력이 상대적으로 짧다보니 아직 채워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냉혹한 프로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한 절박함도 뒤따른다.

"언젠가는 우승을 목표로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LPBA에서 살아남는 게 목표예요. 아직까지는 다른 선수들과 실력 격차가 크다는 걸 실감하고 있거든요. 구력이나 경험, 연습량 등 모든 부분에서 실력이 모자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선 프로생활에 집중하면서 제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려고요. 이제 128강부터 서바이벌 대신 토너먼트 방식으로 바뀐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좀 더 제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후에 4강을 목표로 해봐야죠."

손수연은 스스로 여러 부분에서 모자란 부분들을 채워나가기 위해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을 도모하고 있다. 특별한 비법은 없다. 전국에 즐비한 고수들을 찾아가 실전 경험을 쌓으려고 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연습으로 메꾸겠다는 당찬 의지를 내비쳤다.

"꾸준한 성적을 내는 선수들과 겨뤄 운 좋게 성적이 좀 나왔다고 해서 알아봐주시고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것 자체만으로도 저에게는 너무 감사하고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때문에 이번 8강이 한 번의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더 잘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다는 게 욕심이라면 욕심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가끔 여러 당구장을 다니거든요. 전국에 숨은 고수 분들이 많기도 하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다는 의도도 있어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절 알아보시게 되면 편하게 말도 걸어주시고 게임도 같이 하면서 한 수 가르쳐 주셨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프로당구 선수 손수연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seongwan62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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