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끝자락 대출

신찬옥 기자(okchan@mk.co.kr) 2023. 3. 3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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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구제 대출'이라는 게 있다. 최신 스마트폰을 사서 돈을 빌린다기에 '내구재 대출'인가 했더니 아니란다. 내가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이란다.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10년 전부터 있었던 불법 사금융, 소위 '깡'이다. 당장 현금이 급한 사람들이 100만원이 훌쩍 넘는 신형 스마트폰을 개통해 업자에게 건네고 바로 돈을 받는 식인데, 손에 쥐는 돈은 50만원이 되지 않는다.

스마트폰뿐인가, 뭐든 현금화할 수 있는 물건이면 다 '깡'에 활용된다. 요즘에는 종신·연금보험처럼 보험료가 비싼 상품에 가입시키고 1년 이상 유지하는 조건으로 수십만 원을 건네는 수법도 등장했다. 불법 사금융 업자들이 노리는 것은 대부분 수십만 원을 구하려는 사람들이다. 온라인 대부업체 사이트의 대출금액 최빈값(가장 많은 금액)도 40만원 내외라고 한다.

이들에게 스마트폰과 유심까지 넘겼다가 수백만 원을 날린 피해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스마트폰을 넘겨주는 바람에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피해를 보상받기는커녕 브로커 처벌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피해는 고스란히 대출자가 떠안아야 한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긴급생계비대출은 저신용자들이 이런 '불법지대'로 넘어가지 않게 붙들어주는 동아줄이다. 출시 전에는 한도가 50만원(최고 100만원)이라니 장난하냐, 금리가 연 15%라니 말이 되느냐는 비아냥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출시되니 긴 줄이 늘어섰고, 대출받은 사람들은 눈물까지 보이며 한숨 돌렸다는 반응이었다. 서울센터가 마감되어 대전까지 갔다는 사연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는 댓글이 달렸다.

긴급생계비를 받았다는 어떤 분이 "이제 '끝자락 대출'을 받았으니 다른 대출이 어려워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글을 올렸다. '끝자락 대출'이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지금은 인생 어느 페이지의 끝자락일 뿐 진짜 끝이 아니다. 지금 힘겨운 분들이 이 고비를 넘기고 다시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이 나오길 바란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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