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의의 쉼표] 보아의 20년, K팝의 20년

박대의 기자(pashapark@mk.co.kr) 입력 2023. 3. 3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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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부산에서 한국 가요계에 의미 있는 공연이 열립니다. '아시아의 별'로 불리며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온 가수 보아의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가 그것입니다. 앞서 3월 초 5000여 명의 팬들과 함께한 서울 공연을 성대하게 마무리하고 갑작스럽게 발표한 앙코르 성격의 공연이기도 합니다. 2000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 보아의 진짜 데뷔 20주년은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3년을 미뤄야 했던 팬들과의 축하 파티를 한 도시에서만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컸던 탓이겠지요.

서두에서 이번 공연이 한국 가요계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 것은 가수로서 보아의 인생 자체가 지금의 K팝이 완성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20년 동안 그가 불렀던 수많은 노래들은 많은 이들에게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보아가 노래마다 콘셉트와 장르를 바꿔가며 새로운 모습을 선사했던 것처럼, K팝도 긴 세월 속에서 변화를 거듭하며 성장해왔습니다.

23년 전 만 13세의 어린 가수로 이목을 끌었던 보아는 데뷔 1년 만에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드라마에서 기인한 한류 열풍이 가요계로 확산되면서 해외 활동에 나서는 가수들이 늘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이미 한국에서 자리 잡은 톱스타였습니다. 보아에게 당시 한류 스타들의 선행길은 국내에서 기반을 다질 새도 없이 바로 해외 활동을 시작하며 맨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걸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준 포장도로 정도였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시작은 지나치게 무모했을 것입니다. 누구도 걸어본 적 없는 길을 걷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은 현지화 전략이었습니다. 현지 작곡가가 만든 노래를 일본어로 부르며 일본 가요 시장에 연착륙을 모색했죠. 이를 위해 연습생 시절에는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만큼 일본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당시 일본 가요 역사상 여성 솔로 가수의 최전성기라는 시대적인 배경도 보아의 일본 진출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보컬 위주인 가수들 사이에서 격한 춤에도 노래에 흔들림이 없는 보아의 퍼포먼스는 J팝에서 보기 어려웠던 신선한 충격이었을 테니까요.

보아는 일본 진출 10개월 만에 발매한 첫 번째 앨범이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르며 기대 이상의 속도로 성장세를 보여줬습니다. 한국인 가수가 처음으로 세운 기록에 무모한 도전이라는 우려는 국위선양이라는 기대로 바뀌기 시작했죠. 이후 발매한 6개 앨범이 모두 차트 1위를 기록했고, 지금까지 일본에서 발매한 음반 판매량은 1000만장을 넘어섰습니다. 2009년에 선보인 미국 앨범도 한국인 최초 빌보드 메인 차트 입성의 성과를 거뒀죠.

지금의 K팝 아이돌이 해외 진출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이 보아의 영향이라는 것은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성격은 보아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국에서도 해외 팬들과 만날 수 있고, 우리말로 부른 노래를 그대로 해외 팬들에게 전할 수 있으니까요. 이것이 보아를 비롯해 해외 시장을 개척해온 수많은 K팝 가수들이 이룬 결실일 것입니다. 또 앞으로 K팝의 변모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박대의 문화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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