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발견] 광양만에서 확인한 동남권 메가시티의 현재
며칠 전 전라남도 순천 도서관에서 강연이 있었다. 나는 강연이 생기면 강연 앞뒤로 1박2일 정도 답사를 한다. 이번에는 광양만권 산업단지들과 새로이 조성 중인 택지개발지역을 주로 살핀다는 목표를 세우고는 답사하며 많은 분들과 말씀을 나눴다.
광양만 산업단지는 크게 북쪽의 광양국가산업단지와 남쪽의 여수국가산업단지로 이뤄져 있다. 북쪽 끄트머리에서 남쪽 끄트머리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분이 흥미로운 말씀을 들려주셨다. 나는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분께 요즘 택시 경기가 어떤지 여쭤본다. 택시를 타는 사람이 전체적으로 늘었는지 줄었는지, 특히 저녁에서 밤사이에 택시 이용자 수가 어떤지를 확인하면 그 지역의 경제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천 출장 전에 들렀던 대구와 목포에서는 택시기사분들이 공통적으로 "경기가 나쁘다"고 말씀하셨다. 대체로 어느 지역을 가도 자기 지역이 가장 경기가 나쁘다고들 하신다. 그런데 목포와 마찬가지로 전라남도에 속하기는 하지만 여러 개의 국가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는 이 광양만의 택시기사분은 "여기는 그래도 다른 지역보다는 낫죠"라는 반응을 보이셨다. "여수·순천·광양에서 번 돈을 가져가서 광주·목포가 소비하는 거"라는 택시기사분의 말씀은 특히 흥미로웠다.
이 기사분의 말씀은, 전라남도 동부인 광양만권에는 한국 유수의 국가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는 반면, 전라남도의 전통적인 정치 중심지로 간주되는 광주와 목포에는 산업시설보다는 관공서 및 연구기관 등이 많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의 경제적 낙후함을 이야기하면서 광주의 첫 산업단지인 본촌·송암산단이 1962년의 울산공업센터보다 16년 뒤인 1978년에 개발되기 시작한다는 지적이 이뤄지고는 한다(김일태 외 '광주경제지도').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남 서부의 경우고, 한국에서 울산에 이어 두 번째로 조성된 종합석유화학공업기지인 전남 동부의 여수화학단지(여천공단)는 울산공업센터로부터 불과 5년 뒤인 1967년에 기공됐다.
사람들이 흔히 "호남" "전라도"라고 말할 때, 그들의 머릿속에는 지난 100년간 두드러진 정치·행정·사회적 움직임을 보인 광주와 목포가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근대 전라도의 중심지는 도(道)의 이름을 만든 전북 '전'주와 전남 '나'주였다.
또 광양만권의 이른바 여순광은 전남 서부보다는 오히려 경남 서부와 동일 생활권을 이룬다.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이 전남 동부의 여순광, 그리고 경남 서부의 하동에 걸쳐 조성돼 있다는 것이 이를 상징한다. 또 순천부터 동쪽으로 부산 부전까지 이어지는 경전선 동쪽 구간은 이미 선로 개량이 끝나서 이들 지역 간의 교류를 더욱 편리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평소에 한국이 3대 메가시티로 구성돼 있다고 말씀드리고는 한다. 대서울(Greater Seoul), 중부권 메가시티, 그리고 부산을 가운데 두고 동북쪽 영일만에서 서남쪽 광양만까지 이어지는 동남권 메가시티다.
기존에도 동남권 메가시티라는 개념은 있었다. 하지만 기존에 동남권 메가시티를 주장한 정치인·행정가들은 우선 전라도를 배제하고 경상도 안에서만 권역을 설정하려 했다. 또 경상도 안의 도시·공단 지역과 농촌 지역을 아우르는 균형 발전을 염두에 두고 권역을 설정하려 한다. 하지만 내가 전국을 다니며 확인하는 현실은, 경상도 특정 지역 안의 도시·공단과 농촌 지역보다는 경상북도·경상남도·전라남도 일부 지역의 바닷가로 이어지는 도시·공단들이 더욱 비슷한 세계관과 삶의 양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인과 행정가들은 자신들의 시, 자신들의 군, 자신들의 도를 뛰어넘어 광역적으로 이뤄지는 움직임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시민들은 정치인·행정가들이 제시하는 지자체 테두리를 뛰어넘어, 길을 따라 여러 지역을 넘나들며 산다. 이렇게 시민 레벨에서 형성되고 있는 메가시티의 실체를 존중하고 후원하는 것이 지방 소멸과 수도권 집중 현상을 억제할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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