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학살자"…광주는 '전두환 손자'를 따뜻하게 품었다

최성국 기자 정다움 기자 이수민 기자 2023. 3. 3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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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원씨 전씨 일가 중 첫 사죄…5·18묘지도 참배
5월 단체 등 진정성 평가…"진상규명 앞장서 달라"
전 대통령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오후 광주 동구 구도청을 찾아 '옛 전남도청 복원 지킴이 어머니들'과 대화하고 있다. 2023.3.31/뉴스1 ⓒ News1 정다움 기자

(광주=뉴스1) 최성국 정다움 이수민 기자 = 1980년 5월 광주 학살 책임자인 고(故)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27)가 31일 오월의 역사가 녹아있는 광주 곳곳을 방문하며 할아버지의 죄를 대신 사죄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민주주의를 역행한 학살자'임을 인정하며 전씨 일가 중 처음으로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늦게 와 죄송하다"며 끊임 없이 머리를 숙인 전우원씨의 모습을 지켜본 오월 유족들과 피해자들, 광주시민들은 "이제라도 와 줘서 고맙다"며 그를 끌어안았다.

◇광주 찾은 전두환 손자…전씨 일가 첫 사죄 전우원씨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1층 리셉션홀에서 '5·18유족, 피해자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 공식 사죄 행보를 시작했다.

우원씨는 "할아버지 전두환씨는 5·18 앞에 너무 큰 죄를 죄인이자 학살자"라며 "5·18에 대해 이야기 하면 폭동이고, 우리 가족이 피해자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두환씨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했다. 가족들로부터 발포 명령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 모든 분들께 진심 어린 사죄를 드린다"며 유족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추모승화공간을 둘러본 우원씨는 5월 단체들과 곧바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는 글을 적었다. 전씨의 배우자이자 우원씨의 할머니인 이순자씨는 '남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평가해왔다.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며 작성한 방명록 글. 전씨는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고 적었다.2023.3.31/뉴스1 ⓒ News1 박준배 기자

우원씨는 김범태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사무소장과 함께 님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분향소로 발걸음을 옮긴 뒤 헌화·분향했다.

5월 단체, 5·18유족들과 함께 오월 첫 희생자 김경철 열사, 12세 나이로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전재수군의 묘, 행방불명자 묘역 등을 돌며 자신이 입고 있던 옷으로 묘비를 일일이 닦아냈다.

그는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 (국립묘지를 돌아보니) 더욱 제 죄가 뚜렷이 보였다. 겉옷으로 묘비를 닦았는데 더 좋은 것으로 닦아드리고 싶었다"며 "이번 방문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같은날 오후 3시에는 광주 동구에 위치한 옛 전남도청을 방문, 전남도청지킴이 어머니들 앞에서 큰절을 하며 또다시 사죄했다.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27)가 오월 영령에 참배하고 있다. 2023.3.31/뉴스1 ⓒ News1 정다움 기자

◇사죄하는 손자에 "고맙다" 끌어안은 오월과 광주

사죄를 받은 5·18유족들과 광주시민들은 오히려 우원씨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씨는 5·18기념재단과 국립민주묘지에서 연신 우원씨를 안으며 "큰 용기를 내 줘 감사하다. 그동안 얼마나 두려웠을지,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통이 뒤따랐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울먹였다.

또 "그간 얽힌 실타래는 차분하게 풀어나가고, 5·18의 진실을 밝혀 화해의 길로 나아가자. 내 아들을 안는 것 같다. 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5·18 가두방송의 주인공이자 구속자인 박영순씨는 우원씨의 손을 꼭 잡고 "오늘 보니까 어떠시냐. 5·18로 피해입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그런 사람들 위해서라도 지금처럼 진실 고백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5·18 시민군이었던 고(故) 권호영씨의 어머니 이근례 여사는 우원씨의 손을 맞잡으며 "열심히 진상규명 해가지고 광주의 한을 풀어달라. 끝까지 잘 해주셔라"고 부탁했다.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 이명자 여사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를 맞이했다. 이명자 여사는 '광주 내란수괴'로 지목됐던 5·18 사형수 고(故)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아내다.

이명자 여사는 "아까 제 남편 정동년의 묘를 찾아 옷으로 닦아준 것을 봤다. 진심으로 참배하며 묘를 닦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5·18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고(故) 박관현 열사의 누나인 박행순 여사는 친어머니처럼 그를 끌어안았다.

박행순 여사는 "언제든지 와서 이야기 나누자. 배고프면 이리로 와라. 늘 편하게 와서 '어머니 밥 주세요' 하면 우린 항상 열려 있으니까 내가 밥을 주겠다"고 이야기했다.

일반 시민들도 우원씨에게 '힘내라', '오래살고 볼일이다', '할아버지도 못한 걸 해낸다'는 말과 책과 손편지, 물 등을 선물로 건네며 격려했다. 일부 시민들은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오후 광주 동구 구도청을 찾아 '옛 전남도청 복원 지킴이 어머니들'과 대화하고 있다. 2023.3.31/뉴스1 ⓒ News1 정다움 기자

◇오월 단체 "진정성 보였다" 평가

오월단체는 전우원씨의 사죄 행보에 '진정성이 보였다'는 평가를 내렸다.

정성국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장은 "할아버지의 잘못을 사죄하기 위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방문으로 국민화합과 진상규명이 시작되길 바란다"며 "우원씨와 같이 다른 가족들도 용기를 내야할 때다"고 강조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도 "오늘 직접 유족과 피해당사자를 만나 순수하고 진정어린 사죄의 마음을 보였다"며 "이걸 계기로 지난 역사의 범죄 당사자나 그의 후손들이 전향적으로 고백·증언해 진상규명과 사죄, 용서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평가했다.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는 "우원씨가 만날 의사가 있다면 만나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서 "예전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도 사죄했는데 그때보다 더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전씨 집안이 광주에 끼친 엄청난 만행을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사죄하는 부분에 대해서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전씨 일가는 우원씨의 사죄를 병자로 몰아가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황일봉 5·18부상자회장은 "내일 일정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지만 우원씨가 오월어머니와 1대1로 만나 사죄할 것으로 보인다"며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우원씨가 계속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27)가 오월 영령에 참배하고 있다. 2023.3.31/뉴스1 ⓒ News1 정다움 기자

star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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