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예인들이 북해도에 가서 술자리 갖는지 납득이 되는가('수수행')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3. 3. 31. 17: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박2일’과 ‘런닝맨’ 사이에서 길을 잃다(‘수수행’)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코, D.O(도경수), 크러쉬, 잔나비(최정훈)의 라인업에 양세찬과 이용진이 사회를 본다. 만약 어느 축제나 공연이라면 흥행보단 질서유지가 먼저 걱정이 되는 화려한 명단이다. 그런데 이들이 일본 홋카이도로 떠난 SBS 신규 여행 예능 <수학 없는 수학여행>(이하 <수수행>)의 반향은 미미하다.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한 지표가 아니라고 해도 4회 동안 1%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유튜브 클립 조회수, 커뮤니티 언급량, 화제성 차트 등에서는 존재감 자체가 더욱 미비하다.

여행 예능 대범람의 시기에 <수수행>은 수학여행을 콘셉트로 꺼냈다. 여행 예능의 첫 시작은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출연자들의 간판을 잠시 내리는 일이다. <수수행>은 학창시절에 떠나는 수학여행을 모티브로 삼은 만큼 1992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을 중심으로 멤버를 구성했다. 각기 아티스트로서 탄탄한 입지를 가진 이들이 활동명이 아닌 본명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출연자들의 사이뿐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오도록 설계했다. 복불복 스타일의 게임과 퀴즈를 전개하면서 의도적인 반목과 투닥임이 있지만 10년 지기 지코와 크러쉬, 그보다는 예의를 갖추는 사이인 도경수, 나머지 셋과는 초면인 최정훈 등 친분의 정도가 다른 이들이 결국 하나로 가까워지는 모습은 교우관계를 연상할 수도 있겠다. 또한, 수학여행 콘셉트는 게임예능을 위한 설정으로도 활용된다. 학창시절의 모티브를 활용해 '쪽지시험' 등의 형식으로 여행과 게임쇼의 결합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신선할 수 있는 캐스팅, 어쩌면 흔하디흔한 여행 예능의 홍수 속에 특색이 될 수 있는 수학여행 콘셉트는 1회부터 여행의 시작과 동시에 사라진다. 먼저 캐스팅의 신선함을 반감하는 예능선수들의 투입이다. 캐릭터쇼를 기반으로 하는 리얼리티에 익숙지 않은 1992년생 동갑내기 친구들로만 구성했다면 새롭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안했나보다. 게임쇼의 진행과 웃음 요소를 위해서인지 꽤나 터울 차이가 나는 차세대 대표적인 MC 1985년생 이용진, 제작진과 <런닝맨>에서 손발을 맞춰 본 1986년생 양세찬을 콤비로 묶어 형님 포지션에 놓고 진행자 및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맡겼다.

담보된 웃음을 기대했겠지만 분명 이들이 열심히 하면 할수록 <런닝맨>을 보는 듯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동 중 버스에서 양세찬의 주도로 시작된 <런닝맨>식 게임은 앉아 있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 새롭지도 않고 여행 예능이란 측면에서 의미와 로망을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 그 이후 다시 근 50분간 먹는 걸 미션으로 두고 게임을 이어가고, 방 배정을 위한 게임을 15분간 진행한다. 4회에서도 먹는 걸 걸고 게임하기만 25분가량이다. 한마디로 <런닝맨>에서 할법한 긴 호흡의 게임들을 나열해서 만든 2023년 판 <1박2일>이다.

수학여행이란 콘셉트가 전혀 먹히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실제 볼거리와 수학여행에 갖는 추억의 불일치다. 이들의 여정을 보고 학창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자동차 운전석 위치나 잠깐잠깐 드러나는 풍경에서 일상을 벗어나 어딘가로 떠나온 여행임을 알게 하지만 이동하면서 줄기차게 게임을 하고 웃음을 생산하는 방식은 수학여행을 따라왔다기보다 <런닝맨>의 연장선상에 있다. 출연진들이 즐기는 가라오케, LP바, 북해도 오마카세, 이들이 '진정성 있게' 친분을 다지는 장으로 보여주는 술자리는 학창시절 수학여행이나 여행의 낭만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다.

공허해진 콘셉트와 신선도가 깨진 캐스팅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그간 수도 없이 봐왔던 옛 예능들의 흔적이다. 여행 예능의 클리셰 그대로 연예인, 스타의 견장을 내려놓고, 평범한 젊은이들로 친근함을 강조한다. 그리곤 여지없이 예능 병아리라며 긴장된 모습을 포착해 순수함과 귀여움을 부각한다. 이들이 친분을 맺어가는 과정의 진정성은 방송 안에서 만드는 게 아니라 밖에서 가져온다. 실제 얼마나 친했는지, 언제 어떤 술자리를 가졌는지 등 방송 밖의 인맥과 친분으로 출연진들의 친밀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설명하려 한다.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크다보니 밖에서 가져온 관계의 근거들 이외에 이번 여행 중에 친해지는 과정을 포착하는 서사가 술자리 이외에는 발동되지 않는다.

연예인들이 친분을 쌓아가는 성장서사를 리얼하게 보여준다는 골조는 과거 캐릭터쇼 시대로의 회귀다. 수학여행 콘셉트이기에 100퍼센트 제작진의 인솔과 설정 하에 움직인다고 할 수 있겠으나 늘 제작진에게 끌려 다니는 부족하고 모자란 모습, 엉뚱한 오답, 복불복 게임 등 과거 <무한도전>이 내세웠던 평균 이하 남자들이 만들던 웃음 패턴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그러나 이제 '스타'들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직접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려야 하는 세상이다. 연예인들의 매력은 부족함이 아니라 의외의 생활력에서 나온다. 게임쇼의 재미 또한 마찬가지다. 어이없게 만드는 무지가 아니라 제작진의 설계를 기상천외하게 벗어나는 의외성에서 나온다. 그러나 제작진과 찰떡 호흡을 맞춰온 양세찬의 투입과 기대 그대로의 활약은 이 쇼가 추구하는 재미의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tvN <뿅뿅 지구오락실>의 성공과 혁신은 멤버를 여성으로 바꿨던 게 전부가 아니다.

물론, '마니또 옷 입히기' '3:3 지뢰 초성 게임' '쪽지시험'퀴즈 등 빼곡히 들어찬 게임을 보면서 <수수행> 제작진들이 공을 들인 부분들이 어떤 부분인지 잘 알 수 있다. '무지성'을 내세우면서 무의미한 게임에 당위를 만들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판도 깔았다. 하지만 왜 연예인들이 북해도에 가서 게임을 하면서 친분을 쌓는 모습을 봐야 하는지 설득하지 못한다. <런닝맨>도 이런저런 변화의 몸부림을 이어가는 오늘날, 여행 예능의 트렌드인 자연스러운 여행도 거스르고, 훨씬 젊어진 출연자들로 중장년층에 특화된 <1박2일>에 가까운 여행과 게임을 결합한 캐릭터쇼로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로망과 재미가 과연 무엇인지 찾기 힘들다.

게임쇼에 여행이 왜 필요할까? 결국 남는 것은 친한 친구들끼리 웃고 떠드는 가운데 소년다운 우정을 귀엽게 담아내는 거다(그런 점에서 여행 예능의 9할 남자들의 여행기라는 걸 새삼 복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예능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움, 캐릭터쇼에서 발견되는 인물, 새로운 관계와 같은 오리지널리티가 없다. <런닝맨>의 양세형, <바퀴입>의 용진, <나혼산>의 크러쉬 등 모여 있을 뿐이다. 덕분에 렇게 뭉쳐서 나타나야 할 새로운 화학작용이 소소하고, 1992년 동갑친구들은 수동적인 포지션에 머물면서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공연 라인업과 캐스팅 명단의 가장 큰 차이다. 오늘날 예능 시청자들 원하는 것은 단순한 웃음이 아닌데, 여행 예능에서 보고 싶은 것은 연예인의 친분 쌓기가 아닌데 말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