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 대전환’엔 이슬람 과학이 있었다[책과 삶]

오경민 기자 2023. 3. 3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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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반쪽사
제임스 포스켓 지음·김아림 옮김 | 블랙피쉬 | 536쪽 | 2만1000원
18세기 중국, 일본, 네덜란드 학자가 교류하는 모습. 탁자 위에 해부학 교과서와 박물학 표본들이 놓여있다.
비유럽은 근대 과학과 무관하다는
현대의 상식을 ‘반쪽짜리’로 규정
4번의 ‘세계적 전환’ 시기에 맞춰
동서양이 얽힌 과학사로 재구성

독립·가치중립적 과학사 아닌
세계의 정치 흐름 담은 시각 눈길

중등교육 교과서에는 근대과학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알려진 여러 과학자가 등장한다. 뉴턴, 라부아지에, 아보가드로, 다윈, 멘델, 파스퇴르,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등.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유럽 출신이라는 것이다. 흔히 ‘과학자’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이들도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출신이다. 과학사는 근대과학이 유럽에서 태동해 유럽에서 발달한 것처럼 서술했다. <과학의 반쪽사>의 저자 제임스 포스켓은 이런 역사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반기를 든다. “과학은 유럽만의 특별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며 “오히려 근대과학은 언제나 전 세계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모인 사람과 아이디어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비유럽 국가가 근대과학과 거의 관련이 없다는 믿음은 서구가 아닌 중동과 아시아에도 널리 퍼져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 때 중국은 종이, 나침반 등 고대 중국의 여러 과학적 업적을 전시했다. 2016년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한 강연에서 이슬람 도시들이 중세에 과학 중심지로 활약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자신 있게 강조하는 과학 발전은 고대와 중세에 한한다. 중국은 18세기 자연사, 20세기 양자역학에 기여했고 이슬람교도들은 현대 과학에까지 널리 영향을 끼쳤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자는 “과학사는 탈식민시대의 전 세계 국가들이 자본주의의 길을 따르고 공산주의를 멀리하도록 고안”됐다고 주장한다. 중동과 아시아 역시 이에 동참했는데, 식민시대에 벌어진 많은 일들을 무시한 채 먼 과거의 영광을 떠올려 새로운 국가정체성을 발견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유럽국가들은 자국의 고대와 중세 과학자들의 업적을 기렸다. 근대과학은 서양의 것이며 고대 과학은 동양의 것이라는 믿음은 전 세계적으로 공유된다.

18세기 초 서아프리카 팀북투에서 작성된 아랍어 천문학 저서의 원고. 게티 이미지·블랙피쉬 제공.

폴란드 출신의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프톨레마이오스로 이어지는 지구중심설을 폐기하는 주장이었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주장은 급진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당시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에 대한 비판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으며 국경을 가리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는 저작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프톨레마이오스에 비판적인 이슬람 학자들을 5명 넘게 인용했다. 그는 이밖에도 페르시아 학자들로부터 철학 사상을, 이슬람의 천문표를, 이집트에서는 행성 모형을 빌려왔다. 저자는 “코페르니쿠스가 한 일은 그때까지 이뤄졌던 연구를 한데 모아 여러 세기 동안 우왕좌왕하던 프톨레마이오스를 둘러싼 논쟁을 논리적인 결론으로 밀어붙인 것”이라며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유럽과 이슬람 학문을 바탕으로 종합한 전형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저작”이라고 평가했다.

코페르니쿠스 사례에 앞서 저자는 사마르칸트의 천문학자들 이야기를 꺼낸다. 오랜 전통과 뛰어난 도구들을 가지고 별과 행성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측정해온 이들에게는 훌륭한 데이터가 있었다. 이후 오스만제국의 이스탄불 정복이 있었고, 이 때문에 비잔틴의 난민과 베네치아 상인들이 과학 저술 수백권을 유럽으로 가지고 왔다. 이렇게 유럽으로 들어와 새롭게 번역된 텍스트와 아이디어가 코페르니쿠스의 저술로 시작되는 과학혁명을 촉발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아즈텍 화가가 그린 멕시코 오악스테펙 지도. <지리 보고서>에 실려 스페인의 벨라스코에게 발송됐다.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의 지리적 지식에 감명해 ‘직접 묻는’ 방식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지리를 파악했다.

과학자 한 명이 이뤄낸 것으로 알려진 발견 뒤에는 세계의 충돌과 문화의 교류가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메리카 대륙 토착민의 도움이 없었다면 유럽의 자연사 서술방식은 오래도록 지체됐을 것이며,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형태의 지도도 한참 뒤에야 완성됐을 것이다. 뉴턴은 노예선을 탄 프랑스 천문학자들과 중국에 다녀온 동인도회사 간부들이 수집한 데이터로 만유인력 이론을 발전시켰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고대 중국의 백과사전에는 자연 선택의 원리가 분명히 제시돼 있다”고 언급했다. 다윈은 중국 박물학에 흥미를 갖고 꾸준히 인용했다.

저자는 세계사가 주요하게 전환했다고 보이는 네 시기에 주목한다. 아메리카 대륙을 약탈하는 동시에 아시아·아프리카 등 지역과 무역을 시작한 15~17세기, 노예무역이 크게 확대된 18세기, 과학이 군사·산업 분야와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은 19세기, 이데올로기 갈등이 번진 20세기로 나눠 4장으로 과학사를 재구성했다.

세계사와는 분리돼 독립적, 가치중립적으로 서술됐던 과학사를 세계의 정치 흐름과 함께 바라보는 시각이 흥미롭다. 과학책에서도 역사책에서도 흔히 볼 수 없었던, 유럽과 미국 바깥의 여러 잊혀진 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현대과학은 자발적이든 강제로든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끝에 만들어낸 산출물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과학의 미래와 세계의 미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다. 저자는 오늘날 각국에서 극우파와 새로운 민족주의가 득세해 나라의 빗장을 걸어잠그는 가운데 과학의 미래를 긍정하기 위해서라도 이에 맞서 싸우는 새로운 과학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수 인종 과학자들이 직업의 최고위층까지 진출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 바깥의 과학자들이 국제회의에 필요한 비자를 쉽게 발급받기 위해, 세계 모든 이들이 과학 공동체 일원으로 함께 일하기 위해서 말이다.

과학의 반쪽사 표지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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