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톡톡] 반도체 패키징이 뭐길래… “미세공정 한계를 뛰어넘는 마법”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IT 트렌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조선비즈는 [테크톡톡]을 통해 다소 생소하지만 꼭 알아야하는, 혹은 알면 도움이 될 기술, 개념, 단어, 사건 등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합니다.[편집자주]
전통적으로 최첨단 미세공정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던 ‘패키징(후공정)’에 삼성전자, 인텔, TSMC 등 거대 반도체 기업들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 2월 직접 삼성전자 반도체 후공정 공장을 찾아 투자를 강조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미세공정 기술이 한계 수준에 도달하면서 과거처럼 미세공정 전환에 따른 성능, 생산성 향상 폭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대신 공정전환에 드는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죠. 기술 난도가 높아지면서 미세공정에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투자 대비 효율성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최근 주주총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대비 효율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미세공정에 몇백조원을 투자한다고 해도 결국 메모리 반도체는 센트 단위에 판매되고 있다면서 구조적으로 뭔가 잘못돼 있다고 했습니다. 이전처럼 ‘무식하게’ 돈을 쏟아붓기 힘들어진 반도체 기업들이 이제 더 전략적으로 제품 성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10나노로 5나노 이긴다… 반도체 시장 법칙 역행하는 新기술
반도체 패키징이 무엇이길래 그토록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우선 패키징의 사전적인 정의는 ‘반도체를 전자기기에 맞는 형태로 제작하는 공정으로, 전기 신호가 흐르는 통로를 만들고 외형을 가공해 제품화하는 필수 단계’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설명하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겠죠.
일반적으로 반도체 생산은 크게 설계, 생산, 패키징 등으로 나뉩니다. 설계와 생산을 전(前)공정이라고 하고, 패키징을 후(後)공정이라고 말합니다. 반도체 웨이퍼(원판)를 투입해서 회로를 그리는 과정까지를 전공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완성된 웨이퍼는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이 웨이퍼가 전기적 특성을 가지도록 조립하고 포장해야만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PC, 가전제품에 넣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반도체 패키징은 반도체를 전자기기에 맞는 형태로 제작하는 공정입니다. 칩을 기판 등에 장착하는 과정에서 외부와 통신할 수 있도록 전기 신호가 흐르는 길을 만들고, 외형도 가공해야하죠. 패키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값이 수백배, 수천배 더 비싸지기도 합니다. 칩을 여러개 쌓아서 연결해 전기신호가 통하는 길을 정교하게 뚫어놓으면 챗GPT와 같은 첨단 인공지능(AI)에 탑재되는 하이엔드 칩이 되기도 합니다.
후공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작년 반도체 시장에는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때 외계인이 일하고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넘사벽’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었지만, 2020년대 들면서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고 있던 인텔이 갑자기 10나노 공정의 중앙처리장치(CPU)를 출시해서 최소 두 세대는 앞선 5나노 공정의 AMD의 CPU를 이긴 겁니다. 그냥 이긴 것이 아니라 칩의 성능, 가격 측면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완승을 거뒀죠.
칩의 미세공정보다는 최적화와 후공정 기술의 완성도로 더 많은 돈을 쏟아부은 AMD를 꺾은 겁니다. 축구에 비유하면, AMD의 팀은 1000억원짜리 스타 선수들로 11명을 구성한 팀이었고, 인텔은 300억~400억원 정도로 평가 받는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신 인텔은 팀의 조직력과 전술, 훈련환경부터 경기장까지, 오직 ‘이기기 위한 변수’에만 돈을 투자해 더 단단한 팀을 만들어 낸 것이죠.
◇반도체 제조 기술의 미래 ‘칩릿’도 패키징
반도체 미세공정의 차세대 격전지 중 하나로 꼽히는 칩릿(Chiplet)도 최첨단 패키징 기술의 일종입니다. 해당 기술 역시 인텔이 주도적으로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데요. 칩릿은 프로세서를 구성하는 작은 구성 단위로, 레고 블럭처럼 반도체 기판을 구성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합니다. 하나의 칩에 3나노, 5나노, 10나노 기술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건, 필요에 따라 칩을 고성능 파트와 저비용 파트로 나눠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죠.
특히 반도체 기업들이 서로 협업하며 ‘윈윈’할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이 생긴다는 의미도 큽니다. 보통 반도체 제조기업들은 설계부터 제조, 패키징 과정을 모두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폐쇄성을 가지는데 칩렛 시대에는 이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설계에 강점을 가진 인텔, 제조력이 뛰어난 삼성전자와 TSMC가 필요에 따라 힘을 합칠 수도 있습니다.
인텔이 세계 최대 반도체학회 IEDM 2022 행사에서 공개한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후공정) 기술 시연에서도 타사와의 협업 가능성을 전제로 한 로드맵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인텔에 정통한 관계자는 “인텔이 이번 학회에서 공개한 3D 패키징 기술은 반도체 칩을 레고 블럭을 끼우듯이 구성할 수 있는 칩렛 기술을 더 고도화한 것이 특징”이라며 “가령 삼성에서 만든 블럭, TSMC에서 만든 블럭, 인텔이 만든 블럭을 하나로 통합하는 식으로 제조 공정을 다변화할 수 있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말했습니다.
업계에서도 이제 반도체 시장의 기술 경쟁이 돈보다는 창의성의 시대가 됐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에서 30여년을 근무한 한 현직 임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돈을 쏟아부어 승부를 보는 미세공정 시대는 끝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최첨단 패키징, 칩릿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주목 받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누가 더 많은 돈을 쓰는지보다는 누가 더 영리한 지의 싸움이 됐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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