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없어 못사면 명품株로 눈길 돌려라 기업 재고 살펴보면 '흙속의 진주' 나온다

문일호 기자(ttr15@mk.co.kr) 2023. 3. 3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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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코스닥 주요 종목 222개 '재고자산회전율' 분석

지난 3월 20일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회장이 서울 강남에 등장했다. '패피'(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은 아르노 일가가 휘감은 명품을, 서학개미들은 LVMH 주가에 주목했다.

아르노 회장 방한 이후 지난 30일 LVMH 주가는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올 들어 19% 이상 올랐다. 이 프랑스 회사 주가는 827유로(3월 30일 현지시간 기준)로 116만원이 넘지만 주식 3주는 있어야 이 그룹 계열사 '디올'의 가장 저렴한 여성용 가방을 살 수 있다.

루이비통보다 더 비싼 가방을 파는 에르메스 주가는 같은 날 사상 최고가인 1841유로를 기록했다. 올해 25% 급등했다. 한화로 254만원이 넘지만 이 주식 5주는 모아야 에르메스의 가장 싼 가방에 도전할 수 있다.

불황에도 명품은 잘 팔린다는 격언은 익숙한데, 이들 명품기업의 재고자산회전율이 올랐다는 문장은 생소하다. 사실은 같은 말이다. 재고자산회전율은 해당 연도 매출원가 총액을 사업기간의 연평균 재고가치로 나눈 값이다. 통상 연초와 연말 자산을 2로 나눠서 계산한다.

국내 상장사 중에는 매출원가를 공시하지 않는 기업이 있어 연매출로 분자를 잡는다.

회전율이 높다는 것은 물건을 내놓기 무섭게 팔린다는 뜻이며, 손님이 가게에 들어왔다가 양손 무겁게 비싼 제품을 사들고 나간다는 의미다. 제품 가격을 깎아주기라도 한다면 매출이 줄어 회전율도 떨어진다.

업종마다 회전율이 다르기 때문에 추세가 중요하다. 에르메스는 코로나19 이후 재고자산회전율이 되레 상승해 '명품 중 명품'이란 소리를 듣는다. 프랑스 회사인 에르메스는 작년 매출이 116억200만유로(약 16조2742억원)로 전년 대비 29.2% 증가했다. 재고자산은 2021년 말과 2022년 말 재고의 평균인 16억1400만유로다. 이에 따라 2022년 회전율은 7.2회다. 2021년 6.6회보다 상승했다. 이는 같은 방식으로 계산한 LVMH(2021·2022년 모두 4.3회)보다 한 수 높았다.

LVMH 측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회전율이 유달리 많은 가품(짝퉁)에 있다고 보고, 최근 방한 때 진품을 인증하는 인공지능(AI)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

유럽과 달리 미국 대형주도 고전 중이다. 아이폰을 판매하는 애플은 재고자산회전율이 떨어졌다. 2021년(9월 결산) 68.8회에서 2022년 68.4회로 하락했다. 아르노 회장과 세계 최고 부자 1, 2위를 다투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테슬라마저도 침체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유럽 명품기업이 가방 가격을 올릴 때 테슬라는 매출 방어를 위해 전기차 가격을 인하했다. 작년 한때 중국 내 재고가 쌓여 판매관리비가 증가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회전율은 2021년 10.9회에서 작년 8.8회로 하락한다.

매출과 재고회전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주가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곳이 진정한 명품주로 불리는 이유다.

유럽 명품기업도 초기에는 숙련된 디자이너와 도제식 교육(1대1로 엄하게 가르침) 등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상장사였다.

비슷한 기준으로 한국 유망주를 찾기 위해 올해 실적 예상치가 있는 상장사 222곳의 재무제표를 분석했다.

일단 이들의 2022년 매출은 2429억868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21.6% 성장했다.

문제는 같은 기간 연평균 재고가 31.1%나 상승한 294조838억원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고자산회전율은 8.9회에서 8.3회로 떨어졌다. 제품 판매보다 재고 쌓이는 속도가 더 빨라 국내 상장사의 비용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실제 222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21년 8.6%였는데 작년에는 5.9%로 급락했다.

상장사 실적이 경기 침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와중에 90곳(40.5%)은 회전율이 상승했다.

이 중 금융사나 지주사를 제외하고 같은 기간 현금성 자산이 증가하면서 올해 예상 매출 증가율이 28.2%를 넘는 곳으로 좁혔다.

여기서 28.2%는 분석 대상 222곳의 작년 평균 재고자산 증가율이다.

재고 증가율에 비해 올해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프앤가이드 기준)을 최종 유망주로 선정한 것이다. 이 기준을 적용해보니 코스피 대형주는 모두 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고, 코스닥 상장사만 6곳이 이를 충족했다.

그 유명한 에코프로비엠이 포함됐다. 이 회사의 평균 재고는 2021년 2481억원에서 2022년 5979억원으로 141% 증가한다. 그러나 같은 기간 매출은 261%나 급증해 회전율이 같은 기간 6회에서 9회로 뛰었다. 에코프로비엠이 만드는 2차전지 양극재가 내놓는 족족 잘 팔린다고 회계장부에 써 있는 셈이다. 양극재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 중 하나다.

코스닥 시가총액 1위 상장사인 에코프로비엠은 작년 15만t이었던 양극재 생산능력을 2025년까지 40만t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통상 상장사의 계획은 실적과 무관한 사례가 많지만, 배터리 소재나 바이오 기업은 수주를 받아놓고 공장 증설에 나선다. 허풍이 아니라는 뜻이다.

에코프로비엠은 주로 삼성SDI에 양극재를 공급한다. 양극재는 배터리 생산원가에서 40%를 차지한다. 전기차 수요가 증가하는 한 에코프로비엠 매출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초점은 급등한 주가와 높은 수준의 주가수익비율(PER)에 맞춰져 있다. 주가가 올 들어 145%나 급등해 올해 예상 실적 기준으로도 PER이 53.8배에 달한다.

지속적으로 '유럽 명품 주식'(PER 50~60배) 대접을 받으려면 올해는 삼성 외에 튼튼한 수주처를 찾아 매출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작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파크시스템스는 원자현미경(AFM) 개발 업체다. AI 수요가 늘자 첨단 반도체 공정에 AFM 장비 도입이 급증하고 있어 코스닥 상장사인 파크시스템스 실적은 꾸준한 흐름을 나타낼 전망이다. 파크시스템스는 전체 매출 비중에서 산업용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0~70%에 달해 경기 침체 여파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특징이 있다. 재고가 별로 쌓일 일이 없으니 회전율이 2021년 3.8회에서 작년 4회로 높아졌다. 현금성 자산도 덩달아 늘었다. 올해 주가는 24% 올랐으며 PER은 22.1배 수준이다.

코스닥 중소형주 비올은 의료기기 업체다.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피부미용 의료기기 '실펌엑스' '스칼렛' 등을 판매하는데 인기가 높다.

작년 매출은 311억원으로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작년 재고자산회전율은 8.6회로, 2021년(7.2회)보다 높아졌다.

이처럼 회전율이 높은 것은 이 회사의 '마이크로니들' 기술 덕분이다. 환자 통증을 최소화하면서 약물 투입 효과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코스닥 상장사 아스플로는 2000년까지 일본에서 전량 수입해온 국내 반도체 공정 가스 공급용 '튜브'를 2001년부터 국산화했다.

고객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이다. 작년 매출은 887억원을 기록했으며 올해 처음 1000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올 들어 주가가 27% 이상 올랐지만 PER이 8.1배로 저평가돼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재고자산회전율

연매출을 연평균 재고자산으로 나눠서 계산한다. 재고가 어느 정도 속도로 판매되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회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기업이 성장한다는 뜻이며 낮아지면 재고 대비 과잉 투자가 이뤄졌다는 의미다.

[문일호 엠플러스센터 증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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