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미술의 '화양연화' 바로 지금입니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3. 3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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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페어는 끝났지만 미술축제 현재진행형
구사마 야요이의 '자아 소멸'(1966~1974) 전시 전경. M+

홍콩 미술에 봄이 돌아왔다. 3월 21~25일에 열린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 홍콩'을 찾은 세계의 미술 관계자와 큰손을 맞기 위해 한 달여간 홍콩의 '아트 위크'가 이어진다. 홍콩의 미술관과 화랑들이 일제히 아시아 미술의 오늘과 내일을 소개하고, 세계적인 작가들의 신작도 엄선해 선보인다.

'구름 관중' 구사마 야요이 회고전

홍콩 미술여행 1번지는 M+미술관이다. 거대한 전시공간에서 6개 전시가 동시에 열린다. 5월 14일까지 열리는 구사마 야요이 회고전은 홍콩 최고의 인기 전시다. '땡땡이 호박'으로 문화 아이콘이 된 스타 작가의 초·중기 희귀 작업을 망라해 작가가 고민해온 예술의 경로를 엿보게 해준다. 회화, 드로잉, 조각, 설치 및 아카이브 등 200여 점을 엄선했다.

작가가 10대 때 만든 초기 드로잉부터 가장 최근의 몰입형 예술까지 주제별로 구성된 회고전은 무한, 축적, 급진적 연결성, 생물우주, 죽음, 생명의 힘 등 6가지 주제를 통해 "모든 사람들의 치유를 위해 예술을 한다"는 구사마의 작업 철학을 돌아보게 만든다. 지하에 만들어진 거울방과 미술관 입구의 호박 조각은 '셀카존'이 됐다.

M+ 소장품의 근간이 된 건 스위스 유명 컬렉터 울리 지그다. 그의 기증품을 엄선해 중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할 수 있도록 전시한 '혁명에서 세계화로'는 류웨이, 장샤오강, 웨민쥔, 쩡판즈 등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대작들을 만날 수 있다. 중국 정부의 검열 우려를 일축하듯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가 흰색과 갈색의 도자기 수백 점을 설치한 '화이트워시'가 가장 큰 규모로 전시됐다.

4월 30일까지는 대체불가토큰(NFT) 제왕 비플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영상 NFT 설치작업 '휴먼 원(Human One)'도 전시된다. 202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2890만달러(약 375억원)에 낙찰되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우주복을 입은 인간이 걸어가는 영상이 4면을 채우는 이 작품에 대해 비플은 "메타버스 속 인간의 첫 초상"이라고 설명했다.

홍콩의 명소 타이퀀과 K11

홍콩의 또 다른 미술 명소는 2018년 옛 경찰서·교도서·법원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타이퀀(Tai Kwun)이다. 이곳의 JC현대미술관에서는 LGBTQ+ 성소수자를 주제로 한 전시 '신화 창조자들(Myth Makers): 분광합성 Ⅲ'를 4월 10일까지 열어 57개 팀의 작가를 초대했다. 입구부터 익숙한 정은영 작가의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신작을 만날 수 있고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앤 사맛, 얀 보, 마틴 웡, 호 탐 등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 동양의 전통, 설화, 미신 등을 동시대에 소환한 작업을 모은 것이 특징이다.

홍콩의 억만장자 컬렉터 에이드리언 청 뉴월드개발 부회장의 상업 몰인 K11 뮤제아는 건물 전체가 미술관이다. 중정에는 6층 높이의 거대한 실에 붉은색 편지가 매달려 있는 듯한 시오타 지하루의 설치를 비롯해 스털링 루비, 애나 팍, 이매뉴얼 타쿠 등의 작품을 로비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다. K11 뮤제아 6층 쿤스트할레에서는 전 LA 현대미술관(MOCA) 관장 제프리 다이치가 기획한 전시 'City As Studio'도 5월 14일까지 열린다. 주요작으로는 페이지 파월의 개인 컬렉션에서 대여한 바스키아의 '밸런타인'(1984), 크래시의 '더 봄(The Bomb)'(1983), 3m 크기의 대작인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려진 키스 해링의 '무제'(1983) 등이 있다. 셰퍼드 페어리가 그린 키스 해링과 바스키아의 초상화도 전시되는데, 이 작품은 초기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현재 세대에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보여준다.

메가 화랑이 점찍은 작가들

홍콩 센트럴 지역 H퀸스 빌딩에 밀집한 세계적 화랑의 전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전시 개막이 몰린 지난 20일 밤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인파가 운집했다.

15·16층 하우저앤드워스는 라시드 존슨의 개인전을 5월 10일까지 연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담아내는 작가로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레코드 커버, 금박을 입힌 암석, 검은 비누 및 열대식물과 같은 다양한 요소를 혼합해 바스키아를 연상시키는 인물화를 완성한 'Broken Men', 삼면화 '자유의 땅'을 비롯해 바다의 조각배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추상화 신작 등을 만날 수 있다.

12층 페이스는 중국 현대미술 대표 작가 장샤오강의 전시 'Lost'를 4월 4일까지 연다. 가족 사진과 붉은 그림자가 상징이던 '혈연' 시리즈를 통해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소외된 인간을 그리던 작가다. 지난 3년간 작업한 신작에서는 인물의 초상 대신 정물이 자리한다.

고깃덩이와 TV, 세탁기, 책을 든 손, 랜턴을 든 손에도 마찬가지로 붉은 그림자가 드리워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의 의미를 묻는다. 삶의 내면적 경험과 향수라는 두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자신의 내면 공간을 토템(Totem)적으로 묘사한다.

장샤오강의 'Lost' . 페이스

6층 데이비드 즈워너에서는 전속작가가 된 태국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개인전 '상점(The Shop)'을 선보인다. 과거 전시를 통해 티셔츠를 팔고 무료 음식을 제공하며 '관계의 미학'을 탐구했던 그의 신작은 우산과 잡화가 가득한 비좁은 가게 안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가게 안쪽과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전시공간에서는 검은 카펫을 청소하는 로봇 청소기를 만날 수 있다. 궤적을 통해 세계적인 중국 SF 작가 류츠신의 소설 '어두운 숲'을 뜻하는 한자를 그린다. 3D프린터는 붉은색으로 우산의 복제품을 찍어낸다. '우산 혁명'의 도시에서 열리는 전시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낸 셈이다. 인간의 존재를 간과하고 사업에 매진하는 대량 생산된 기계의 세계를 은유하는 설치 작업이다.

김수자 전시 전경. 악셀 베르보르트

웡척항역 인근의 남쪽섬문화지구는 팬데믹 이후 새로운 명소로 부상했다. 도심에서 이주해 온 이곳의 악셀 베르보르트에서는 반가운 '보따리 작가' 김수자의 전시 '몸의 지형(Topography of Body)'이 6월 3일까지 열린다. 심장박동 같은 소리가 방문객을 환영하는 공간 속에서 부재와 공허함을 상징하는 새로운 점토 및 종이 작품, 영상, '신체의 기하학' 판화를 망라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홍콩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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