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판사들의 사보타주, 김명수식 사법 개혁의 그림자 [쓴소리 곧은 소리]
법관 선거·법원장 추천제 등은 열심히 일하는 판사 바보 만드는 사법개악
(시사저널=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국민의 눈에 판사는 어떤 존재로 비치고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똑똑한 사람? 어려운 법적 분쟁들에 대해 권위 있는 판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존경받는 법률가? 나라의 법질서 유지를 위해 최후의 보루가 되는, 성직자에 준하는 훌륭한 사람? 예전에는 몰라도 근래에는 이런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오히려 정치 불신 못지않은 사법 불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이 사법 불신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지하철 몰카 등 판사들의 일탈행동이 국민의 불신을 초래한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판사들의 웰빙 주장이 많은 국민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MZ세대 판사들의 독특한 행태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김명수식 사법 개혁 이후에 법원 내부의 분위기가 과거와 크게 달라진 탓이라는 지적도 많다.
판사도 사람이고, 웰빙을 추구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면 대통령이나 장관이 웰빙을 내세워 국정을 소홀히 하는 것은 어떤가? 웰빙을 원한다면 대통령이나 장관이 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판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요 공직에 종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웰빙을 앞세워 경찰관이 범죄수사를 게을리하고, 소방관이 화재진압을 소홀히 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국민 희생' '웰빙 판사' '법원 내 파벌' 논란
당장 눈에 띄는 것만 보면, 경찰관이나 소방관의 일에 비해 판사의 재판은 조금 늦어져도 별문제가 없을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말처럼 소송 당사자에게는 제때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헌법 제27조 제3항에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정치 불신이 심각한 이유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치인을 위한 정치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을 위한 사법이 아니라, 판사를 위한 사법이라면 사법 불신이 심각해지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 결과 해마다 정치 개혁 논의가 반복되는 것처럼 사법 개혁 논의도 점차 잦아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역설적인 것은, 김명수 사법부에서 이런 문제들이 심각해진 가장 큰 이유의 하나가 사법 개혁 때문이라는 점이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김명수 사법부에서는 사법 개혁을 위해 많은 논의를 했으며, 사법행정회의 도입 등이 추진된 바 있다. 민주당에서 법안까지 발의했던 사법행정회의는 법원 내외의 반발로 인해 관철되지 못했지만, 그동안 법원의 시스템에서 바뀐 부분이 적지 않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법관 인사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의 엘리트 판사 중심의 승진 개념을 벗어나 평생법관제를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법원장 추천제, 고등법원 부장판사제도의 사실상 폐지 등은 기존의 법관 인사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문제는 실적 평가를 통해 승진하는 것이 없어지면서, 판사들이 열심히 일해야 할 동기가 매우 약해졌다는 점이다.
물론 순수하게 국민을 위한 봉사라는 점에서 최선을 다해 소송 서류들을 검토하고,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 노력하는 판사도 많다. 그러나 남들보다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평가가 '바보 같다'는 것이라면 계속 열심히 일할 의욕을 갖는 판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판사도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자주 가져야 하고, 요즘 트렌드의 변화에도 밝아야 한다면, 그만큼 재판에 충실하기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최근에는 판사들의 하향평준화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김명수식 사법 개혁이 실적주의를 사실상 포기한 것은 (판사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판사를 위한 개혁이지, 국민을 위한 개혁은 아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것이 국민의 부담을 전제한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에 비해 재판 지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해소하기 위한 판사 증원 등의 대안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실적주의가 지고지선하다는 것도, 무조건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현재의 상황은 (적어도 국민의 눈으로 볼 때)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법 개혁이었는지 반문하게 만드는 것이다. 만일 이런 상황이 장기화한다면, 정말로 사법 불신이 정치 불신 못지않을 것이며, 사법부가 주체가 아닌, 국민이 주체가 되는 사법 개혁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실적주의를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합리화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승진 개념의 폐해를 최소화하되, 열심히 일한 판사들이 바보 취급받지 않고 제대로 대우받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법원장 추천제나 법관 선거제를 통해 법원 내에 파벌이 형성되고, 파벌 간 갈등과 대립이 심해지는 것은 판사들을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법 불신, 정치 불신만큼 깊어
판사 증원, 업무환경 개선 등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것은 판사로서의 역할에 대한 자각일 것이다. 판사들의 재판도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 못지않게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의의 요청이다. 또한 인간의 육체적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생명을 다루는 판사들의 업무도 한 치의 오차를 용인하지 않는다. 소송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피가 마르는데, 판사들이 실연으로, 이혼으로, 운동경기 참가로 판결문을 쓰지 못하겠다는 것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판사는 일반 행정공무원과도 확연히 다른 역할과 지위를 인정받는 공직자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임을 헌법 제7조 제1항에서 명시하고 있는데, 판사는 그렇지 않을까? 판사들에게 신분과 독립성을 고도로 보장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함이지, 판사들 개인의 웰빙을 위한 것은 아니다.
진정 웰빙을 선호한다면, 판사가 되지 말고 변호사가 되어서 해야 할 것이다. 대형 로펌에 가면 그것도 어려우니, 개인적으로 사건을 수임하는 개인 법률사무소를 열고 적당한 시간 동안만 일하면 된다. 그런데 판사로서의 지위는 누리고, 재판은 소홀히 한다면 국민이 이를 납득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공무원노조가 생겼으니, 이제 근무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판사노조라도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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