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일산 재건축? 비역세권 대형단지라면 리모델링!

손동우 전문기자(aing@mk.co.kr) 2023. 3. 3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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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해진 노후 아파트 정비방식 셈법
일산 신도시 아파트단지 모습. 연합뉴스

요즘 오래된 아파트 주인은 물론, 이들 아파트에 투자해 차익을 올리려는 사람들의 가장 큰 화두는 재건축과 리모델링의 유불리다.

정부가 '노후계획도시 정비·지원 특별법'을 공개한 이후 어떤 사업 방식을 선택할지 아파트 주인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별법이 재건축 용적률 상한을 최대 500%까지 허용하기로 하면서 리모델링을 추진해온 일부 단지에서 '재건축 선회'를 놓고 내홍까지 벌어지는 모습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아파트 리모델링은 재건축 규제 효과를 톡톡히 누려왔다. 재건축보다 규제가 덜하고 기존 골조를 그대로 두고 증축해 사업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 아파트가 용적률 180%를 넘는 1기 신도시는 리모델링을 선호했다.

재건축은 기존보다 늘어난 주택을 일반 수요자에게 분양해 얻은 수익으로 사업비를 충당해야 하는데, 아파트 평균 용적률이 높으면 주택 수를 늘릴 만한 추가 용적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문재인 정권 초기(2019년 12월) 37곳(2만3935가구)이던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2022년 6월엔 131곳(10만4850가구)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정부가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을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높일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일반분양을 늘릴 수 있고, 안전진단 기준 완화가 가능해지면서 속도 역시 빨라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파트 구조가 세로로 긴 '동굴형'인 리모델링 아파트는 사업 종료 이후 재건축 아파트보다는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도 있다. 조합원 사이에서 이왕이면 더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재건축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 이유다. 실제로 올해 1월 기준 전국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138곳(11만2144가구)으로 사업 참여 단지 증가 폭이 예전에 비해 급감했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아파트 단지 중에서 재건축으로 방향을 트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강선마을14단지는 특별법 발표 이후 일부 주민이 재건축 추진을 요구하며 '리모델링 반대 동의서'를 모으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고양시에서 처음으로 리모델링 조합을 설립했다. 서울 성동구 대림1차 아파트와 강동구 리모델링 1호인 프라자 아파트는 각각 2006년부터 운영해온 리모델링 조합을 작년 9월 해산하고 본격적인 재건축 절차에 들어갔다. 이 밖에도 리모델링 추진 아파트 곳곳에서 사업 방식을 놓고 주민 사이 의견 차이가 심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리모델링 사업을 접고 재건축 사업으로 선회하는 것이 맞는 방법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재건축 사업과 리모델링 사업은 100% 대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사업 여건에 따라 재건축이 유리한 단지가 있고 리모델링이 유리한 단지가 있다.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한 후 일각에선 노후 아파트면 무조건 재건축이 가능한 것처럼 오해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아파트 주인이든 투자자든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첫 번째 조건은 아파트가 '역세권'인지다. 정부에서 발표한 '용적률 500%'는 상징적 의미이지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는 인센티브는 이보다 낮을 것이 분명하다. 아파트가 모여 있는 신도시에서 주거지를 고밀도로 개발하면 '닭장 아파트'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용적률 인센티브는 역세권, 그것도 1000가구 이하 소규모 단지만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역세권은 승강장에서 직선거리로 250m 이내인 1차 역세권과 500m 이내인 2차 역세권으로 나뉜다. 아파트 단지가 최소한 2차 역세권 안엔 들어가야 수혜를 노릴 만하다는 뜻이다.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재건축을 선택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

두 번째 요건은 평형 구성이다. 대형 평형이 많아 평균 대지 지분(아파트가 가구별로 갖고 있는 땅 면적)이 큰 단지는 재건축이 유리하다. 반면 중소형 평형이 많다면 재건축으로 전환 시 추가 분담금이 많이 든다. 게다가 리모델링 사업 구조 자체가 중소형 평형 위주 단지에 유리하게 구성돼 있다. 국민주택 규모(전용 85㎡) 이하 평형은 기존 면적의 40%까지 증축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주택 규모를 넘으면 기존 면적의 30%까지만 증축이 가능하다.

마지막 요건은 기존 단지의 원래 용적률과 규모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존 용적률이 높고 규모가 작은 단지는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재건축 사업은 기존 용적률과 사업성 사이에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리모델링 사업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500가구 이하 소규모 단지도 지하를 파서 주차장만 만들어도 일정 부분 가치 상승을 노릴 만하다.

이 세 가지 요건 말고도 재건축을 선택할지, 리모델링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단지라면 꼭 체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우선 정부가 4월에 결정할 것으로 보이는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를 봐야 한다. 내력벽 철거는 리모델링 사업성을 높이는 핵심으로 분류된다.

건축물에 들어가는 벽은 크게 내력벽과 비내력벽으로 나뉜다. 내력벽은 아파트 무게를 지탱하는 벽으로, 벽 자체가 기둥 역할을 하고 비내력벽은 공간을 나누는 용도로 쓰인다. 특히 가구 간 내력벽은 가구 안 내력벽보다 두껍고 하중을 더 많이 지탱한다. 이 때문에 가구 안 내력벽 철거는 지금도 가능하지만, 가구 사이 내력벽은 공사 과정에서 건물 붕괴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철거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력벽 철거는 재건축보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요소다.

리모델링을 통해 아파트를 증축할 때 가구 간 내력벽을 철거하지 못하면 좌우 확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베이(Bay·전면 발코니에 접한 거실 또는 방 숫자)'를 늘리기 어렵다. 옛날 아파트는 대부분 2베이나 3베이인데 요즘 아파트는 3베이나 4베이를 많이 쓴다. 앞서 리모델링 아파트는 탄생 시점부터 재건축 아파트보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취약점이 있다고 말한 이유다.

이런 문제로 리모델링 업계는 정부에 '안전에 문제가 없는 범위 안에서' 가구 간 내력벽 철거 허용을 요구해왔다.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2016년 1월 아파트 리모델링을 할 때 안전진단 평가 등급(B등급 이상)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가구 간 내력벽 '일부 철거'를 허용하는 내용의 주택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성 문제가 다시 제기되자 정부는 2016년 8월 내력벽 철거 문제를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처음엔 2019년 3월까지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으나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최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토부가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발주했던 '리모델링 시 내력벽 실험체 현장재하실험' 기한이 작년 말 마감됐다. 연구용역의 평가 기한은 3월까지로, 건산연의 의견을 받은 뒤 국토부가 허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연구용역 기한은 마감됐고 현재 연구와 관련해 논의 중"이라며 "건산연의 평가가 3월까지로 의견을 전달받은 뒤 허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사업의 향방을 결정짓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개선안 통과 여부도 주목할 만하다. 이 제도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한 재건축이 리모델링보다 사업성이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은 초과이익환수제가 따로 없다. 재건축 규제가 많이 약화됐다고 해도 리모델링보다는 여전히 높은 게 사실이다. 재건축은 아파트를 지은 지 30년이 넘어야 추진하지만 리모델링은 15년 이상이면 된다. 안전진단 등급도 재건축은 최소 D등급(조건부 허용) 이하를 받아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B등급 이상이면 층수를 높이는 수직증축이, C등급 이상이면 수평증축이 가능해진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을 때 조합 설립 후 재건축 아파트는 팔 수 없지만, 리모델링 단지는 가능하다.

지난해 9월 국토부는 1주택 장기 보유자의 재건축 부담금을 최대 50%까지 경감하고, 초과이익 산정 기준도 기존 재건축추진위원회 구성 승인에서 조합설립인가로 늦췄다. 하지만 재건축 부담금은 거의 모든 세부 사항이 법률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이 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지만, 2024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어떤 태도 변화를 보일지가 관심사다.

[손동우 부동산·도시계획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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