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아인, 그리고 조태오
지난 2015년 ‘속 시원한 응징’이라는 매력으로 1000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 ‘베테랑’은 배우 유아인(37·본명 엄홍식)의 필모그래피에서 유일한 천만 영화다. 관객 1341만명을 끌어모았다.
영화에서 서울경찰청 소속 서도철 형사(황정민 분) 등 수사팀이 코카인 등 마약에 중독된 재벌 3세 ‘조태오’를 체포했을 때, 조태오는 “1시간이면 수갑을 풀 수 있다”며 반성은 커녕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곧바로 날라차기 발길질로 조태오를 제압한 경찰의 모습은 천만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베테랑 개봉 8년 후인 현재, 조태오 배역을 맡아 ‘약 빤 연기’를 했다고 호평을 들었던 배우 유아인은 지난 27일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프로포폴·대마·코카인·케타민 등 마약류 4종을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일탈행위들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식의 자기 합리화 속에서 잘못된 늪에 빠져있었다”고 말하며 그는 울먹였다.
베테랑에서 서도철 형사는 조태오의 처벌을 자신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유아인의 마약 투약 의혹이 제기된 지 2개월이 다 돼가지만, 조사는 단 한 차례만 진행됐다. 출석 일자도 당초 지난 24일이었지만, 유아인 측은 ‘비공개 소환이었는데 조사 일정이 언론에 공개돼 사실상 공개 조사’라는 이유로 출석 하루 전에 일방적으로 경찰에 일정 변경을 요청하기도 했다. 구속영장 신청 여부도 불투명하다.
향후 유아인은 재판에 넘겨져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유아인에게 실형이 선고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유아인이 초범인 점이 고려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성의 자세를 보이고 재범 우려가 없다는 점을 변호인들이 강하게 어필하면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대검찰청 마약과장 출신 변호사 등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는데, 실형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며 “전형적 ‘유전무죄’”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마약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공인이 실형을 선고 받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 2021년 9월 법원은 LSD와 대마 등 마약류를 투약한 혐의로 기소된 아이돌 그룹 ‘아이콘’의 전 멤버 비아이(27·본명 김한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심지어 지난 1월 필로폰 소지 및 투약 혐의로 기소된 작곡가 돈스파이크(본명 김민수·45)는 재범이었지만,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공인들에게 줄줄이 미약한 처벌이 내려지는 것은, 대중의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붙잡힌 마약사범은 1만8395명으로, 지난해(1만6153명) 대비 13.9% 증가했다. 이는 1989년 마약범죄통계가 만들어진 후로 역대 최대치다. 유명인들의 마약 투약 이슈가 부각되면서 30대 이하 젊은 세대의 마약사범 비율이 전체의 60%에 육박할 만큼 마약 확산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대한민국을 마약 청정국으로 만들겠다며 공공연히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왔다. 지난해 10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수사에 임하라”고 주문했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국민 체감 전략과제 제1호로 ‘마약류 집중단속’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마약에 대한 선전포고가 무색하리 만큼 경찰의 수사는 더디고, 법원의 처벌은 약하다.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조태오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으로 끝나는 반쪽짜리 응징극’으로 끝낸 것에 대해 “조태오의 처벌은 ‘국민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라고 밝혔다. 현실에서는 불합리한 처벌 수위가 나올 수 있지만, 국민이 눈을 치켜뜨고 사안을 바라본다면 정의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국민은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마약 범죄에 대해 경찰과 법원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성역 없는 수사와 법의 공정한 심판으로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할 시기다.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으로 되돌아가기 원하는 국민의 염원에 경찰과 법원이 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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