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대외활동 자제한 메르켈, 英 국왕 국빈만찬 참석
재임 시절 러에 유화정책… 경제협력 심화
러·우크라 전쟁 발발 후 '책임론'에 시달려
퇴임 후 대외활동을 자제하며 공개석상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모처럼 세계 언론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독일을 국빈방문한 영국 국왕 찰스 3세 부부 환영을 위한 국빈만찬에 참석해 헤드 테이블에 앉아 찰스 3세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31일 외신에 따르면 메르켈은 29일(현지시간) 독일 대통령 관저인 벨뷔궁에서 열린 국빈만찬에 참석해 찰스 3세 부부,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부부 등과 인사를 나눴다. 사진을 보면 메르켈은 VIP들만 모인 헤드 테이블에 앉아 이날 만찬 주빈인 찰스 3세와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메르켈이 2005년 11월 총리에 취임해 2021년 12월까지 16년 이상 장기집권을 한 만큼 찰스 3세는 왕세자 시절부터 메르켈과 여러 차례 만나 교분을 이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 결정 직후인 2019년 5월 왕세자 신분이던 찰스 3세는 독일을 방문해 ‘브렉시트와 무관하게 영국·독일 두 나라의 우호관계는 계속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메르켈과 만난 찰스 3세는 “독일은 늘 영국의 동반자였다”며 “앞으로도 그런 관계를 유지해야만 과거 우리의 땅에서 벌어졌던 분열과 갈등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분열과 갈등’이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모두 영국과 독일이 적으로 싸웠던 역사를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메르켈은 과거 총리 시절 러시아를 상대로 취한 유화정책 때문에 퇴임 후 상당히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독일 통일 이전 공산권인 동독에서 성장한 메르켈은 러시아어 실력이 유창하다. 이를 토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수시로 만나 러시아어로 대화하며 양국 관계를 심화시켰다. 그 결과 독일은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갖게 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08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여부를 놓고 회의를 열었을 당시 메르켈이 강력히 반대했던 점을 거론하며 “메르켈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 현장으로 초청하고 싶다. 여기서 러시아에 대한 독일의 유화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메르켈은 “그 당시 내 결정이 지금도 옳았다고 생각한다”며 반박했다.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준비하던) 2021년 11∼12월 무렵엔 총리에서 퇴임할 것이 이미 예정돼 푸틴한테 어떤 말을 해도 먹히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이와 관련해 AFP통신은 “16년간 독일 총리를 지낸 메르켈은 한때 자유세계의 지도자로 칭송받았지만, 최근 들어선 그의 업적이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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