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세계 최고'가 된 오타니 쇼헤이, 그의 스승은 독서를 권했다
SBS는 2년 전부터 한국 야구와 세계 야구의 실력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하루빨리 '현대화-과학화'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경고한 바 있다. 이번 WBC는 여전히 정체된 한국 야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비극의 무대가 됐다. 'WBC 참사'를 계기로 한국야구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중 상당수는 '맨날 듣던 이야기'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주장들이다.
"일본 야구와 수준 차이가 벌어진 이유는 기본기 부족이다. 기본기가 부족한 이유는 학원 스포츠의 '학습권 보장' 때문에 선수들의 훈련량이 줄어서다. 이미 야구 선수를 직업으로 정한 학생들에게 무의미한 수업을 들어가게 하는 대신 훈련을 더 시켜야 한다."
"한국 투수들의 수준이 떨어진 이유는 공을 많이 던지지 않아서다. 혹사를 막는다며 공을 많이 던지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투수들이 공을 잘 던지는 밸런스를 찾지 못한다. 어설픈 미국식 훈련 방식에서 탈피하고, 스프링캠프에서 3천 개씩 공을 던지게 하는 일본의 방식을 다시 배워야 한다."
[ https://v.daum.net/v/fDv7HFcpS7?fbclid=IwAR0-M_wCx7duxYDIrYfuLzLW4sLL7vSetyqv209EnhZsyBn7Sj2ZhAEJoV4 ]기사들이 최근 많이 나오고 있다. 몇몇 야구인들의 주장은, 그들이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 https://m.sports.naver.com/story/kbo2023/opening/17 ]일본 야구의 현재와도 너무나 거리가 멀다. 아직 우리가 제대로 시작도 못한 '야구의 과학화-현대화', 그리고 '인성과 지적 능력을 갖춘 건전한 사회인을 만드는 시스템으로서의 야구계'라는 길을, 일본은 한참 먼저 출발해 저 멀리 앞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이번 WBC 일본 대표팀의 핵심 인물들이 있다.
[ https://v.daum.net/v/20160322063754457?fbclid=IwAR1T1xfdEOMNNH8DRkVvb7uzYoY9PRhuEXvv2MWvH39W8SImDzsd3VF5Em4 ]
"수준 높은 야구를 하려면 인간으로서 능력도 필요하다."
"수준 높은 야구를 하려면 인간으로서 능력도 필요하다."
-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WBC 대표팀 감독
일본을 WBC 정상으로 이끈 구리야마 감독은 이미 국내에도 꽤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니혼햄 파이터스 감독이던 2012년, 고교 졸업 후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려던 오타니 쇼헤이를 정성과 치밀한 연구 결과로 설득해 니혼햄 유니폼을 입힌 인물이 구리야마 감독이다. 그때의 약속이 '이도류 보장'과 '미국 진출 지원'이었다.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 일본 야구계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리야마 감독은 이 약속을 뚝심 있게 지켰고, 결국 지금의 오타니를 존재하게 했다. 오타니와 일본 선수들의 구리야마 감독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이번 대표팀에 오타니와 다르빗슈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참가한 이유도 구리야마 감독의 인격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번 WBC에서 SBS의 마이크를 잡았던 이대호 위원도 일본 소프트뱅크 시절 상대팀을 지휘하던 구리야마 감독을 잘 안다. 한일전 당일 도쿄돔에서 구리야마 감독의 인사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정말 훌륭한 어른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입니다."
현역 시절 '메니에르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리는 바람에 일찍 유니폼을 벗었던 구리야마 감독은 이후 20년 넘게 TV 해설가, 리포터 등 미디어 업계에서 일했다. 그 와중에 스포츠 미디어학 박사 학위를 땄고 하쿠오 대학의 교수도 역임했다. 구리야마 감독은 오타니의 기량만 키운 게 아니다. 자신의 지적 능력을 활용해 '독서 스승' 역할을 하며 인격의 성숙을 도왔다.
"오타니 쇼헤이에게 '논어와 주판'을 주고 몇 개월 지나서 독후감을 물어보니, "음.. 어려웠어요"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껏 읽어본 적이 없는 일본 근대 사람의 가르침이 귀에 쏙쏙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런데 그 후 목표 달성표에 '논어와 주판 읽기'라고 적었다. 감독에게 손수 받은 책을 처음부터 이해 못 했던 게 분했던 모양이다.
쇼헤이는 하든지 안 하든지 둘 중 하나다. 하고 싶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한다고 하면 꼭 한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부사와의 가르침을 읽기 위한 동기는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다. 쇼헤이가 '논어와 주판'을 지니고 메이저리그로 떠나는 게 진심으로 기쁘다.
다음 젊은 선수에게 쇼헤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전해야겠다고 싶어서 쇼헤이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는데, 이미 이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사진을 보내주었다. 책장에 놓인 책 중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경영자 이나모리 가즈오 씨와 사상가 나카무라 텐푸 씨의 책도 있었다. 내가 추천한 책을 쇼헤이는 사서 읽었다. 구장에 있는 쇼헤이의 라커에도 책이 있다."
구리야마 감독이 제자들에게 독서를 강조한 이유는 이렇다.
"독서는 이른바 자신을 만드는 일이다. 책 안에 있는 철학이나 경험을 자기 행동에 반영할 수 있으니까. 아주 복잡한 작업이지만 한순간의 움직임과 치밀한 통찰력을 키우고 승패를 좌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야구인으로서 성공하기보다 인간으로서 성공하기를 지향한다."
오타니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성장했다. 목표를 향한 성실한 노력, 야구에 대한 진심, 성장을 위한 치열한 연구와 실천, 팀을 위한 헌신, 검소함, 그리고 무엇보다 선함을 모두 갖춘,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인격체가 되었다.
"발전하는 연구가 '상식'을 다시 보게 한다. 코칭에 종착점은 없다."
"발전하는 연구가 '상식'을 다시 보게 한다. 코칭에 종착점은 없다."
- 요시이 마사토 일본 WBC 대표팀 투수코치 겸 지바 롯데 감독
이번 대회 일본 대표팀에서 빛난 투수는 오타니 말고도 또 있다. 21살 샛별 사사키 로키는 이번 WBC에서 시속 160km가 넘는 '광속구'를 가장 많이 던지며 메이저리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사키의 성장을 도운 사람 중에는 요시이 마사토가 있다. 현역 시절 일본과 미국의 여러 팀에서 구원투수로 활약했고 2008년부터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다. 2017년부터 지바 롯데의 1군 투수코치를 맡아 2020년 입단한 사사키의 성장을 이끌었고, 지난해에는 롯데의 감독이 됐다. 이번에는 WBC 일본 대표팀의 투수코치도 맡았다.
"코칭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느껴서 니혼햄 투수코치를 한 번 그만두고 2014년에 쓰쿠바 대학교 대학원 문을 두드렸다. 2014년 봄부터 2년 동안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전공은 체육학인데,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경기 지도방법이나 심리학, 인체 구조와 부위에 따라 근육이 각각 어떠한 활동을 하는가 등, 여러 방면에 걸친 내용을 배웠다.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처음이라 주변에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기를 쓰고 강의 진도를 따라갔다. 내 나이에 반 정도 되는 젊은 동급생에게 파워포인트 쓰는 법을 배우거나 하면서 말이다."
요시이가 2년 전 낸 저서는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 제목은 '최고의 코치는 가르치지 않는다.' 자신이 하던 대로 가르쳤던 일본의 전근대적 코칭이 유망주들을 어떻게 망쳤는지, 지도자가 왜 공부하고 선수와 함께 고민해야 하는지 실감 나게 담은 책이다. 그중 일본 야구의 훈련 방식에 대한 생각이 눈길을 끈다.
이성훈 기자che0314@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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