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복수의결권은 잘 다뤄질 수 있을까

김근우 2023. 3. 3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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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유치와 IPO 위해 해외로 가는 벤처기업
'거버넌스'와 '주주평등' 규정 상법은 고민거리
미국도 차등의결권에 무조건 우호적이진 않아
이 기사는 2023년03월31일 00시45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김근우 기자] 미국 SVB(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으로 국내외 벤처투자업계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 속에 ‘복수의결권’ 도입을 놓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창업자 또는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잃지 않고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자칫 최대주주의 경영권 독점과 불합리한 지배력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하는 등 ‘양날의검’이 될 수 있어서다.

현재 복수의결권 도입을 규정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태다. 다만 벤처·스타트업 창업자에 대한 복수의결권 부여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데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2020년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는 만큼 다음 논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상징하는 유리 피라미드 설립 30주년을 기념해 열린 야외 영화 상영 행사에 헬리녹스가 1000개의 캠핑 의자를 배치하기도 했다. [사진 헬리녹스 홈페이지]

투자 유치와 IPO 위해…차등의결권 있는 해외로

캠핑용품 제조 업체 ‘헬리녹스’는 최근 국내 주요 PE(프라이빗에쿼티)·VC(벤처캐피탈)로부터 1200억원의 투자 유치를 이끌어냈다. 이 자금은 싱가포르로의 플립(본사의 해외 이전)으로 발생하는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의 양도소득세 납부에도 활용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을 해외로 옮기면 국내에서 엑시트하는 셈이 돼 양도차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헬리녹스는 왜 세금 납부까지 감수하며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기려고 할까? 일각에서는 그 이유를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헬리녹스가 미국 나스닥 또는 싱가포르 상장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미 40% 안팎으로 지분율이 낮아진 라 대표가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을 원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헬리녹스는 전 세계 텐트폴 소재 시장 점유율 90%의 1위 업체인 동아알루미늄(DAC)의 사업부로 시작해 2013년부터 독립 법인으로 분사했다.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는 라제건 동아알루미늄 대표의 아들로, 아버지의 회사로부터 세계 최고의 텐트폴을 공급받아 텐트·의자·테이블 등의 캠핑용품을 만들고 있다. BTS·포르쉐·루이비통 등과 ‘콜라보’ 제품을 출시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유망한 벤처·스타트업이 더 크게 성장하려면 투자를 유치하고 공모 자금을 모아 상장에도 나서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창업자 또는 최대주주의 지분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아버지의 회사로부터 제품 제조에 필요한 알루미늄 폴을 공급받는 등 ‘가족기업’이나 다름없는 헬리녹스로서는 차등의결권에 대한 선호도가 보다 클 것으로 예측된다.

안 그래도 ‘거버넌스’ 취약한데…‘주주 평등’ 규정한 상법도 고민

현재 논의되는 복수의결권제는 창업자의 지분율이 30%를 밑돌아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할 경우 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문제는 ‘거버넌스’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등 소액주주 보호 장치가 미흡한 국내 증시에서 이를 도입하면 최대주주의 불합리한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국내 한 거버넌스 전문가는 “‘물적분할’ 이후 이어진 모자회사 동시상장 문제 등으로 소액주주들은 계속 피해를 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도입하기엔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벤처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의결권과 배당권을 분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추후 혹시라도 일반 벤처가 아닌 곳까지 확산하거나 상장 이후까지 유지되는 것으로 완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소벤처기업부와 국회 소관 상임위는 토론회와 공청회를 통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으며 다양한 보완장치를 마련했다. 기간은 최대 10년 이내로 제한하고, 75% 이상의 주주 동의를 거치며 보유 기간 내 상장할 경우 3년 유예를 거쳐 보통주로 전환한다는 내용 역시 포함돼 있다.

물론 1주에 1의결권을 부여하도록 한 상법과의 충돌 문제는 여전히 고민거리다. 상법 제369조 제1항은 ‘의결권은 1주마다 1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주주평등의 원칙’으로, 모든 주식은 주식 수에 비례해 평등하게 취급된다는 개념이다.

벤처기업협회와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 등 10여개 단체로 구성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이에 대해 “상법에는 이미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가 다수 설정되어 있다”며 “대주주 3%룰, 의결권이 전혀 없는 무의결권주식 등 정책목표에 따라 의결권을 달리 정하는 것은 상법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글로벌 벤처·스타트업 강국인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인도, 싱가포르 등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는 1주 1의결권 원칙으로 하면서 복수의결권주식을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쿠팡 경영진이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열린 상장 기념식에서 ‘오프닝 벨’을 울리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현명 쿠팡 IR 팀장,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 존 터틀 NYSE 부회장, 거라브 아난드 쿠팡 CFO가 서 있다.[사진 쿠팡 제공]

구글·쿠팡·알리바바 탄생시킨 미국은 차등의결권에 우호적일까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은 클래스A 주식에 1주에 1의결권을 부여하지만, 클래스C에는 의결권이 없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증권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으며 주당 10개의 의결권을 가진 클래스B 주식만 보유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 역시 7%대 수준의 지분율을 보유하고도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지난 2021년 3월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할 당시 김범석 의장이 가진 클래스B 주식 1주는 클래스A 주식보다 무려 29배나 의결권이 많다. 2%만 가져도 58%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상장 직후 그의 의결권 기준 지분율은 76.7%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미국이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에 무조건적으로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캘퍼스(CalPERS,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 등 미국의 주요 공적연금들이 회원으로 있는 CII(Council of Institutional Investors)는 2016년부터 차등의결권 기업에 대해 기한부 일몰조항 도입을 요구해왔다. 또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 IPO(기업공개) 시 1주 1의결권을 준수하도록 하거나 7년 이내로 기한부 일몰조항을 의무화할 것을 청원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의결권자문기관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역시 2016년 합리적인 수준의 일몰조항을 채택하지 않는 차등의결권 기업에 대해서는 이사 후보를 반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결권행사 가이드라인(United States Proxy Voting Guidelines)을 개정했다. ‘S&P’, ‘Dow Jones Indices’ 등 글로벌 지수(index) 회사들도 차등의결권 기업에 페널티를 부과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근우 (roothelp@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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