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의 시론]한미일 ‘3국 핵 공유’ 추진 필요하다

2023. 3. 3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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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우크라戰 이후 核 위협 극대화
日선 아베식 核 공유 재론 기류
그런 방안 확장하면 일석삼조
동북아 핵 지정학 대변동 국면
북·중·러 협박 맞서기 위해선
확장억제 넘어 핵공유 불가피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1954∼2022) 전 총리를 둘러싼 논란은 타계 후에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안보 분야에서 획기적 업적을 이뤘다는 점에 대해선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일본은 평화헌법에 따라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지만, 그는 2014년 ‘해석 개헌’ 편법을 통해 집단자위권을 확보하며 정상국가로 가는 길을 닦았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지난해 말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문서 개정으로 반격능력을 확보했다. 일본이 적의 공격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나라가 되면서 아베의 보통국가 꿈도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는 최근 ‘일본은 핵 공유 협정을 추진해야 하는가’라는 칼럼에서 “일본은 핵에 대한 터부를 깨야 한다”며 아베의 유지(遺旨)를 환기시켰다. 아베는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세계 안보가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시작할 때”라면서 미·일 핵 공유 협정을 제안했다. 당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동맹국 전직 정상의 제언을 진지하게 검토하라”는 사설을 썼다.

아베의 경제고문으로서 아베노믹스를 설계한 하마다 교수가 이를 다시 꺼낸 것은 북·중·러의 핵 위협이 급격히 고조돼 미국과의 핵 공유가 불가피해졌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하마다 교수에 따르면 생전에 아베는 “도널드 트럼프가 일본을 지켜주겠다고 했지만, 그를 믿어도 될지 확신이 안 선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협박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약속에만 의존해선 국가를 지킬 수 없다는 게 아베의 고민이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 직후 가장 먼저 예방하고, 트럼프의 요구대로 노벨상 추천까지 했던 아베의 솔직한 고백이라는 점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동맹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일에 대한 확장억제 강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다시 트럼프류 인사가 등장할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중국과 북한은 최근 들어 주변국 협박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핵우산에만 의존하다간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다. 하마다 교수가 아베의 유산 공론화에 나선 것은 이런 상황을 감안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 임기 내 핵 공유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우리도 핵 역량 확보는 발등의 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4월 워싱턴 방문 때 하마다 교수의 논지를 발전시켜 한·미·일 핵 역량 공유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미국·영국·호주 핵잠수함 동맹인 오커스(AUKUS)처럼 한·미·일이 포괄적 핵 공유에 나서자고 하면 일석삼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첫째, 한일관계가 교과서 문제로 다시 격랑에 빠졌지만, 아베의 유산을 잇자고 먼저 손을 내밀 경우, 의외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아베파는 자민당 최대 파벌이다. 권력 기반이 약한 기시다 총리는 연립 여당 공명당의 눈치를 보지만, 아베파가 밀어붙이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될 수 있다. 둘째, 핵심 동맹국인 한·일이 함께 핵 역량 공유를 제기한다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유지 명분을 내세워 핵 공유에 소극적인 미국을 설득하기도 쉬워진다.

셋째, 3국 핵 협력이 본격화하면 나토식 전술 핵 공유에서 원전 연료인 저농축 우라늄 생산 기지 조성 등의 공조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한국은 핵 역량 확보를 위해 갈 길이 멀지만, 일본은 재처리 시설에 47t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우리가 얻을 게 많다. 당초 아베는 ‘핵을 생산·보유·반입하지 않는다’는 일본의 비핵 3원칙을 감안해 ‘일본 밖 핵 공유’ 개념을 제시했지만, 북·중의 핵무기 양산으로 동북아시아의 핵 지정학이 대변동 국면에 접어들며 일본 기류도 바뀌고 있다.

3연임을 시작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장기 집권 명분을 위해 대만 침공에 나설 때, 북한 김정은이 부화뇌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2개의 전장에 대응해야 하는데 확장억제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한·일은 순식간에 핵 없는 우크라이나 처지가 된다. 징용 갈등 해소로 한·일 안보 공조 기반이 마련된 만큼 윤 대통령은 미·일에 핵 역량 공유 제안을 해야 한다. 그것이 북·중·러 독재국들의 핵 폭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최선의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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