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양곡법 재의 요구 당위성과 보완 대책

2023. 3. 3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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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총리가 지난 2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함으로써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은 다시 국회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개정안은 지난 75년 동안 양곡법이 외부 상황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과정을 단숨에 되돌려 버리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결국, 이번 양곡법 파동을 쌀과 농업정책 전반에 걸쳐 이런 미래 지향적 논의를 이끄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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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서울대 교수·농경제학

한덕수 총리가 지난 2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함으로써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은 다시 국회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의 요구는 의미가 있다. 양곡법은 1948년 ‘양곡매입법’(매입법)에 뿌리를 둔다. 매입법은 해방 직후 식량 부족 상황에서 양곡을 국민에게 고루 배분하려는 목적으로 시행한 정부 의무매입법이었다. 1950년에 양곡법으로 대체돼 지금까지 진화해 왔다.

우선, 개정안은 지난 75년 동안 양곡법이 외부 상황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과정을 단숨에 되돌려 버리는 문제를 안고 있다. 상황이나 시대착오 탓일 수 있다. 양곡법의 가장 큰 진화는 2005년, 당시 60년 이상 유지하던 정부 매입제 폐지다. 쌀이 공급 초과로 바뀌고, 국내 정책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따라야만 하는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이었다. 어렵게 이뤄 온 진화가 이번 개정안으로 퇴화할 우려가 있다.

시장에서 팔다 남은 쌀을 정부가 사주는 게 정치적으론 가장 쉬운 해법일 수 있다. 그러나 세금으로 사주는 인위적 매입이 지속 가능할 리 없다. 정부가 직접 주도한 이런 수급 조절 정책은 미국·유럽·일본 등 많은 실패 사례가 있다. 그래서 주요국 정책은, 특정 품목 생산을 유인하지 않는 방법으로 생산자 소득을 유지하고 위험관리 제도를 튼튼히 해서 생산자가 자율적으로 경영 관리를 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다. 대통령의 재의 요구는 지속 가능한 관점에서 미래 지향적 쌀과 농업정책을 논의하는 기회로 이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한정된 예산의 투입 우선순위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최근 통계를 보면 쌀 생산 농가의 47%가 70세 이상이고, 77%가 60세 이상 경영주 농가다. 벼농사는 거의 100% 기계화했고, 항상 정부 정책의 중심 대상 품목이라는 점에서 고령 농업인의 쌀 생산 선택은 당연하다. 또, 우리나라 농업인 수가 유럽의 영국·프랑스·독일 세 나라 농업인을 합친 수와 맞먹는다. 5000만 인구의 한국이 총 2억 명이 훨씬 넘는 영·프·독 3국 농민 수와 비슷하다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 농업인은 급속한 고령화에도 쉽게 은퇴할 수 없고, 쌀 생산으로 집중하는 구조다.

대규모 농업인의 농업 부문 체류는 토지·시설과 같은 농업자원·자산의 유동성을 저하한다. 이는 당연히 농업자원·자산 가격 경직성의 요인이 되고, 가격 경직성은 새로운 농업인에게 진입 장벽이 된다. 결국, 요즘 정부가 강조하는 청년 농업인 육성, 스마트·디지털 농업 확산 등에도 장애 요인이 된다. 정부 가용예산을 은퇴연금 등 고령농업인 복지에 집중함으로써 농업자원·자산의 유동성을 높이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번 양곡법 파동을 쌀과 농업정책 전반에 걸쳐 이런 미래 지향적 논의를 이끄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쌀의 정부 매입은 쌀이 모자랄 때 균등 배분과 생산 장려에 사용한 정책이다. 공급 과잉으로 상황이 그때와 정반대다. 쌀 매입정책을 시행한다면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예산 투입의 우선순위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의 재의 요구가 ‘정치재(財)’가 아닌 경쟁력 있는 ‘시장재’ 쌀이 되도록 하는 새로운 논의의 물꼬를 트는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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