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뇌도 다양하다’ 인정하는 총천연색 세상으로

한겨레 2023. 3. 3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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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다양성’을 자기 삶으로 살아낸
ADHD·ASD 대학교수, 호주 코미디언

‘정형발달’에만 적합하게 디자인된 세상
다르다며 비하하는 차별·배제 끝내야

우리는 물속에 산다

발달장애로 살아가는 일의 감각적 탐구

요코미치 마코토 지음, 전화윤 옮김 l 글항아리 l 1만8000원

차이에서 배워라

해나 개즈비의 코미디 여정

해나 개즈비 지음, 노지양 옮김 l 창비 l 2만3000원

<우리는 물속에 산다>의 지은이 요코미치 마코토가 거리의 표식을 촬영해 수정한 이미지. 그는 자신이 걸을 때 과집중 상태에 빠져 이리저리 부딪히거나 넘어진다고 말한다. 글항아리 제공

몇 해 전부터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개념이 주목 받고 있다. 나 혹은 우리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여기고 배제하려는 습성은, 그들에게 다양한 명칭을 붙여 차별하는 일로 이어졌다. 성별‧인종‧연령‧국적도 모자라, 온갖 어려운 단어들 끝에 ‘장애’나 ‘증상’이라고 말을 붙임으로써 낙인을 찍곤 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자폐스펙트럼장애(ASD) 등이 그렇게 만들어진 대표적인 현대의 질병들이자 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신경다양성은 이러한 낙인과 배제의 메커니즘에 도전하는, 즉 나나 우리와는 다름을 다양성의 한 형태로 인식하려는 실천적 노력이다. 최근 출간된 <차이에서 배워라>(창비)와 <우리는 물속에 산다>(글항아리)는 신경다양성의 개념을 삶으로 살아내는 저자들의 오롯한 기록을 담은 책들이다.

<우리는 물속에 산다>의 저자 요코미치 마코토는 마흔 살이 되던 해에 차례로 에이디에이치디와 에이에스디 진단을 받았다.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우리가 ‘정신질환’ 당사자로 취급되는 데에는 부당한 측면이 있다”면서 “의학적 지식이 (…)내 분신은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선언한다. 저자는 “나라는 유일무이한 인간의 자기 해부 기록”인 이 책을 통해 자폐로 살아가는 일이 어떤 것인지, 자폐가 아닌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신경다양성을 “뇌의 다양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 다양성이 “선민의식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한다. 남들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마저도 차별과 배제의 논리에 빠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는 편견과 배제의 논리에 사로잡힌 세계에는 반기를 든다. 그 일환으로 일반인을 “정형발달인”이라고 부른다. 자폐인의 경우 공감 능력이 낮다는 인식이 강한데, 이는 “소수인 우리와 다수인 정형발달인 사이의 단절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명토박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미 “다수인 정형발달인에 적합하게 디자인된” 곳이다. 우리 범주 안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험악한 곳이 세상일 수밖에 없다. 저자가 꿈꾸는 세상은 거창하지 않다. “거리는 요철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도록 포장되어 있고, 타인에게 공격당하거나 사유물을 빼앗길까봐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도록 법제도가 정비되어 있다. 이런 것이 환경 조정이다.”

아울러 저자는 정형발달인을 포함한 모두가 “다양성을 살고 있다”는 간단한 원리가 통용되는 사회를 꿈꾼다. 물론 사회가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디자인은 물론 “통념, 규범, 가치관, 언어 운용 등 구성원들의 정신상의 디자인”도 바뀌어야 한다. ‘정상인’이라 부르는 정형발달인의 삶의 패턴과 속도에 맞춰진 사회 환경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신경다양성 개념이 널리 인식되지 않은 현재의 단계에서 불가결한 장애인 지원이 중단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신경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는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 체계를 갖춘 사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앞서 썼지만 정형발달인도 그들이 살기 편안한 세계가 구축되는 형태로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물속에 산다>의 지은이 요코미치 마코토가 자신의 감각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이미지. 글항아리 제공
호주 출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 그는 ADHD, 자폐 진단을 받은 젠더퀴어로서, 소수자성이야말로 자신의 힘이라 믿으며 독창적인 코미디를 펼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해나 개즈비가 자신의 코미디 대본을 준비하며 작성한 노트. 창비 제공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우리 시대 스탠드업 코미디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해나 개즈비의 <차이에서 배워라>는 신경다양성으로서의 자기 서사를 거침없이 드러낸 책이다. 저자는 1997년까지도 동성애가 범죄였던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에서 퀴어 어린이와 청소년으로 자랐다. 어쩔 수 없이 자기혐오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뚱뚱하고 뭘 해도 어색한 레즈비언”이었다는 저자의 말은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폐쇄적이었던 당시 사회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코디미언이 된 것은 “반은 농담으로 친구에게 심심한데 거기나 나가볼까 했던 것이 시초”였다. 하지만 자폐와 에이디에이치디는 물론 젠더퀴어로 겪은 갖가지 이야기를 무대에서 선보임으로써 웃음 뒤편에 감춰졌던 삶의 진정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그의 코미디는 요즘 말로 ‘영혼을 갈아 넣어’ 탄생한 작품들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코미디란 상처에 시간을 더하면 완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시간은 필요 없었다. 나는 수치심이 자존감을 짓밟아 가루로 만들어놓은 바로 그때 남을 웃기는 글을 쓰곤 했다. 신들린 재주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탄생한 코미디 쇼 <나네트>는 넷플릭스에서 상종가를 쳤고,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수년간 가장 많이 회자되고, 언급되고, 공유된 코미디”다. 다만 개즈비의 코미디에는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소외시키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소수자들의 삶을 긍정하는 다양한 함의들을 세상에 던졌다. 저자는 새로운 쇼를 구상할 때마다 “현실 곧 폭력을 얼마나 많이 편집해야 코미디라는 맥락 안에서 무리 없이 작동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고 한다. 웃음과 함께 세상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겠다는 결의와도 같은 것이다. 다만 이것은 개즈비의 생각에 그치지 말고, ‘정상인’이라고 불리는(혹은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온갖 차별과 배제의 선긋기가 자행되고 있다. 해나 개즈비의 지적처럼 “이제 해로운 농담은 끝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야만 요코미치 마코토의 지적처럼 “뇌의 다양성”이 용인되는, 하여 회색빛 세상이 아니라 총천연색의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속에 산다>와 <차이에서 배워라>에서 저자들이 삶으로 보여준 ‘신경다양성’은 사실 극히 일부의 사례에 불과하다. 여전히 많은 신경다양성 당사자들은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우리가 여전히 그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을 넘어 다양성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용기가 내게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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