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선거구제 개편으로 정치 양극화 해소해야”
“尹, 본인 임기 줄이는 ‘4년 중임제’ 개헌 결단하면 역사에 남을 것”
(시사저널=김종일·이원석 기자)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시종일관 '정치 양극화' 해결을 강조했다. 제2의 도약이 필요한 대한민국이 그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바로 극심한 정치 갈등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현재 국회의장실 산하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3월27일 서울 서초동의 한 로펌에서 마주 앉은 그는 거듭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전 부의장은 5선 국회의원(16~20대), 해양수산부 장관, 국회부의장 등을 지냈다.
"선거제 개편, 정치 선진국으로 가는 첫걸음"
단도직입적으로 국민 입장에서 '왜 지금 선거제 개편이 필요한가'라고 묻는다면.
"지금 정치가 너무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래서는 나라의 미래가 결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어렵다. 양극화로 인한 정치 분열을 해소하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선거제 개편이다. 야권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지금의 선거제도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올려 일방 처리했다. 선거제 개편을 합의가 아니라 일방 처리한 것은 매우 드문 역사다. 그렇게 아주 우스꽝스러운 위성정당이라는 결과가 초래됐다. 어차피 선거제를 개편해야 하는데,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런 때에 선거제도를 좀 크게 변화시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게 됐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할 선거제도 개편안 3개를 확정했다. 선호하는 안이 있나.
"①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②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③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등이 제시됐는데,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안을 선호한다. 1안과 2안은 계산법이 너무 복잡하거나, 종전의 소선거구제로 복귀 또는 위성정당이라는 병폐를 근본적으로 막기 어렵기 때문에 차제에 선거제도를 바꿔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3안은 국민이 바라는 것처럼 의원 정수를 증원하지 않으면서도, 비례대표제도도 개선할 수 있어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안이라고 본다."
세 번째 안을 선호하는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일단 중대선거구제를 하면, 한 지역구에서 최소 3명 이상을 뽑기 때문에 거대 양당뿐만 아니라 소수 정당들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정치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된다. 또 국민이 반대하는 의원 정수 전체 증원도 하지 않으면서 비례 정수를 늘릴 수 있다. 아울러 선거구 간 인구 비례를 2대1로 맞추라는 헌법재판소 결정도 지키면서 지역구는 줄이고, 비례대표는 늘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결국 게임의 룰을 정하는 것은 현역 의원들이다.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에 중대선거구제로 선거제를 개편한다면 우리 정치 발전에 큰 획을 긋는 일이 된다. 정치 개혁의 첫 발걸음이자 정치 선진국으로 가는 첫걸음인 것이다. 그런 만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여야 정당과 현역 의원들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 주면 좋겠다. 정치인 한 명의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해 대승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을 내주길 기대한다."
이 위원장은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꼽힌다. 지금 왜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나.
"'1987년 체제'는 민주화 구축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5년 단임제라는 우리 대통령제의 역사는 그렇게 좋은 평가를 못 받는다.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는 대부분 불행했다.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5년 단임제가 가진 제도의 문제일 수도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리는 지금의 권력구조가 가진 폐해를 손볼 때가 됐다. '절대권력' 휘두르듯 권력을 남용하는 현상은 국민에게 좋지 않다."
그동안 개헌 추진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개헌 추진은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 국민은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그렇다면 개헌 논의에 여러 가지를 다 한꺼번에 넣을 게 아니라,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대통령 임기를 국회의원 임기와 맞추는 4년 중임제만 '원 포인트'로 추진해야 승산이 있다. 그리고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 대통령은 임기 초엔 자기 의제가 '개헌 블랙홀'에 갇히니까 개헌을 추진하지 않는다. 임기 말엔 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반대한다. 대통령의 국정 의제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는 시점에, 다음 선거가 오기 전에 개헌을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
개헌 추진과 관련해 윤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윤 대통령이 내건 3대 개혁을 일정하게 마무리한 후 개헌을 추진하면 좋겠다. 윤 대통령이 4년 중임제를 본인 임기를 줄이면서까지 추진하겠다는 큰 결단을 한다면,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윤 대통령이 곧 임기 1년을 맞는다. 그동안 잘한 점과 더 집중해 성과를 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치 신인인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의 국정에 대해 강한 저항감을 가졌던 국민 덕에 대통령이 됐다. 국민의 그 뜻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보였던 '내로남불' 양상을 제대로 바로잡고 있다고 본다. 북한과의 관계도 바로 세웠다. 미국과의 관계도 정상화되고 있다. 일본 측 호응이 부족하긴 하지만,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결단을 내린 점도 눈에 띈다."
더 집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윤 대통령은 올해 초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위대한 지도자가 이끈 위대한 미래, 국민과 함께 잊지 않고 이어가겠습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박 전 대통령이 설립한 구미의 금오공대도 방문했다. 이 대목에서 '윤석열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국정철학이 녹아있는 메시지였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규제 혁신, 교육 혁신, 인재 혁신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미국의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 같은 혁신기업을 우리도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세월호에 전력 다하니 유가족과 동질화돼"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참사가 포개진다는 얘기도 많다. 무엇이 여전히 부족했다고 보나.
"엄청난 국가적 불행이었는데, 그런 불행이 다시 되풀이됐다. 그런 큰 사고가 날 수 있음을 예견하고, 관련 방지책을 다 마련했어야 마땅하다. 구청과 지자체, 경찰, 소방, 관련 부처 등이 사고를 예견하고, 방지책들을 촘촘히 점검해 사회 전반에 있을 수 있는 안전 사각지대를 점검했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부족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다.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에서 유족들에게 원망을 들으면서도 136일 동안 현장을 지켰다.
"초기에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저 XX' 같은 욕은 물론 '저 XX 빠뜨려 죽여라'라는 말도 허다하게 들었다. 옷이 찢어지는 일도 허다했다. 허리띠 붙잡히고, 뒷덜미 잡히고 하니 옷이 북북 찢어지더라. 많은 일이 있었는데, 진정성을 갖고 아픔에 공감을 표하고, 구조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자세를 보이니까 유가족분들과 동질화되더라. 그래서 나중에 정치권에서 해수부 장관을 공격한다고 하면 오히려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시곤 하셨다."
마지막으로 윤 대통령에게 딱 하나만 조언한다면.
"최고지도자는 전체 국민을 이끌어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용과 소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포용해야 한다. 위대한 소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그레이트 커뮤니케이터(Great Communicator·위대한 소통인)'가 돼야 한다. 그렇게 해서 국민 다수가 '나라의 미래를 제대로 개척하는 지도자구나'라는 평가를 해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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