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문제점? 10년간 지적해도 그대로… 늘 공부하고 준비하라”[M 인터뷰]
작년 52년 지도자 생활 마무리
3차례 암투병 사실 뒤늦게 알려
최근 5년간 日소프트뱅크 고문
‘우물 안 개구리’였단것 깨달아
훈련 많아 선수 혹사시킨다고?
매일 새벽시장 가는 상인 보면
그 훈련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개막 앞둔 KBO 구단과 선수들
야구때문에 살고있다는 의식과
고마움 알고 발전방향 고민해야
‘야신’ 김성근(81) 감독은 아직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다. 김 감독은 “한번은 구단에서 경질된 후 운전면허 학원을 다녔는데 며칠 안 가서 다른 사령탑 제의를 받아 그만뒀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수차례, 결국 면허 획득에 실패했다”며 웃었다. “야구는 내 심장”이라는 그는 한국 프로야구 41년의 증인이자 레전드이고, 지독한 승부사다. 1969년 아마추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지난 52년간 프로야구 7개 구단의 사령탑을 두루 거쳤다. 또한 김응용·김인식 감독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 지도자 1세대로서, 김응용 감독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2651경기에 출전해 다승 2위(1388승)에 올라 있다.
김 감독은 평소 “칭찬받는 패자보다 욕먹는 승자가 되겠다”는 다짐처럼, 상대를 끊임없이 압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선수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지도자라는 긍정적 평가와, 승부에 집착하느라 선수를 혹사한다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김 감독은 지난 2018년부터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감독 고문으로 일하다가 지난해 10월 퇴진하며 반세기 넘는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가 진정한 ‘야인(野人)’이 됐을 무렵, 예능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에 나와 특유의 언변을 보여줬고, JTBC ‘최강야구’에선 감독으로서 다시 한 번 야구 열정을 불살랐다. 프로야구 개막을 앞둔 지난 23일, 성수동 집 근처의 한 카페에서 김 감독을 만나 다시 야구를 논(論)했다.
―‘최강야구’에 출연한 모습이 화제다. 예능과 안 어울리는 분인데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지난해 말 52년 지도자 생활을 마쳤다. 뭔가 더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가 출연 제안을 받았다. 처음엔 거절했다. 그런데 은퇴한 40대의 선수들이 매우 진지하게 하더라. 그런 나이에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퀴즈’ 인터뷰도 흥미로웠다. 특히 “암을 세 번이나 물리쳤다”는 대목에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것인데 어떻게 된 것인가.
“감독 할 때는 내 몸이 재산이다. 남에게 기대지 말자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쌍방울, SK, 한화 시절에 한 번씩 투병했다. 신장, 전립선 등에 발병해 수술했다. 피 기저귀를 차고 경기장에 나갔던 건 전립선암 때다. 그때는 주위에서 아무도 몰랐다. 철저히 숨겼다. ‘유퀴즈’에서 비로소 털어놓은 건 이제 내가 은퇴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에서 5년간 지내면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여전히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야구를 몰랐나 싶었다. 배우는 데 나이가 있나. 생각하기 나름이다.”
김 감독은 현역 시절 혹독한 훈련량으로 ‘악명’ 높았다. 소속팀 선수들에게 끊임없는 훈련을 요구했다. 이는 ‘최강야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 감독의 애제자인 박용택과 정근우는 “감독님이 여전하시다”며 “예능을 다큐처럼 한다”고 했다.
―승부욕이 너무 지나치다는 평가가 있는데….
“알고 있다. 그러나 감독은 소속 선수들에게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건 이기는 것이다. 돈도 모이도록 해서 자원을 풍성하게 해야 한다. 이걸 두고 일부 주변에서 타이트하다, 오버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이긴다. (나는) 1년에 사흘밖에 집에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선수들이 행복해지고 가족들이 잘 사는 것이다.”
―그래도 요즘 MZ세대의 가치관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어떤 게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아니다. 의지를 보이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역사를 보라. 언제나 시련의 시기가 있었고, 이를 극복하는 프로세스 속에서 인간이 성장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부족한 것 같아 뭔가 싶다.”
일본 교토 태생의 김 감독은 지금도 말에 일본어 억양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가 말할 때는 정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뭔가 비판적으로 말할 때 “이게 뭔가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데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과에 대해서도 꼼꼼히 지적했다. 인터뷰한 날은 WBC 결승전에서 일본이 미국에 3-2로 승리한 다음이었다.
―일본의 경기력이 놀라웠다. 한국 야구는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가 발전하기 위해서 미국 야구 등 남의 것을 흉내 내도 좋다.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크게 세 차례 정도 (한국 야구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그런데 바뀐 게 없다. 아쉽다.”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일본은) 적어도 (내부적으로) 의견 일치는 잘되는 것 같다. 2006, 2009 WBC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에 고전한 일본은 위기감을 느꼈고, 그 동력으로 발전했다. 이번에 5년 만에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태극기를 보고 이렇게 멋있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했다. 선수들이 가슴에 태극기를 그냥 붙인 게 아니다. 우리도 공부해야 한다. 항상 준비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가 있었다면 아마 연습 시간 자체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나마 이정후는 발견하지 않았나. 그를 어떻게 평가하나.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철(쇠)은 뜨거울 때 때려야 한다. SK 시절 최정, 김광현에게 엄청나게 연습하게 했다. 그들이 뜨거울 때 때려야 한다. 이정후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서 떨어져 나간다.”
―이번 대회 한국이 부진했던 이유로 고교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금지한 것을 들어, 알루미늄 배트 재도입론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보나.
“(씩 웃으며) 예전엔 마운드 높이를 낮춘 적도 있고, 볼 스피드를 낮춘 적도 있다. 이번엔 그런 얘기는 또 안 하더라. (알루미늄 배트를 원인으로 짚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냥 준비 부족이 원인이었다.”
김 감독은 비록 발음은 좀 어눌해도 무척 달변가다. 다양한 비유에 능하고 현상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비상하다. 팀의 전지훈련 캠프에서도 수시로 ‘정신교육’을 했다. 이게 알려져 외부 강연도 많이 다녔다. 정부 기관과 기업체 등 안 가본 곳이 없다.
―기억나는 강연은.
“박근혜 대통령 때는 비서실 직원들을 모아놓고 했고, 국가정보원과 감사원도 갔다. 현대자동차 분당 본사에서는 약 1000명을 모아놓고 이야기했다.”
―무슨 내용이었나.
“내용보다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당신들이 여기 왜 있는지 생각하라고. 나만 덕 보려고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한다. 특별한 강의 노트는 없다. 그냥 느끼는 대로 말한다. 진실을 털어놓기는 힘든 법이다.”
―이 시대의 리더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위에 아부하지 않는 사람. 배는 물이 중요하다. 배가 뜨려면 물이 있어야 한다. 물은 아랫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만두면 된다. 리더는 높은 데 있지 않다. 외롭고 괴롭다. 버텨야 한다. 그게 싫으면 떠나라.”
지도자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김 감독도 선수 시절엔 발이 느린 선수였다. 야구선수로선 치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발이 느렸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괴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대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까치발로 걸어 다녔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빨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청년 김성근은 어려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안 해본 일이 없다. 야구를 이어가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우유와 신문 배달, 막노동을 했다. 공 대신 돌멩이를 치면서 연습했다.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다. 부족하다면 해결 방법을 찾으면 된다. 안 된다고 슬퍼할 시간이 없다. 나는 그 순간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찾았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길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1961년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실업야구에서 다승 공동 2위의 투수가 됐다. 1969년 마산상고 감독으로 아마추어 지도자 첫발을 뗐고,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OB 베어스와 인연을 맺으며 프로 데뷔했다. 이후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등의 감독을 지냈다. 이 중 지금의 명성을 있게 한 ‘리즈’ 시절은 SK다. 김 감독은 SK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3회, 준우승 1회의 위업을 일궜다.
―이때도 선수혹사 비난은 여전했다.
“혹사는 무슨 혹사인가. 식당업 하는 분들을 보라. 날마다 새벽시장에 장을 보러 간다. 그거에 비하면 야구 훈련은 아무것도 아니다.”
―벌떼 투수, 번트, 대타 기용 등 한 점 한 점 쌓아가는 일본식 ‘스몰볼’ 야구에 대한 비판도 있다.
“야구에는 큰 동작에 의한 싸움도 있지만 1㎝의 싸움도 있다. 투수가 글러브 안에서 어떤 구질의 공을 던지기 위해 미세하게 손을 움직이는 건 1㎝의 싸움에 해당한다. 이 움직임에 따라 공이 달라진다. 감독은 이런 부분까지 캐치해야 한다. 더그아웃에서 멍 때리는 것 같지만 실은 상대 투수의 미세한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내 시력은 0.5밖에 안 되지만 그건 잘 보인다.”
―곧 프로야구 개막인데 발전 방향은.
“구단이나 KBO(한국야구위원회)도 그렇고 선수들도 야구 때문에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야구에 대한 고마움을 알고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요즘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매일 아침 2시간씩 서울숲 공원이나 한강 변을 걷는다. 오래된 습관이다. 현역 때부터 그랬다. 바쁜 시즌 중에도 했다. 오전 7시쯤 나가면 된다.”
이날 인터뷰는 2시간 30분이 넘게 진행됐다. 아무리 체육인이라고 해도 김 감독은 여든이 넘은 고령이다. 딱딱한 의자가 편했을 리 없다. 그러나 마지막 질문까지 성의껏 응답했다. 베테랑 감독의 품격을 보여줬다.
김인구 체육부장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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