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생의 스무살에 지구는[뉴스레터 점선면]

최미랑 기자 2023. 3.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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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5일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의 자파라바드에서 전례 없는 홍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바지선을 이용해 가축 사료용 건초를 나르고 있다. AP연합뉴스

※뉴스레터 점선면 3월29일자(https://stib.ee/mSK7)에 게재된 글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올해 태어나는 아이들이 7살이 되는 해. 이르면 2030년, 지구 표면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넘게 오를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상승 폭 1.5도는 전 세계 학자들이 ‘이것만큼은 넘기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던 바로 그 수치예요.

기후위기 뉴스는 어느새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 사이렌이 된 것 같습니다. 비상 상황이라고들 하는데 내용은 어렵고, 해결책은 막막하고, 볼수록 우울해지기만 한다는 생각에 피하고 싶은 마음도 드는데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선, 앞으로 7~8년의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기후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같이 살펴봐요.

먼저, 기후 문제와 관련해 가장 공신력 있는 IPCC의 발표를 토대로 근미래 시나리오를 써봅니다. 올해 태어난 아이들의 생애주기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봐요.

우리 정치와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마침 이 문제에 대한 국가 계획을 책임지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안)을 내놓았으니, 이 내용도 같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오늘의 점선면은 환경 담당 김기범·강한들 기자, 에너지 이슈를 담당하는 박상영 기자와 함께 준비했습니다.

1. “지금부터 8년이 지구의 미래를 결정한다”

·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난 20일 제6차 종합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 2040년 이전에 지구의 표면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올라갈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왔습니다.

· ‘1.5도’는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인류가 합의한 목표이자, 파국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수치입니다. 지구 표면 온도 상승 폭이 1.5도를 넘어서면 지구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뜨거워지고, 기후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될 가능성이 커요.

· 1.5도가 오르기까지 허용되는 탄소 배출량을 의미하는 ‘탄소 예산’은 약 500Gt 남았습니다. 현재의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으로 앞으로 약 8년간 배출할 수 있는 양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8년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예요.

· IPCC는 1.5도 제한이 깨지는 걸 막기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감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현재 세계 각국이 유엔에 제출한 자발적 감축 목표를 모두 달성해도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 단기적 대응책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IPCC는 특히 1.5도나 2도 제한 시나리오를 달성하려면, 금융 부문에서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연 평균 투자비가 현재보다 3~6배 늘어나야 한다고 제시했어요.

* IPCC 종합보고서 : 전 세계 기후변화 관련 전문가 1000여 명이 작성과 검토에 참여하고,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정부가 한줄 한줄 검토한 합의문입니다. 기후변화 분야 예상 시나리오 가운데 가장 공신력이 높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IPCC 보고서에 대해 “기후 시한폭탄을 완화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내용이자 인류를 위한 생존 지침”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어요.

2. “온실가스 줄인다며 산업계만 챙겼다”

· IPCC 제6차 보고서가 나온 바로 다음 날인 지난 21일, 우리 정부는 사상 첫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 지난해 시행된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5년을 주기로 20년치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이에 따라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초안을 내놓은 것인데요.

·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설정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그대로 유지하고, 산업계의 감축 부담은 줄였습니다.

· 산업 부문 감축 목표치를 2018년 대비 14.5%에서 11.4%로 낮추고, 이 축소분은 원자력발전 확대 등으로 대체한다고 밝혔어요.

· 처음으로 연도별 감축 목표도 제시했는데, 부담을 다음 정부로 다 미뤘습니다. 현 정부 임기 내에는 연평균 2% 정도씩 감축하다가, 다음 정부 시기인 정부 시기에 급격히 감축량을 늘리도록 설계했습니다. 총 감축량의 75%를 다음 정부로 미룬 겁니다.

· 환경단체들은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산업계의 민원만 해결했다”며 “사실상 기후위기 대응 포기 선언”이라고 비판합니다.

2030년대 초반에 지구 표면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넘게 상승할 거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왔습니다.

우리 정부가 최근 내놓은 탄소중립 계획은 산업계 감축 목표치를 줄여준 데다, 전체 감축량의 75%를 다음 정부로 떠넘겨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1. 1.5도 넘기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

올해 태어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2030년. 전문가들은 이때까지 탄소 배출을 확실히 줄여야 지구 환경의 불가역적이고 파멸적인 변화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실패해 지구 표면 온도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보다 높아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IPCC 보고서를 토대로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쓴 개연성 높은 시나리오를 한번 빌려와 보겠습니다.

올해 태어난 어린이 A의 생애주기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기사에 공개된 내용을 토대로 옮겨썼습니다.

북극곰 한 마리가 2021년 8월16일 프란츠 요제프 군도 영국해협의 녹아내려 얼마 남지 않은 빙하 위에 서 있다. AFP연합뉴스·AP연합뉴스
2030년. 어린이 A는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우리는 지구가 1.5도 넘게 뜨거워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되먹임 현상’에 의해 지구는 스스로 점점 더 뜨거워집니다. 이제 지구 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상승’이라는 ‘마의 수치’를 향해 달려갑니다.

이것조차 막지 못하면, 다음의 시나리오가 전개됩니다.

2042년. A는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이즈음 북극에서 얼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A의 성인기 동안에 뎅기열을 전염시키는 흰줄숲모기와 이집트숲모기의 서식 범위는 1000km가량 북상해 캐나다 중부와 동부에까지 이릅니다. 감염병의 위기가 더욱 커지고 빈번해진다는 뜻입니다.

A가 아직 서른 살이 되지 않은 2050년쯤, 식량 부족이 현실화합니다. 가뭄과 열에 민감한 옥수수의 수확량이 1억t 줄어, 인간 식량과 동물 사료 공급에 위기가 옵니다. 와중에도 지구의 온도는 계속 높아져 ‘3도 상승’에 이릅니다.

지표 온도 3도 상승 이후부터는 인류 문명 붕괴를 걱정해야 합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건 물론이고, 견딜 수 없는 폭염과 엄청난 습도의 살인적 날씨가 무시로 찾아옵니다.

A가 중년에 접어든 2075년(52세)쯤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4도 높아져 있습니다. 지구엔 이제 생물학적으로 사람이 살기 적합한 곳이 얼마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든 종 가운데 최소 6분의 1이 멸종 위험에 놓입니다.

A가 노년에 접어든 2090년(67세)에는 지구상 생명체의 종말이 가까워집니다. 지표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5도 상승했습니다. 원래 살던 기후대에서 살고자 하면 모든 생물종이 연간 극지방으로 62km씩, 총 6000km를 이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종은 없어요.

A가 살아남는다면, 지구 온도가 6도까지 상승한 세계를 목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세계는 고생대 마지막 페름기 말의 대멸종 시기와 비슷합니다. 전 세계 모든 숲이 동시에 불타오릅니다. 해수면은 너무 뜨거워 그 안에서 무엇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위 시나리오를 제시한 저널리스트 마크 라이너스는 이때 지구가 “그동안 인류가 알고 있던 지구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 거의 알아볼 수 없는,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세계”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손을 놓고 있다간 정말 이런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IPCC 총회에 참가한 이미선 기상청 기후과학국장은 IPCC 제6차 종합보고서 내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며 “이대로 가면 202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4도 이상 지구 온도가 상승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며 “빠른 기후행동이 이뤄지지 않으면 인간이 영향을 받는 것뿐 아니라 지구 시스템 대부분에 악영향이 미칠 것임을 보고서는 자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2. 돈의 흐름을 바꾸어야 한다

여전히 모두가 7~8년의 시간을 강조하는 건, 희망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더 이상의 온난화를 막으려면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전체 온실가스 배출이 ‘넷제로’ 상태를 이뤄야 합니다. 순배출량이 0이 돼야 한다는 뜻이에요. 배출량은 최대한 줄이고 나무를 심거나 탄소를 포집하는 신기술을 사용하는 등 노력으로 배출한 온실가스를 흡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해요. IPCC는 이번 보고서에서 “금융 부문에서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연 평균 투자비가 현재보다 3~6배 늘어나야 한다”고 특별히 언급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2025년 이전에 배출량이 정점을 찍고 이후 감소세로 내려오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우리 정부의 ‘제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계획’(이하 ‘탄소중립 계획’)에는 관련 내용 부실하게 제시돼있습니다.

정부가 향후 5년 동안 탄소중립 정책을 위해 쓰겠다고 한 정부 재정은 총 89조9000억원입니다. 연평균 약 18조원이에요. 세계적 권고 사항과는 괴리가 아주 큽니다.

2022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개정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세계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만을 위해서도 2030년 이전에 연평균 국내총생산(GDP)의 4.5%를, 이후 2050년까지는 2.5%를 써야 한다고 전망했어요.

지난해 우리나라 GDP가 약 1965조원이었으니, IEA 기준에 대입해 보면 앞으로 5년간은 연간 88조 4000억원을 써야 하는 셈인데, 지금 정부 계획대로라면 한해 쓸 예산을 5년에 걸쳐 나눠 써야하는 것이죠.

국내 싱크탱크들이 지난해 내놓은 ‘대한민국 K-MAP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도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2050년까지 총 약 1300조원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고, 정부 재정과 민간 투자를 합쳐 연평균 45조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어요.

3. ‘생존’만큼 무서운 키워드, ‘경제’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탄소중립 계획’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를 3.1% 포인트나 내려 잡은 것인데요.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에, 이번 발표를 두고 ‘산업계 민원만 들어줬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당장 경제 문제가 시급하니 기후위기는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결정의 이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에너지 문제를 취재해온 박상영 기자는 정부의 이번 결정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잘 들여다보면 이번 발표로 혜택을 입게 되는 곳은 산업 부문 중에서도 S오일, LG화학 등 ‘석유화학’ 부문의 기업이에요.

왜 석유화학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덜어줬을까. 이걸 이해하려면 곧 시행되는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알아야 합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탄소를 많이 내뿜는 철강, 시멘트 등을 수출할 때 탄소배출 부담금 성격의 관세를 물게 돼요.

첫 시행에서 ‘석유화학’은 대상 품목에서 빠졌습니다. 언제 다시 포함될지 모르지만 우선은 규제가 없는 부문이니, 정부가 ‘이때다’ 하고 전략적으로 석유화학 부문의 감축 부담을 덜어줬을 가능성이 있어요. 석유화학 부문의 수출은 유럽보다 동남아시아나 중국 등 환경 규제가 상대적으로 헐거운 나라들에 이뤄지고 있기도 하고요.

요즘 국내 석유화학 부문의 신규 투자가 활발합니다. 이달 초 S오일이 울산에서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을 할 때는 이례적으로 대통령까지 참석했어요. 반도체 등은 미국 투자가 활발하고, 국내에서 투자가 새로 일어나는 부문이 이것 외에 별로 없거든요.

석유화학은 탄소를 많이 내뿜는 대표적인 업종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 신규 투자가 활발하냐면, 정유 산업이 사실상 끝나가는 분위기이기 때문이에요.

정유 산업은 미래가 어둡습니다. 화석연료인 원유 사용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어, 새로운 공장을 짓는 기업이 거의 없어요.

석유화학 산업은 정유 산업과 마찬가지로 원유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합니다. 원유 기반인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만드는 거거든요.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나오고요.

원유 기반 산업을 해온 기업들은 기후변화로 규제가 늘고 신규 투자가 일어나지 않자, 정유사업 이외의 활로를 찾아 나서고 있어요. 이런 맥락에서 국내 기업들이 석유화학 설비를 늘리는 겁니다.

석유화학 부문도 언제까지 규제를 피할 수는 없어요.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는 산업이란 점은 정유업과 동일합니다. 이번에 정부가 감축분을 줄여준 게 장기적으로는 산업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봐야겠지요.”

결국, 정부가 근시안적 판단을 내리게 된 근본 원인도 기후변화였던 셈입니다. 산업 지형은 앞으로 계속 기후변화의 영향 아래서 바뀌게 될 거예요.

누군가 ‘경제 때문에 기후 문제는 어쩔 수 없다’라고 한다면, ‘경제 때문에 기후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환경경제학자 홍종호 교수도 지난 2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인류 존속을 위해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이유보다도 국내 기업이 당장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정부와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향후 100년 동안 지구는 과거의 대멸종 시대에 가까운 변화를 겪게 될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재생에너지 등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기술에 투자하는 일이 시급하지만, 우리 정부는 소극적입니다.

기후변화는 산업 지형까지 바꾸고 있는데, 정부가 임시방편적 대응을 하면서 장기적 산업 경쟁력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나와요.

1. 파국은 이미 왔다, 속도가 다를 뿐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당시 당사국총회 현장을 취재했던 김기범 기자는, 이번에 IPCC 제6차 종합보고서를 받아보고 “파국이 이미 왔음을 절감했다”고 말합니다.

“‘화석 연료 시대의 종언’이라는 평가를 받는 2015년의 ‘1.5도 합의’를 보면서 ‘희망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8년을 겪어보니, 인류가, 한국이 달라지는 속도보다 ‘기후위기 시한폭탄’이 다가오는 속도가 훨씬 빠른 것 같아요.

앞으로의 8년은 더욱 중요합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윤석열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대부분 다음 정부에 떠넘겼습니다.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불확실한 수단에 의존해 감축 계획을 세웠다는 점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정부가 주요 감축 수단으로 꼽은 CCUS(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의 경우 상용화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고, 상용화된다 해도 이산화탄소 저장 시설을 어디 지을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기술입니다. 가능한지 아닌지 모르는 방법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이에요.

지난해 9월 5일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의 자파라바드에서 전례 없는 홍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바지선을 이용해 가축 사료용 건초를 나르고 있다. AP연합뉴스

파국은 모든 곳에 한 번에 오지 않아요. 이미 와있습니다. 도달의 속도가 다를 뿐이지요. 가까이는 지난 여름 집중호우에 돌아가신 분들도 기후변화의 희생자예요. 파키스탄 사례를 보면 국가 전체가 대홍수로 이미 파국의 한가운데 있고요.”

2. 시민사회 ‘패싱’을 막자

지난해 독일의 홍수 현장을 취재하고 온 강한들 기자도 ‘파국’을 절감했습니다.

“홍수가 지나간 지 1년이 지났는데도 피해지역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어요. 철도와 다리도 복구되지 않았고, 복구를 위한 인력도 자원도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독일이라는 선진국도 기후위기를 피해갈 수 없었던 거예요.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탄소중립 계획’과 관련해서 강한들 기자는 이 그 수립 과정에 주목합니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산업계 의견은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 반영하고, 기후환경단체와 노동계 등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은 계획을 다 세운 후에 들었습니다.

시민들은 이번에 나온 계획안을 보고 토론에 참여해야 했는데, 공개된 계획안에는 꼭 필요한 정보가 많이 누락돼 있어요. 구체적 계획 없이 목표치를 내세운 후에, 세부 방안에 대해 질문하면 “불확실하다”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최소한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줄여준 정량적 근거가 무엇인지, CCUS를 활용한 감축분을 늘린 근거를 판단한 자료는 무엇인지 제시해야 했다고 봅니다.”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7일 열린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토론회에 불참 선언을 했습니다. 정부는 시민들 의견을 모아 4월 중에 계획을 확정하겠다고 했는데, 현재로선 진행 과정이 불투명하게 됐어요.

3. 기후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면

전기를 아끼고, 텀블러를 챙기고, 쓰레기를 줄이는 개인들의 노력은 정부의 무대책과 무관심 앞에 허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기후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문제를 오래 취재해온 두 기자에게 들어보았습니다.

“파국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인류 전체, 또는 한국 사회를 끝장내는 식으로 오지 않을 거예요. 파키스탄의 사례에서 보듯, 파국 이후에도 다수 인류의 삶은 지속된다는 점이 더 중요하지요.

인류의 선택에 따라 현재·미래세대가 겪게 될 ‘다른 세상’. 태어난 시점에 따라 경험하게 될 기후를 색으로 나타내고 있다. IPCC 제6차 종합보고서 정책 결정자를 위한 요약본(SPM) 갈무리

1.5도 상승을 막지 못하더라도 2도 또는 4도 상승이 실현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살아갈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만들고, 기성세대가 보낼 노년이 좀 더 안전해 지도록 조금이라도 부정적 영향을 줄이려고 노력하자고 다짐하곤 합니다.” (김기범 기자)

“최근 많은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돈의 흐름이 바뀌고, 기업의 전략이 바뀌고, 정부의 목표도 바뀌는 중입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기후 정책’은 윤석열 당시 후보자의 ‘RE100’ 논란을 제외하고는 주된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조차 못했어요. 정치인의 관심이 없다고도 볼 수 있지만, 시민이 ‘기후’를 가장 중요한 투표 기준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총선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기후 공약’을 찾아봐 주세요. 이 공약이 1.5도 목표, 2도 목표에 부합할지 생각해봐주세요. 어떤 정당을 지지해도 상관 없습니다. 기후위기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강한들 기자)

정부와 정치권은 기후위기와 관련한 의사결정에서 곧잘 시민을 배제합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표를 통한 의사 표현이 ‘기후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자, 정치의 ‘시민 패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세 줄 점선면

· IPCC는 최근 전 세계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줄여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각국이 유엔에 보고한 감축 목표량을 넘어서는 수치입니다.

· 우리 정부가 최근 내놓은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안)’은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기존보다 줄여준 점, 상용화되지 않은 신기술에 기대 감축분을 늘리겠다고 한 점이 크게 비판받고 있습니다.

· 기후위기는 경제와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기후 문제에 대한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표를 통한 의사 표현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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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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