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톡톡] 시트지 대신 담배광고 떼면 안 되나? 편의점 금연 정책, 삐걱대는 속사정

김은영 기자 2023. 3. 3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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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광고만 가리면 된다? ‘시트지 부착’ 실효성 논란
광고 가리려다 범죄만 늘어... 점주들, 규제 개선 요구
국조실, 시트지 제도 ‘규제심판’ 안건으로 검토
해외선 담배 진열·광고 금지... 편의점서도 안 팔아
편의점 매출 효자 담배... 금연 정책 딜레마

편의점 불투명 시트지 부착 문제를 두고 편의점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는 양상입니다. 불투명 시트지는 편의점 외부에서 내부 담배 광고가 보이지 않게 해 청소년 및 성인 흡연율을 낮추자는 취지로 2021년 도입됐습니다.

그러나 제도의 취지와 달리 편의점 근로자의 안전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월 인천 계양구 한 편의점 점주가 금품을 노린 범죄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하면서 업계에 시트지 부착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시트지가 편의점 내부를 가린 덕에 범죄가 더 수월했다는 주장인데요, 급기야 국무조정실까지 나서 해당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규제심판’ 안건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5일 오전 서울의 한 편의점에 편의점 내부의 담배 광고가 외부로 보이지 않도록 부착한 시트지. /연합뉴스

◇불투명 시트지 논쟁 여전...금연 도움되나

보건복지부는 2021년 7월부터 편의점 바깥에서 편의점 내 담배 광고물이 보이지 않도록 불투명 시트지를 부착게 하고 이를 단속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담배 광고물이 보일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해야 하죠.

시행 1년이 넘었지만, 현장에선 안착은커녕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청소년 흡연율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근무자의 범죄 발생 우려만 커졌다는 게 이유입니다.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의 흡연율은 2019년 21.5%, 202년 20.6%, 2021년 19.3%로 집계됐습니다. 편의점에 시트지를 부착한 후 청소년 흡연율이 소폭 줄긴 했지만, 금연 정책의 효과라고 보기엔 미미한 수준이죠.

청소년이 편의점이나 가게에서 담배를 얼마나 쉽게 접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지표인 ‘구매 용이성 비율’은 시트지 부착 후 되레 상승했습니다. 2021년 8~11월 질병관리청이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 6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구매 용이성 비율은 74.8%로, 규제 전인 2020년(67%)보다 7.8% 늘었습니다.

업계에선 밖에서 담배가 안 보이게만 하면 담배를 덜 필 거라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탁상 행정의 결과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주는 “우리 매장은 2년 전보다 담배 매출이 20% 늘었다”며 “개인적으론 좋지만, 정책 측면에선 실패”라고 평가했습니다.

◇시트지 떼자는 편의점주들... 국조실까지 나서

최근 편의점주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편의점주들 사이에서 제도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 편의점주는 “24시간 혼자 근무하는 편의점의 특성상 야간 근무 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불투명 시트지로 가려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며 “정부가 나서 범죄자들 멍석을 깔아준 꼴”이라고 했습니다.

편의점 담배 광고판이 보이지 않게 불투명 시트지를 붙인 편의점. /조선DB

하지만 시트지 제도를 만든 보건복지부는 “불투명 시트지 부착은 담배협회와 편의점업계가 협의해서 선택한 것”이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국무조정실(국조실)은 편의점 시트지 부착 문제를 ‘규제심판’ 안건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습니다. 규제심판제도는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된 규제 심판부가 개선 필요성을 판단해 소관 부처에 규제 개선을 권고하는 제도인데요.

이를 위해 지난 10일 국조실 규제총괄정책관실은 서울청사에서 한국편의점산업협회,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담배판매업중앙회와 간담회를 열고 업계 애로 사항을 청취했습니다.

◇해외선 담배 진열·광고 금지하는데, 우리는

그렇다면 해외에선 어떨까요?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TCT)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소매점과 노점을 포함한 판매점에서 담배 제품을 진열하고 시각적으로 노출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담배 광고는 물론 소매점에서 담배 진열조차 금하는 것으로 영국, 아이슬란드, 태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베트남 등 약 15개 국가가 시행 중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애당초 담배 광고를 하지 않으니, 시트지를 붙여 가릴 이유도 없고요. 담배 판매처도 청소년들이 접하기 쉬운 편의점이 아니라 담배 전문점인 곳이 많죠.

태국 푸켓의 한 편의점 내부. 담배를 전시해 흡연 욕구가 생기는 것을 막고자 담배 진열대를 가려두고 있다. /조선DB

국내에서 시트지 논쟁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담배 판매 구조에 있습니다. 국내에선 담배 소비의 상당수가 편의점에서 발생합니다. 편의점 전체 매출의 30~40%가 담배에서 나오죠. 담배를 팔지 않는 편의점도 일부 있지만, 담배를 파는 점포와 비교하면 매출이 20%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효자 상품이죠.

◇편의점 효자 담배... 금연 정책 시행 엇박자 날 수밖에

담배를 팔면 매출 외에 광고 수익도 얻을 수 있습니다. 담배 회사들이 시설 이용료 명목으로 편의점에 광고비를 지급하거든요. 카운터 뒤에 담배 광고판을 걸면 일종의 장소 대여비를 주는 것인데요. KT&G와 같은 담배 회사가 GS25나 CU 등 편의점 가맹본부와 계약을 맺고 매달 광고비를 지급하면,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에게 광고비를 배분합니다.

업계에 따르면 담배 광고비는 유동인구와 광고 진열 면적 등을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점포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엔 번화가 점포에서 한 달에 담배 광고비가 200만원 넘게 나와 그 돈으로 월세를 낼 정도였지만, 최근엔 편의점 점포 수가 늘어서 크게 줄었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편의점 점포는 한 달에 적게는 7~8만원, 많게는 50만원이 넘는 돈을 담배 광고비로 받는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소매점에선 담배 광고를 금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편의점도 담배 회사도 이로울 게 없으니까요. 그러니 ‘불투명 시트지 부착’이라는 다소 어설픈 금연 정책이 나오게 된 겁니다.

한 편의점 가맹본부 관계자는 “담배 판매 비중이 작아졌다고는 하지만, 일부 점포는 매출의 50% 이상이 담배에서 나올 만큼 의존도가 높다”며 “금연 정책을 이유로 담배 광고를 금하면 점주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근무자 안전 보장되는 금연 정책 만들어 달라”

시트지 정책에 대한 폐해는 편의점 점포를 운영하는 경영주들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점주들은 외부가 안 보이니 답답하고, 사고가 나더라도 밖에서 안 보이니 불안하다고 말합니다. 야간 영업을 위해 목검이나 야구 방망이를 비치했다는 점주도 상당수죠.

일부 점포에선 담배 광고와 함께 불투명 시트지를 떼는 움직임도 감지됩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한 달에 담배 광고비가 8만원 밖에 안 나와 광고판을 철거하고 시트지도 떼버렸다”며 “담배 조명을 제거해 전기 요금도 아끼고, 광고판에 있던 곳에 상품을 진열하니 수입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담배 광고판은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의 계약 하에 설치한 것이기에 점주가 임의로 훼손하거나 철수할 수 없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담배 광고판을 떼는 점주는 극소수라고 합니다.

가맹점주들이 금연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서울의 한 가맹점주는 “새벽에나 발생하던 사건·사고가 이젠 대낮에 발생하고 있다”며 “불투명 시트지가 근무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금연 정책을 강구해 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음 달 5일 국조실 규제총괄정책관실은 보건복지부가 참석하는 2차 간담회를 열 예정입니다. 편의점협회 관계자는 “근무자의 안전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금연 정책에 부합하는 활동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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