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 요리, 신고전학파 ‘단일 메뉴’에 맞서다

최재봉 2023. 3. 3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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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일치'.

음식에 관심이 많은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의 새 책을 보자니 이 말이 떠오른다.

1980년대 이후 경제학을 신고전학파라는 단일 사조가 지배하게 되었다는 문제의식이 이 책의 핵심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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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음식 이야기에 버무린 경제학 강의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l  부키  l  1만8000원

필리핀 팔라완 섬 엘니도의 코롱 코롱 해변에 코코넛 나무가 자라고 있다. 코코넛과 망고 등 과일 나무가 풍부한 열대 지방 사람들이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편견과 달리 그곳 사람들은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열심히 일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덕업일치’. 음식에 관심이 많은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의 새 책을 보자니 이 말이 떠오른다.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장 교수(런던대 경제학과)가 음식과 음식 재료 18가지를 소재로 삼아 들려주는 친절한 경제학 강의다. 도토리, 멸치, 국수, 코카콜라, 향신료 같은 음식 및 재료에 얽힌 개인적 경험으로 시작해 경제학의 이모저모를 흥미롭게 훑는다. 독자는 지은이와 함께 익숙하거나 낯선 음식 맛에 빠져들었다가는 어느새 경제학적 지식을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틔울 수 있게 된다.

1980년대 이후 경제학을 신고전학파라는 단일 사조가 지배하게 되었다는 문제의식이 이 책의 핵심을 이룬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 추정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를 주름잡으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정책적 발현이 신자유주의라 할 텐데,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자산 소유자(지주와 자본가)가 가장 큰 이윤을 내는 방법으로 자신의 자산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다.” 그러나 지난 150여 년에 걸쳐 자본주의가 그나마 인간다운 얼굴을 하게 된 것은 “자산 소유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독일 통일을 주도한 비스마르크는 극보수의 대명사라 할 만한 인물인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 국가를 처음 발명한 사람이 바로 비스마르크라는 사실을 장 교수는 강조한다. 독일을 통일한 직후 비스마르크는 노동자를 산업 재해에서 보호하는 보험 제도를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는 이어 공공 의료 보험과 공공 연금도 제정했다. 지금 많은 이들이 ‘사회주의적’이라고 여기는 복지 정책을 보수 우파를 상징하는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까닭은 다름 아니라 사회주의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거꾸로 당시 독일 좌파들은 비스마르크의 복지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노동자들에게서 혁명 의지를 빼앗고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는 까닭에서였다.

미국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이 적극 주도하는 긴축 재정과 무역 자유화, 규제 완화, 민영화 등의 ‘워싱턴 컨센서스’가 중남미 국가들에서 실패하고 그에 반대하는 ‘핑크 타이드’가 휩쓸게 된 현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기간에 부자 나라들의 성장률이 둔화하고 불평등이 늘었으며 금융 위기가 더 자주 발생했다는 사실 등이 궤를 같이한다. 자유 무역의 본고장으로 일컬어지는 영국과 미국 역시 경제 발전 초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보호주의 국가였다”든가, 부자 나라 중 보편적 공공 의료 보험 제도가 없는 유일한 나라인 미국인들의 건강 지표가 선진국 중 최악이라는 등의 사실이 그에 곁들여진다. 주주들의 권한을 제한하고 노동자와 부품 조달 업체, 지방 정부 등 ‘이해관계자’들이 기업 경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 역시 같은 맥락.

열대 지방 사람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편견, 유교 문화가 동아시아의 발전을 낳았다는 주장, 탁월한 비전을 지닌 기업가가 성공 신화를 이끈다는 착각, 자동화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두려움, 이제는 제조업이 아닌 금융과 서비스 부문이 번영을 주도한다는 탈산업 시대 담론 등을 장 교수는 차례로 무너뜨린다. 무보수 돌봄 노동과 이민 노동자, 기후변화 등에 관한 경제학자의 진단과 처방 역시 책에서는 만날 수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가 지난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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