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재도 오차 나는, 불확실해서 숭고한 세계 [책&생각]

임인택 2023. 3. 3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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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과학의 편리한 접목이 에스에프(SF)인데, 통상의 에스에프는 시공을 이동하며 외연을 확장하는, 엠비티아이(MBTI)로 치자면 E(외향)의 유형이다.

이 소설은 드물게 I(내향) 유형이다.

해서 SF로 분류될 수도 없으나, 우주가 팽창 중이듯 한국의 소설과 소설 사이도 '깊이' 팽창 중임을 증명하는 작품.

I 유형 서사의 숭고한 외연 확장 방식이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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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는 없어
양지예 지음 l 문학동네 l 1만4000원

문학과 과학의 편리한 접목이 에스에프(SF)인데, 통상의 에스에프는 시공을 이동하며 외연을 확장하는, 엠비티아이(MBTI)로 치자면 E(외향)의 유형이다. 이 소설은 드물게 I(내향) 유형이다. 안으로 침잠하여 광활해지는 나노적 집념이랄까. 해서 SF로 분류될 수도 없으나, 우주가 팽창 중이듯 한국의 소설과 소설 사이도 ‘깊이’ 팽창 중임을 증명하는 작품. 2021년 1월 <경향신문>으로 등단한 지 3년 만에 문학동네소설상(28회)을 받은 양지예 작가의 <1미터는 없어>가 확보한 족적이라 하겠다.

실종된 주인공을 찾아 짚는 행적은 진진하고, 중후반 이르러 주인공이 찾아 짚은 삶의 가치는 진지하다. 기실 ‘지당한’ 메시지가 이처럼 고귀해지는 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던 양지예(39)가 홀로 닦아 부려놓은 ‘문학’과 ‘과학’이 있다.

주인공 ‘그녀’는 불확정을 견디지 못하는 대기만성형 과학자이자 그를 통해 크게 성공한 사업가다. “확정할 수 없는 대상은 측정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는 대상은 정의할 수 없다”는 신념, “측정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 이런 강박은 ‘단위’로 표명되지만 실상 단위라는 언어만 불변할 뿐 단위의 진짜 ‘속성’은 각각의 질량, 위치 등에 따라 달라진다. 1미터란 길이조차 그러하고, 여전한 지각변동의 영향 내지 꼭대기 만년설의 포함 여부를 떠나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도 변한다. 그런 문제의식으로 소수점 12자리까지 표시되는 체중계-실내온도만 바꿔도 몸무게가 달라진다-와 한입에 넣을 수 있는 균질한 크기의 버거용 양배추 개발 따위로 그녀는 명사가 됐다.

그녀의 집념, 즉 불확정성과 다투는 확정의 윤리는 자못 안정과 화합을 함의하는 듯 보인다. 당장 파운드와 ㎏의 혼선으로 적정연료가 채워지지 않아 캐나다 국적기가 공중에서 멈추거나 나사(NASA)의 궤도선이 섰던 사태를 막는 데 요긴해 보인다. 주인공이 언어와 도량형이 제각각인 다민족 국가 미얀마의 표준단위계 도입 사업에 참여했다가-의도한바-사라지기 전까진 말이다.

대인관계가 불편하지만 “필연적 외로움”이 절망 대신 무한한 평화를 주는, 오차가 신비롭고 주변의 오해는 개의치 않는 그녀의 ‘속성’을 보건대, 측정은 당초 불변의 진리를 구하려는 욕망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하물며 권력과 지배질서의 기제로 두겠는가.

그녀의 ‘전설’을 구술하는 이는 한때 “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지 않”던 등반 모험가. 이미 공인된 높이의 세계 최고봉을 그녀가 제작한 지피에스(GPS)로 거듭 재달라는 의뢰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른다.

“(완벽한 측정을 믿지 않으면서) 그럼 왜 재는 겁니까.”

“…‘너를 알고 싶어.’ 손을 내미는 방법을 전 그것밖에 몰라요.”

확정이 아닌 불확실의 고유한 세계를 알아가고 증언하는 측정으로서, 그녀가 인천에 처음 설치된 수준원점표석(1917, 국내 해발고도 기준)을 한 뼘 한 뼘 울며 재고 깨닫는 모습(“하나도 모르겠어요”)으로 예견되었다. I 유형 서사의 숭고한 외연 확장 방식이라 해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2021년 등단한 양지예 작가.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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