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토종 씨앗, 소농의 희망

관리자 2023. 3. 31.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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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텃밭을 가꾸는 나는 봄이 되면 풍물시장 부근에 있는 묘목 상점에 가서 한뼘쯤 자란 갖가지 채소 모종을 사다 심곤 했어.

그래서 우리나라 토양에 적응한 토종 채소를 키우고 싶어졌어.

마침 남녘땅 순천에 사는 지인이 토종 씨앗을 나눔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넣었어.

중년이 넘어 귀농한 분인데 내가 토종 씨앗을 얻을 수 있느냐고 했더니 얼마나 반가워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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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텃밭을 가꾸는 나는 봄이 되면 풍물시장 부근에 있는 묘목 상점에 가서 한뼘쯤 자란 갖가지 채소 모종을 사다 심곤 했어. 상추·얼갈이배추·고추·오이·참외·수박 등을 구매해다가 텃밭에 심었지. 그런데 기후변화가 심해지며 그렇게 사다가 심은 채소 모종들이 각종 병해충에 너무 취약해 원하는 만큼의 결실을 거둘 수 없었지.

그래서 우리나라 토양에 적응한 토종 채소를 키우고 싶어졌어. 토종이 병해충에 강하다는 말도 들어서 말이야. 마침 남녘땅 순천에 사는 지인이 토종 씨앗을 나눔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넣었어. 중년이 넘어 귀농한 분인데 내가 토종 씨앗을 얻을 수 있느냐고 했더니 얼마나 반가워하던지. 토종을 귀하게 여기는 동지를 만나서 기쁘다고.

며칠 후 봉지 봉지 정성스레 싼 토종 씨앗이 택배로 왔어. 상자를 풀어보니 쇠뿔가지와 토종 고추 <수비초>, 토종 호박, 조선오이 씨앗과 몇종의 토종 콩 씨앗들까지 들어 있었어. 평소 토종에 관심이 있었지만 처음 이름을 들어보는 씨앗들이 대부분. 내가 원하던 씨앗 선물을 받고 나니 보고 싶던 친구가 오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았지.

그동안 나도 몇몇 종의 토종 채소를 키웠던 경험이 있긴 해. 제주도 구억리의 할머니 한분이 보존해온 구억배추 씨를 구해 벌써 몇년째 기르고 있고, 토종 무와 토종 홍당무도 키우고 있는데 그 맛과 강인한 생명력에 놀라곤 하지. 토종 콩 오리알태와 쥐눈이콩도 매년 심곤 하는데, 변덕스런 날씨에도 원하는 만큼의 수확을 할 수 있어 이웃들과 씨앗 나눔도 하고 있던 터.

나는 토종 씨앗을 보내준 분에게 최근에 내가 펴낸 야생초 요리책을 답례로 보내며 문자를 넣었어. “제가 무슨 금괴 따윌 보유할 형편이 못 되는 건 세상이 다 알지만, 난 토종 씨앗 수십종을 보유했다고 동네방네 자랑할 거예요. 고마워요!”

얼마 전엔 씨앗과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세계의 끝 씨앗 창고>란 책을 구해 읽었어. 동토의 땅 노르웨이의 빙산 속에 씨앗 창고를 만들어 전세계의 소중한 씨앗들을 저장해 지구 종말의 날을 대비하는 것이라는데, 그건 현대판 노아의 방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천지 사방을 휘둘러보면 지구 종말의 시나리오가 훤하게 보여서 하는 말이야. 아직도 더 풍족하게 살고 싶어 지구 자원을 무한정 파먹을 궁리만 하는 이들을 보면 묻고 싶어. 시도 때도 없이 혹한과 혹서가 밀어닥치는 기후변화로 인한 무서운 재앙을 보면서도 당신 혼자만 쩨쩨하게 더 잘 살 궁리를 하느냐고.

며칠 전엔 모판흙을 구해다가 어린 모종을 기르는 플라스틱 포트에 넣고 남녘땅 순천에서 온 토종 씨앗들을 심었어. 마음이 흐뭇했어. 비닐하우스가 없어 밤이면 온기가 있는 보일러실에 모판을 들여놓고 해 뜰 녘이면 봉당에 내놓고 작은 분무기로 물을 주곤 하지. 그러고 나선 곧 싹을 틔울 씨앗들에게 주문을 외듯이 중얼거리곤 한다네.

“씨앗들아, 너희가 있어 난 소농의 희망을 품을 수 있어. 자연의 원금을 까먹지 않고 자연의 이자로만 살려고 다짐하는 나는 그래도 추수할 날을 먼저 떠올리지 않고 그냥 씨앗을 훌훌 뿌릴 거야. 기쁨과 희망의 씨앗을!’

고진하 시인·야생초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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