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대맛] 출출한 저녁에 펼쳐든 豚家의 ‘족보’…족발 vs 보쌈의 대결

서지민 2023. 3. 3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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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40) 족발 vs 보쌈
탱글탱글 콜라겐 가득 족발
부드러운 앞다리 씹을수록 고소
퍽퍽한 식감 좋아한다면 뒷다리
새우젓만 찍어 깊은 육향 느끼고
쟁반막국수에 돌돌 말아 또 한입
담백 고기에 매콤 김치 보쌈
삼겹살·목심 등 다양한 부위 즐겨
국산 돼지고기 잡내 적어 맛 일품
소화 돕는 무생채 곁들여도 좋아
굴·홍어 등 해산물과도 찰떡궁합
보쌈은 아삭한 김치와 함께 먹으면 좋다. 족발은 껍질의 쫀득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밤에 눈치 없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당할 재간이 없다. 허기진 오후 11시쯤 우리는 어김없이 밤참의 영원한 라이벌 족발과 보쌈 사이에서 갈등한다. 짭짤한 새우젓을 곁들인 쫄깃한 족발과 매콤한 김치를 한겹 두른 부드러운 보쌈. 오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승자는 누구일까.

족발은 육수에서 꺼내 한시간 정도 식힌 다음 바로 썰어 나오는 것이 맛있다.

탱글탱글 콜라겐 가득, 족발 

잘 썰어 나온 족발을 보면 보통 반원 모양으로 두께는 0.5㎝ 정도다. 진한 갈색을 띠는 껍질, 적당한 지방, 담백한 살코기 순으로 이뤄져 있다. 족발은 이름 그대로 돼지 발로 만든다. 과거엔 돼지 발만 썼지만 시간이 흐르며 살코기 양을 늘리려고 정강이 부위까지 사용하게 됐다. 서너시간 핏물을 뺀 돼지 발·다리를 푹 삶은 다음 간장·양파·대파·생강 등을 넣어 한시간가량 졸여서 만든다.

족발의 매력은 탱글탱글한 식감이다. 껍질과 힘줄이 모두 콜라겐이고 여기에 붙어 있는 살은 쫄깃하다. 콜라겐은 관절·피부 등 우리 몸속 조직을 이루는 주요 성분이기도 하다. 또 돼지 발은 산모가 젖이 나오지 않을 때 고아 먹었다는 민간요법이 있을 정도로 단백질이 풍부한 부위다.

족발 맛잘알(맛을 잘 아는 사람을 칭하는 신조어)은 취향에 맞춰 앞다리·뒷다리를 골라 먹는다. 앞다리는 상대적으로 껍질이 많고 고기가 부드럽다. 씹을수록 고소한 앞사태살 부위가 포함돼 있다. 뒷다리는 기름기가 적고 살코기가 많아 퍽퍽한 살을 좋아하는 이에게 안성맞춤이다.

족발에 항상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단어가 바로 ‘장충동’이다. 서울 중구 장충동 3호선 동대입구역에 내린 뒤 출구를 나오면 ‘원조’라고 써 붙인 족발 맛집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원조 중의 원조라고 자랑하는 ‘뚱뚱이할머니집’을 찾아가봤다.

뚱뚱이할머니집은 1960년대 전숙렬 사장이 문을 열었다. 지금은 전 사장의 아들 김제연 사장(68)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 사장은 “어머니가 당신의 고향인 평안북도에서 종종 해 먹던 돼지 발 요리를 기억해내 만든 것이 바로 족발”이라며 “이북에선 된장을 양념으로 썼지만 어머니는 손님들 입맛에 맞춰 간장으로 양념하는 등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족발은 단골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주변에 비슷한 요리를 파는 음식점들이 생겨났다. 특히 장충체육관에서 프로레슬링 경기가 자주 열리던 1960년대 그 인기가 전국으로 퍼졌다. 지금도 체육관에 경기·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관객들이 모두 족발집을 찾아 이 일대가 마비될 정도다.

김 사장은 족발의 천생연분은 누가 뭐래도 쟁반막국수라며 대신 주문을 넣어줬다. 주방에선 육수에서 꺼내 한시간 정도 식힌 족발을 주문이 들어오는 동시에 숭덩숭덩 잘라 내놓는다. 김 사장은 “이렇게 한김 식혀야 쫄깃함이 살아난다”며 “최근엔 말캉말캉 씹히는 것이 좋다며 따뜻한 족발을 요청하는 손님도 늘었다”고 말했다.

한접시 수북하게 나온 족발을 한점 집어 먹는다. 맛있게 먹는 법은 새우젓을 약간만 찍어 족발 특유의 향을 그대로 음미하는 것. 상추에 올려 알싸한 마늘과 곁들여도 맛있다. 김 사장은 쟁반막국수 면발을 푸짐하게 집어 족발에 감싸 먹으면 색다른 별미라고 일러준다. 그는 “온갖 한약재와 커피를 넣어 족발 잡내를 잡는다는 집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돼지의 구수한 맛은 사라지고 약재·커피 맛만 남아 아쉽다”며 “국산 돼지 발은 양념에 생강 비율만 잘 맞추면 잡내 없이 깔끔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50년 전통 원조 족발집 비결은 수십년 된 육수다. 가게 초창기부터 써온 육수를 한번도 식히지 않고 계속 끓여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김 사장은 “돼지고기에서 나온 육향이 응축돼 깊은 감칠맛을 낸다”며 “늦은 밤은 물론 새벽에도 육수 끓이는 불을 꺼뜨리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서지민 기자 west@nongmin.com 사진=김건웅 프리랜서 기자

보쌈은 먹는 사람 취향에 따라 얇거나 두껍게 썰어낸다.

담백 고기에 매콤 김치, 보쌈

뜨거운 물에 통째로 푹 삶은 돼지고기를 도톰하게 썰어내 김치와 함께 먹는 음식이 바로 보쌈이다. 기름기가 적당히 빠진 보쌈 고기는 살코기와 비계가 적절히 섞여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돼지고기의 어떤 부위를 사용했는지, 어떤 재료와 함께 삶았는지에 따라 각양각색이지만 한점 한점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다는 점은 같다.

보쌈이 지금은 ‘삶은 돼지고기를 김치와 함께 먹는 음식’ 또는 ‘보쌈 고기’ 자체를 가리키지만 원래는 과일·해물·채소를 양념에 버무린 뒤 절인 배추로 감싼 ‘보쌈김치’를 뜻했다. 보쌈김치는 황해도 개성지역에서 많이 먹던 음식이다. 개성산 배추는 통이 크고 잎이 넓어서 김칫소를 싸기 적절했다. 주머니처럼 싸고 있는 배추 잎을 한겹 한겹 풀어, 다양한 속 재료와 함께 먹는 재미가 있다.

대구 중구 남산동에는 보쌈 골목이 있다. 1983년 첫 보쌈집이 문을 연 후 1990년대에는 10여곳의 가게가 영업할 만큼 활성화했다. 현재는 4곳만 남아 있다. ‘화림보쌈’은 보쌈 골목에서 34년 동안 자리를 지킨 식당이다. 보통 보쌈에 쓰는 삼겹살은 물론이고 목심·사태·앞다리살 등 다양한 부위로 만든 보쌈을 내놓는다. 머리와 뒷다리·등심·내장 등 보쌈에 사용하지 않는 부위를 제거한 국산 통돼지를 매일 한마리씩 납품받아 가능한 일이다. 돼지 뼈는 푹 고아 국밥을 만들고 고기는 삶아서 보쌈으로 탄생시킨다.

많은 보쌈집이 수입 돼지고기를 쓰지만 이곳은 국산을 고집한다. 국산 돼지고기는 잡내가 적고 신선해 맛이 좋다. 고기를 삶을 때도 된장·마늘 같은 재료를 넣지 않은 순수한 물만을 사용한다. 윤순자 대표(70)는 “돼지고기를 삶는 물에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국산은 잡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며 “이렇게 삶으면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어 좋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다 익은 고기는 찬물에 넣어 식힌 후 냉장고에 넣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고기를 썰어서 뜨거운 돼지고기 육수에 넣고 데운 뒤 손님상에 낸다.

보쌈을 어느 부위로 먹을지, 어떤 반찬과 함께 먹을지는 모두 개인 취향이다. 지방과 살코기가 적절하게 섞인 삼겹살은 적당히 기름진 맛을 즐길 수 있다. 목심은 삼겹살에 비해 지방이 적으면서도 살코기가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갈색빛이 눈에 띄는 사태는 기름기가 적고 쫄깃쫄깃하다.

보쌈은 김치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김치와 보쌈 고기를 함께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느껴지며 입맛이 돈다. 아삭아삭하고 시원한 무생채를 곁들여도 좋다. 돼지고기를 소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새우젓에 찍어 먹으면 짭조름한 맛이 어우러져 고기 풍미가 높아진다. 상추나 깻잎 위에 보쌈 고기, 마늘, 김치를 넣고 쌈을 싸 먹어도 좋다. 보쌈은 의외로 해산물과 잘 어울린다. 싱싱한 굴과 함께 먹는 굴보쌈, 삭힌 홍어와 묵은지가 보쌈 고기와 조화를 이룬 홍어삼합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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