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삼국시대 치열한 전투 요충지, 촘촘히 박힌 조상의 지혜

방기준 2023. 3. 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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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정양산성
2003년 사적 제446호 지정된 정양산성
험준한 산세에 자연석 이용 점판암 축조
총 연장 1630m, 높이 최고 11.5m 달해
몸 숨기기 위한 담 ‘여장시설’ 기초 발견
삼국시대 신라 성곽 보기 드문 중요자료
영월·강원고고문화연 12차례 발굴 조사
신라 토기 등 발견 시대상 엿볼 수 있어
7C경 신라 전초기지·보급고 기능 주목
보존상태 양호 역사·학술상 가치 확보
▲ 영월 정양산성 전경

동강과 서강이 영월읍에서 만나 남한강 본류를 이룬 뒤 유유히 흐르기 시작하는 곳에 사적 제446호 정양산성(正陽山城)이 있다. 이 산성은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 성곽의 변화상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둘레 798보, 성안에 샘이 하나 있고, 창고 5칸이 있다”는 기록으로 조선 전기까지 전쟁이 있을 때 등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나라에서 별도 군수물자를 비축해 두던 군창(軍倉)건물지로 계속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2003년 6월 2일 사적으로 지정됐다.

▲ 영월 정양산성 전경.

■ 정양산성

영월읍 정양리 남한강에 돌출된 해발 430∼565m의 계족산 자연지형을 잘 이용해 돌로 쌓은 산성이다. 이 성은 문헌 기록상 축조 연대를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삼국이 한강 유역을 놓고 다투던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돼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새 역할을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리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산성에서 남쪽 밑을 바라보면 남한강의 흐름이 한 눈에 보이고, 영월로 진입하는 모든 움직임을 손바닥처럼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이다. 때문에 거란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려시대에 쌓았다는 전설과 남쪽에서 침입하는 신라를 막기 위해 고구려에서 인근 김삿갓면 대야산성과 충북 단양군 온달산성 등과 함께 축조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성의 전체적인 평면 모습은 서북쪽을 향해 넓은 사다리꼴 또는 키 모양을 이루고 있다.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내성의 둘레는 1060m이고 외성 둘레는 570m로 험준한 산세를 따라 자연석을 이용한 점판암으로 축조한 성벽의 총 연장은 1630m에 달한다. 그리고 북서쪽에 자리잡은 정양리 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는 곳에 5개, 외성 내에 2∼3개의 차단벽을 갖고 있다. 성벽은 자연석을 적당히 다듬어 매우 정교하게 쌓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성벽만 해도 높이가 최고 11.5m에 이른다.

이것은 우리나라 고대 산성 중에서 성벽 규모만으로 볼 때 최대로 꼽히고 있는 충북 보은의 사적 제235호 삼년산성과 비교된다.

남서쪽 일대에는 성곽에서 몸을 숨기기 위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인 여장(女墻)시설 기초가 남아 있어 삼국시대 신라 성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중요한 자료이다. 또 남쪽의 낮은 지대에는 비교적 넓은 평지가 형성돼 있는데, 여러 건물터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3곳에 다락문 같은 현문(懸門)형식의 문터가 있고, 성벽이 꺾어지는 3곳에서는 성벽 바깥으로 돌출해 만든 시설물인 치성(雉城) 혹은 곡성(曲城)의 흔적도 보인다.

영월군이 강원고고문화연구원(원장 지현병)과 함께 2010년~2022년 총 12차에 걸쳐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입수구와 출수구 및 자연 경사면을 따라 만든 저온저장시설을 비롯해 초석 건물지 3기·집터 유적인 수혈(竪穴) 주거지 5기·간이난방시설 1기 등 많은 내부시설물이 확인됐다. 입수구시설은 도수로와 수문석·문좌·문틀까지 확인돼 남한 내 가장 완벽한 형태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암반을 굴착한 도수로와 침사지, 성벽 밑으로 이어지는 맹암거시설 등은 산성 내 치수를 조절할 수 있는 구조물이다.

여기에다 기와류와 신라 토기·고려 청자도 다수 발견돼 당시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 (위) 정양산성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신라 토기. (아래)정양산성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고려 청자.

입수구와 출수구·도수로·수문석·문좌·문틀까지 확인된 입·출수구 시설은 신라인들의 발달된 토목과 건축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며 6세기 전후부터 15세기 전반까지 운영됐음이 추정된다.

비록 문헌기록이 부족하지만 이전에 조사된 고고학적 자료를 분석하면 남한강 상류역에 위치한 신라 성곽과 동일한 것으로 판단되며, 이는 6세기경 양양∼강릉∼임계∼정선∼영월∼단양까지 이어지는 남한강 상류역을 북경선으로 하는 신라의 영역으로 설정해 볼 수 있다.

특히 정양산성의 규모나 시설물·건물지·주거지 등으로 보아 7세기경 신라가 서울·경기지역을 뻗어나가는 전초기지나 보급고 기능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으며 향후 유적 복원과 정비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를 확보했다는 데에 의의가 크다. 정양산성은 한강 상류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산성일 뿐만 아니라 성벽과 문터·곡성과 치성, 그리고 후대의 외성과 차단벽을 갖춘 유일한 산성으로 보존 상태도 양호해 역사상·학술상 가치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답사를 하려면 영월천연가스발전소에서 계족산 능선을 따라 40여분간 올라가야 한다. 남한강의 낭떠러지를 낀 등산로를 따라 절경을 보는 운치가 있지만 경사가 높아 숨이 턱까지 찬다.

방기준 kjb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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