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하얼빈, 그리고 코레아 우라
진정한 동양평화 제시한 안중근 가르침 되새길 때
김요아킴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
지난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31세의 짧은 나이로 이 지상을 떠난 날이다. 그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30분경,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저격한 뒤 체포돼 불법적인 일본의 심문과 재판으로 이듬해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의 이러한 숭고한 결단과 실천에 대해 우리는 흔히 그 시대에 마땅한 독립운동으로 귀결시키며 이를 교과서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그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적(當爲的) 차원이 아닌, 이 일을 도모하기까지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그 갈등에 대해선 그동안 사실 무관심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최근 안중근 의사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우리들 무딘 가슴을 하나씩 꿰뚫어 주고 있다. 이미 관객들로 찬사를 받았던 뮤지컬이 영화 ‘영웅’으로 제작돼 같은 배우가 주인공으로 열연하면서 그의 숨겨진 내면과 치열한 자의식을 고스란히 추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끝없이 펼쳐진 하얀 눈 위에 서 있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11명의 동지가 왼손의 무명지를 자르며 태극기에 ‘대한독립(大韓獨立)’이란 네 글자를 피로써 맹세하던 장면, 그리고 이를 이루지 못하면 자결하겠다는 비장한 침묵은 안중근 의사가 왜 거사를 단행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게다가 작년 발간된 김훈 작가의 ‘하얼빈’에선 도마라는 천주교 신자로서의 신앙과 적에 대한 현실적 인간으로서의 증오, 살인이라는 대죄와 대의를 위한 자신의 신념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며 밀도 있게 서사화한 대목에서 어떻게 한 평범한 인간이 조국을 위한 행로에 자신의 몸을 기꺼이 던질 수 있는가를 선명하게 직조해내고 있다. 더군다나 거사를 앞둔 전날 밤, 안중근의 독백은 숨 막힐 듯 명징한 문장으로 우리를 긴장케 한다.
“몇 발을 쏠 수 있을까. 1탄을 쏘면 총성에 역 구내가 술렁거리고, 2탄을 쏘면 경비병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고, 3탄을 쏘면 대응 사격을 하거나 육탄으로 제압할 것이다. (…) 1탄 이후에 벌어지는 소란 속에서 고요한 평정을 유지하고 조준선을 찾아가야 한다. 반동을 몸으로 받아가면서 몸은 다시 평온해질 것이다. 평온해진 내 몸을 총알에 실어서 이토의 몸속으로 박아넣자.”
이러한 지난 세기 일제의 세계사적 폭압과 집단적 광기에 죽음으로 항거하며 끝까지 조국을 지키려 했던 선열들의 고귀한 가치에 반해 오히려 우리는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잔재와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일 굴욕외교의 역사로 점철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최근 일본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조가 3월16일 개최된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양국 간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독도와 위안부, 그리고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법 없이 안보 프레임을 통해 북핵에 대한 방어전략으로 한·미·일 관계를 공고히 하자는, 그래서 결국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로 인정하는 꼴이 된 셈이다.
이에 치욕적인 외교 참사라는 여론이 빗발치지만, 이는 올 3·1절 대통령 기념사에서 이미 언급된 내용의 연장선이 아닌가 싶다.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하며, 이 흐름을 제대로 읽고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다시 반복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라며 미래를 위해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은 언뜻 들으면 타당한 말이겠지만, 그 속에 간과된 것은 바로 일본이 강제적으로 병탄(倂呑)한 양국 간의 역사적 특수성인 것이다. 따라서 일제 강점으로 인한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죄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은 결국 무효일 수밖에 없다.
작년 독일의 법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던 요세프 쉬츠에게 수감자 3518명의 학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징역 5년 형을 선고했었다. 그의 나이 101세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지 무려 70여 년이 지났건만, 전범국가였던 독일의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청산은 지금까지도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여전히 자신들의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는커녕, 되레 우리 정부가 앞장서 면죄부를 주는 형국이 되고 있어 씁쓸한 마음 지울 수가 없다.
114년 전, 침략과 평화의 각기 다른 길이 서로 만난 종점 그 하얼빈에서 오직 한 자루의 총으로 대한의 독립을 몸으로 실천하고 의연히 재판정에서 세계를 향해 진정한 동양의 평화를 외쳤던 안중근. 그가 정확히 이토 히로부미에 네 발의 총탄을 쏘고 당당하게 체포되면서 외쳤던 “코레아 우라(대한제국 만세)”, 그 말이 새삼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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