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멋진 카페 생긴다고 인구가 늘어나고 지방이 살아날까?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2023. 3. 3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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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지방 도시를 떠날까? 경험의 밀도가 낮아서다. 서울시와 구미시의 면적은 비슷하다. 그런데 서울시 인구는 1000만명, 구미시 인구는 40만명이다. 인구밀도가 25배 차이난다. 서울에는 지하철, 극장, 카페, 병원, 학원, 버스, 택시 등의 서비스가 넘쳐난다. 반면 구미시는 대중교통 서비스는 불편하고 문화시설과 학원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

사람들은 지방에 일자리가 없어서 지방을 떠난다고 말한다. 지방에 일자리가 왜 없을까? 기업은 직원을 구하기 힘들어서 지방을 떠난다. 사기업이 지방으로 이전을 안 하자 공기업을 옮겼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방혁신도시들은 휑하다. 지방의 인구밀도가 낮아지면 정부에서는 관공서, 대중교통, 상하수도 인프라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자영업자는 주변에 소비자가 적기 때문에 가게 유지가 안 된다. 가게가 없으니 불편해서 인구는 더 떠난다.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해답은 ‘밀도’다. 각종 서비스와 자영업이 살아나려면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져야한다. 해방 후 상가가 만들어지고 자영업이 활기를 띠고 서비스 일자리가 늘어난 이유는 인구밀도를 높이는 아파트라는 주거 장치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지방을 살리려면 공간의 밀도를 높여서 다양한 자영업이 발생하게 유도해야 한다.

/일러스트=이철원

밀도가 높으면 사용자가 늘어나고 대중교통 서비스가 경제성을 띠고 문화시설, 학원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다. 문제는 지방 도시에는 땅이 너무 넘쳐나서 밀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작정 밀도만 높여봐야 서울과 차별화도 안 되고, 특정 지역의 특혜 시비가 생긴다. 우리는 시장경제 시스템에 의해서 밀도를 높이고, 동시에 서울과는 다른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공중권’ 판매를 통한 도시 밀도의 재구성이다. 공중권은 이전 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다. 뉴욕에서는 전통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서 오래된 저층형 건축물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적률을 사고팔 수 있게 해주었다. 예를 들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건물의 땅에 용적률 800%까지 지을 수 있는데, 내 건물은 단층짜리로 80%의 용적률만 사용하고 있다고 치자. 그러면 720%의 용적률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다. 그 용적률을 산 사람은 자신이 개발하는 땅에 그 용적률을 더해서 고밀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지방 도시는 땅은 넓은데 인구가 적어서 사람들이 너무 흩어져 있다. 가게 입장에서는 주변에 소비자가 적으니 장사가 되지 않는다. 마치 조선시대에 단층짜리 밀도의 마을에서는 오일장만 서던 것과 마찬가지다. 오일장이 열린 이유는 5일 치 거래를 모아야 겨우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일장이 열리면 장사만으로 먹고살 수가 없다. 국밥 집을 열었다가 4일 동안은 문을 닫고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닷새째 날에 국밥 집을 열어야 한다. 오일장이 서던 마을에서 장사만으로 먹고살 수 있게 하려면, 밀도를 다섯 배 높이면 된다. 그러면 매일 장이 설 수 있고, 국밥 집만 하고도 먹고살 수 있게 된다. 자영업 기업과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다.

지방 도시가 살려면 도시계획적으로 일정 지역의 밀도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 단, 그곳에 높은 용적률로 지으려면 특정 지역에서 용적률을 구매해서 사용하게 한다. 그 특정 지역이란 공원을 만들려는 땅이다. 정리하자면 향후 고밀도로 만들 지역에 땅을 가진 사람은 도시계획상 향후 공원으로 만들 지역의 땅을 사서 공원으로 기부채납을 하고, 사들인 땅의 용적률로 자신의 땅에 높은 건물을 짓는다.

이렇게 되면 도시의 전체 용적률은 유지가 되면서 한쪽으로 몰려서 밀도가 높은 도심이 형성되고, 그곳에서는 장사가 가능해진다. 고밀도 지역을 선형으로 만들면 더 좋을 것이다. 밀도가 높아지니 대중교통 인프라도 설치 가능해진다. 기부채납한 땅이 모인 곳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쾌적한 도시 공간을 형성한다. 이때 공원과 고밀도 지역은 걸어서 이동할 정도의 가까운 거리여야 한다.

뉴욕의 공간 구조가 그렇다. 뉴욕에서는 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장사를 하고, 걸어서 10분 이내에 공원이 있는 곳에서는 휴식을 취한다. 이러한 용적률 사고팔기를 잘 기획하면 사람들이 장사도 하고, 걸어 다니고, 동시에 쾌적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서울시의 밀도가 주는 편리함과 재미와 유익함은 가지면서 동시에 서울시에서는 가질 수 없는 자연의 쾌적함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이때 새로운 학교도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지방에 카페 몇 개 만든다고 해서 수도권 인구가 이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지방 도시가 관광으로만 먹고살게 할 수도 없다. 제주도에 젊은이가 이사해서 카페를 창업했다가 원금만 까먹고 귀경한 경우가 많다. 제주도는 배후에 인구밀도가 너무 낮아서 사업성이 적은데 중국 관광객이 빠져나가자 자영업이 망했다. 지금의 지방 도시는 인구 밀도가 낮아서 시장을 구성하지 못한다. 장사가 안 되니 일자리가 줄어들고, 인구 이탈이 가속화되는 것이다. 지방 소멸의 방향을 뒤집으려면 용적률 사고팔기를 통한 밀도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에서 승리하려면 좁은 면적에 더 많은 전자회로 칩을 집어넣은 패턴을 디자인해야 한다. 도시 경쟁력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뭄바이처럼 단순하게 밀도만 높아도 안 된다. 밀도 높은 공간과 자연이 잘 조화를 이루는 고유한 패턴을 구성해야 한다. 이때 무리가 없게 하려면 시장경제 시스템을 이용해서 자발적으로 재구성되게 해야 한다. 용적률 사고팔기를 통해서 쾌적하게 밀도를 높이는 일이 지방 도시가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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