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전선으로 엉킨 재활용 세계

기자 2023. 3. 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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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데 내 가게도 그렇다. 쓰레기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시작하면서 내 삶을 찜쪄 먹던 두 가지 원칙을 포기해야 했다. 하나는 걸어서 20분 안에 살 수 있는 물건은 인터넷 쇼핑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웬걸, 현재 나는 온라인 쇼핑몰 최우수 고객으로 등극했고 가끔 택배 기사님께 물건 좀 작작 시키라는 꾸지람을 들으며 재고를 꾸역꾸역 채운다. 또 하나는 살림을 최대한 간소하게 유지하는 미니멀라이프였다.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님을 좇아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물건은 가차 없이 중고로 내놓거나 나눠주었다. 지금은 남이 버린 것까지 이고 지고 산다. 미니멀라이프는커녕 건물 내려앉을까 걱정하는 맥시멈라이프를 살게 될 줄이야.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상점에서 수거하는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버려지거나 분리배출해도 잘 재활용되지 않는 것들이다. 병뚜껑처럼 작은 플라스틱, 버려지는 양파망과 실리콘 등 10여종을 모아 재활용 업체로 보낸다. 일본의 쓰레기 제로 마을은 약 40종으로 세분해 쓰레기를 배출하는데 그 결과 웬만한 쓰레기들이 모두 재활용된단다. 재활용의 시작은 얼마나 잘 분리해 모으는가에 달려 있다. 이 중 하나가 전선인데, 고장난 멀티탭, 충전선, 유선 이어폰 등을 모은다. 전선은 부피가 작고 가벼워 가져오기도 쉽고, 재활용 분리배출 품목도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폐건전지도 같이 가져오는데, 폐건전지는 폐형광등을 모으는 곳에 분리배출함이 있으므로 우리 가게에서 따로 수거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쓰레기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암만 노력해도 답이 없는 쓰레기의 대안을 마련하는 데 있다. 모은 전선은 도시광산센터로 보내 구리를 캐는 데 사용한다. 이 말인즉슨 반대로 전선이 버려지면 그 안의 중금속이 환경을 파괴하고, 새 구리를 수입해야 하고, 저 멀리 구리 광산이 파헤쳐진다는 뜻이다.

그 어딘가가 바로 칠레나 페루일 것이다. 세계에서 구리가 가장 많이 매장된 곳이 칠레고 그다음이 페루다. 페루에만 1000개 이상의 구리 광산이 있다. 이제 뻔한 이야기다. 중국 등 다국적 기업들이 광산을 운영하며 이익을 가져가고 지역에는 가난과 환경오염, 상처만 남는다. 그에 분노한 원주민과 광산 노동자들이 격렬한 시위에 나섰고, 이는 최근 안데스산맥을 휩쓴 좌파정권 수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말 페루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 최소 5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다쳤다. 이미 다이아몬드, 구리, 금 등 광물이 풍부한 콩고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얼마 전 콩고를 방문한 교황은 피 묻은 광물을 두고 사람이 죽고 강간당하는 상황에서 이를 초래한 상업이 번성하는 것은 얼마나 위선인가, 라고 물었다.

오늘도 가게에서 전선을 모은다. 이는 구리를 캐내는 재활용의 밑감이자, 쓰레기와 중금속 오염을 줄이는 작은 실천이자, 지구 반대편 비극의 전원에 꽂은 전선을 끊어내는 연대이기도 하다. 최근 유럽연합은 핵심 원자재 법을 통과시켰는데 금속과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의 15% 이상을 재활용하라고 못 박았다. 한편 국내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전력선과 통신선에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가 적용되었는데, 올해 예상되는 의무 재활용률은 17.7%에 불과하다. 나머지 전선은 어디에 가 있을까.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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