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처도 없고 향수도 부재한 거대 도시의 자화상

김신성 2023. 3. 3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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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사회 도시민들은 인류사에 없던 거대한 익명의 실향민들이다.

고향은 사라진 지 오래고 향수가 머물 곳조차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귀향이나 향수 따위는 거처를 찾지 못한다.

화면 속 도시 이미지는 거듭 중첩된 채 표류하거나 집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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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주 첫 국내 개인전 ‘액체도시’
실재와 기억 사이 서성거리는 액체도시
어디론가 향하지만 알 수 없는 유동도시
형체는 일그러지고 색색이 끓어오르고…
인간 내면 꿈틀대는 도시 눅진하게 표출
獨 지그하르트 길레의 첫 한국인 제자
인천서 獨으로… 작가 삶의 노정 닮은 듯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 하리!(You Can’t Go Home Again! - 토마스 울프)

물질 사회 도시민들은 인류사에 없던 거대한 익명의 실향민들이다. 고향은 사라진 지 오래고 향수가 머물 곳조차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토마스 울프의 말은 가히 예언적이다.
‘Mindscape l’(2022) 80×120㎝
근대 도시는 철근과 콘크리트로 조직화한 고체 구성체다. 직선과 효율성이 이 공간을 지배한다. 도시의 집약성은 인구뿐 아니라 생산력과 시장성을 극대화한 산물이다. 인간의 삶은 파편화한 채 거기에 종속되고 만다. 귀향이나 향수 따위는 거처를 찾지 못한다. 사람들은 한데 몰려 살지만 자기 땅에서 정처 없이 떠돌 뿐이다.

이같이 실재하는 도시와 향수 어린 기억의 도시 사이에 서성거리는 도시가 ‘액체도시’다. ‘액체도시’는 그림이나 문자로 표현될 때 비로소 성립한다. 이 도시는 고형이 아니라 유동하는 도시다. 유동을 지배하는 건 불안정성이다.

화면 속 도시 이미지는 거듭 중첩된 채 표류하거나 집합하고 있다. 이는 작가 임영주가 인천에서 독일 라이프치히로 이동하며 살아온 노정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미지는 저마다 고립된 듯하면서 다른 이미지들과 어울려 어디론가 행진하고 있다. 방향은 알 수 없다. 이것이 유동성이다. 형체는 일그러지고, 납작하게 기어가거나 부유하면서 색색이 끓어오르고 있다.
‘Heterotopia - Berlin ll’(2022) 140×160㎝
이 도시 그림자들은 그가 겪어 온 공간 이력서들임에 분명하다. 그림자들은 얼핏 해체된 편린들 같지만 자기 모색을 포기하지 않는 형태이자 반사되지 않는 거울이다. 그는 이를 반추해서 그저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지 않는다. 집요하게 현재에 천착하면서 실재와 기억 사이에 푯대를 세운 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다.
작가는 이처럼 물질사회 공간을 유랑하는 시민들 내면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도시를 눅진하게 그림으로 표출하고 있다. 인물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다분히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출몰한다. ‘액체도시’ 군상들이다. 그 얼굴들은 태어난 곳은 있지만 고향이 아니고, 고향이 있어도 고향이 없는 존재들이다. 귀환처도 없이, 향수마저 부재한 거대 도시에 대한 자화상이다.
‘Heterotopia - Spring ll’(2022) 80×100㎝. 미음 프로젝트 스페이스 제공
독일 신표현주의 회화의 거장 지그하르트 길레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로서 회화의 기반을 다지고 독일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해온 임영주는 라이프치히에서 호평받은 작품들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

5월 6일까지 서울 평창동 미음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관람할 수 있다. 4월 20∼23에는 ‘더프리뷰성수아트페어’에서도 만날 수 있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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