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없지만 살아있는 듯한… 동적인 정물화 제시

김신성 2023. 3. 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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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문을 밀고 들어서면 선사시대 동굴벽화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황소가 반겨준다.

강렬한 와인색 황소(와인빛의 엔사바나도)는 마치 차려진 테이블처럼 등을 길게 펴고 서 있는데, 거기엔 부리가 긴 새가 있고 꽃병과 믈고기, 마늘, 팔레트가 보이며 누군가 펼쳐놓은 책도 서서히 드러난다.

 그림 속 새우와 문어, 성게, 뱀장어 등은 작가의 고향인 지중해 마요르카 섬 도처에 사는 해양 생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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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구엘 바르셀로 개인전

전시장 문을 밀고 들어서면 선사시대 동굴벽화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황소가 반겨준다.

강렬한 와인색 황소(와인빛의 엔사바나도)는 마치 차려진 테이블처럼 등을 길게 펴고 서 있는데, 거기엔 부리가 긴 새가 있고 꽃병과 믈고기, 마늘, 팔레트가 보이며 누군가 펼쳐놓은 책도 서서히 드러난다. 관람객을 응시하는 황소의 큰 눈이 인상적이다. 
‘와인빛의 엔사바나도’(2021) 190×270㎝
스페인의 현대미술가 미구엘 바르셀로의 작품들이 ‘그리자유: 빛의 연회장’이란 이름을 내걸고 관람객들과 만난다.

해양생물과 꽃, 뼈가 되어버린 생물들로 이루어진 ‘연회’ 시리즈는 최근 작가가 즐겨 그리는 연작으로, 중세 화가들이 사용했던 기법 ‘그리자유’(grisaille)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자유’는 단색조의 색을 사용해 그 명암과 농담으로 그리는 화법을 말한다. 그림 속 새우와 문어, 성게, 뱀장어 등은 작가의 고향인 지중해 마요르카 섬 도처에 사는 해양 생물들이다. ‘자연과의 깊은 연결’이 갖는 가치에 대한 작가의 언급이자 역설이다.

주위로 북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품에는 특유의 활기가 넘친다. ‘정물화’란 본디 움직이지 않는, 생명이 없는 대상을 담아낸 그림인데, 그의 정물화는 더 이상 정적이길 거부한다. 
‘노란 정물화’(2021) 190×240㎝
작품 ‘노란 정물화’의 경우 뼈만 남은 바다코끼리와 황소가 껍질만 남은 문어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 ‘작은 동물’에서는 강아지가 킁킁 냄새를 맡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바르셀로는 활력이 넘치고 동적인, 새로운 정물화를 제시한다. 작품 속 대상들에 대해 그는 ‘그들이 살아있고 건강하다’고 주장한다. 해양 생물들로 가득찬 ‘와인의 바다’처럼 끊임없이 너울대는 붉은 배경 등 곳곳에 작가만의 고유한 예술적 어휘들을 풀어놓는다. 
‘작은 동물’(2021) 235×235㎝
그는 그리는 행위를 캔버스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으로 비유한다. 현대사회의 시급한 질문 중 하나인 쇠퇴와 회복에 관해 고찰해보길 권하면서, 자신이 정해놓은 ‘정지된 장’으로 관람객들을 안내한다.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타데우스 로팍에서 4월 15일까지 전시한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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