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출산율 0.78, 질문을 바꿔라

이영빈 기자 2023. 3. 3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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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는 갇혔다가 15년 만에 풀려난 뒤 범인을 찾아다닌다. 왜 자기를 가뒀는지 물어보기 위해서다. 우여곡절 끝에 범인 이우진(유지태)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에 이우진이 말한다. “당신 실수는 답을 못 찾은 게 아니야.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왜 오대수를 가뒀을까’가 아니라, ‘왜 풀어줬을까’란 말이야.”

이번 달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숫자는 0.78이었다. 바로 합계 출산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1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회원국 중 최하위임은 물론이다. 지난 세월 동안 언론과 전문가들이 저출산을 해결할 방안을 속속들이 제시해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국 망국의 숫자를 맞닥뜨리게 됐다.

‘왜 신혼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을까?’ 기존 해결책은 전부 이 질문에서 시작하는 듯하다. ‘○○○ 때문이구나. 그걸 해결해야겠다’는 대답에서 나온 정책이 많아 보인다. 출산 및 육아비 지원, 방과 후 교실 확대 같은 지원 방안이 그렇다. 육아에 따른 삶의 마이너스(-)를 메워주는 식이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부부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옛날엔 자녀를 꼭 낳아야 한다고 여겼다. 어른들에게 ‘딩크(맞벌이 무자녀 가정)’ 이야기를 꺼내면 대답은 한마디뿐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애는 있어야지.” 이유가 필요 없을 정도로 당연했기 때문이다.

지금 신혼부부에게 자녀는 선택 대상인 사치재에 가깝다. ‘낳으면 알아서 자란다’는 옛말. 탄생을 기다리며 온갖 육아 용품을 찾는다. 조금 더 크면 어떤 문화 센터와 어린이집에 보낼지, 학군을 옮길지 등을 부부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

부모의 재력과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피부로 느낀 세대다. 아이의 출발선만은 뒤처지게 놔둘 수 없어 안절부절못한다. 그렇지만 그만큼 시간, 돈, 노력을 쏟을 수 있는 젊은 부부는 손에 꼽는다. 결국 부부 둘이서만 유복하게 사는 길을 택한다. 반려동물도 매력적인 선택지다. 이들의 마음을 ‘육아 수당 10만원’ 같은 지원으로 돌릴 수 있을까.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해야 아이를 낳을 것인가? ‘나도 아이를 낳아 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너스(-)를 보완하는 걸 넘어서서, 자녀를 통해 삶의 질이 나아진다고 피부로 느껴지는 플러스(+)가 필요하다. 육아 고민을 덜어줄 뿐 아니라, 딩크보다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만 한다.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질문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후회 속에서 절규한다. 만일 풀려났을 때부터 제대로 질문을 던졌더라면 다양한 해법을 모색했을 수도 있다.

합계 출산율이 0명대인 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 돌이킬 수 있을 때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현금성 정책이든, 노동시간 유연화든 ‘어떻게 해야 아이를 낳을지’에 바탕을 두고 유례없이 파격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미 아이를 낳은 부부들의 어려움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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