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의 일본 vs 기시다의 일본 [임상균 칼럼]

임상균 매경이코노미 기자(sky221@mk.co.kr) 2023. 3. 3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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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균 주간국장
한일 관계에서 3월은 잔인한 계절이다. 야구에서 참패를 당했고, 외교에서도 아쉬운 결과가 이어졌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국가 대표 야구팀이 일본에게 참패만 당하지 않았어도 쓰라림이 덜했을 것이다.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결과를 안고 돌아오자 야구 대표팀에 질타가 쏟아졌지만 이들을 어루만져준 사람이 있었다.

한국팀에 쓰라린 패배를 안겨준 장본인인 일본 대표팀의 오타니 쇼헤이 선수였다. LA 에인절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세계 최정상급 선수인 오타니는 이번 대회에서 투타 맹활약을 하며 일본팀 우승을 주도했고 본인도 대회 MVP를 받았다.

우승 소감을 묻는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야구가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동력이 돼 우리가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라운드에서 탈락하며 WBC의 조연에 그쳤던 아시아 다른 나라 선수들 마음까지 보듬어준 것이다.

오타니는 미국과의 결승전 출전 직전에 일본 선수와 함께한 로커룸에서 멋진 연설을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오늘은 미국을 동경하지 말자. 1루에 골드슈미트, 중견수에는 트라우트, 다른 외야 한 자리에는 무키 베츠가 있다. 누구나 들어본 이름이다. 그러나 오늘 하루만큼은 그들을 동경하는 마음을 버리자. 미국을 동경하면 그들을 넘어설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넘어서기 위해, 세계 제일이 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기는 것만 생각하자. 가자!”

강한 리더십과 패기를 보여주면서도 상대를 존중하고, 동료들의 사기 진작까지 이끈다. 오타니 연설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에는 한국 팬들의 칭찬이 쏟아진다. “실력, 인성, 외모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최고 선수다.” “이런 선수를 가진 일본 야구 팬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가 일본 대표 선수인 것에 개의치 않고 열광한다. 같은 시기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하기 전에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선제적 결단을 내렸다. 걸림돌 중 하나였던 강제징용 문제 해법으로 ‘피해자 지원 재단을 통한 3자 변제’를 제시했다. 오랫동안 악화돼온 양국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회담 전부터 국내 여론은 좋지 않았다. 제3자 변제안에 반대 비율이 59%에 달했다. 우리가 해법을 제시하기 전에 일본의 태도 변화가 먼저라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국내 정치에 도움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윤 대통령은 강한 의지로 실천했다.

하지만 기시다 정부는 화답은커녕 오히려 한국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관방 부장관은 회담 직후 일본 언론에 “위안부 합의에 대해 착실한 이행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은 여기에다 독도 문제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규제 등의 해결을 요구했다고 보도한다. 정상회담 어젠다에 없던 내용인데 일본 측이 일방적으로 요구한 듯하다. 한국 정부는 여기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본은 4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국민 감정에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 충분히 알 텐데도 그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눈앞의 목적 때문에 미래를 향한 통 큰 양보를 내놓은 상대를 난처하게 만드는 처사가 됐다.

오타니와 기시다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2개의 얼굴이 교차하는 답답한 3월이 지나간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2호 (2023.03.29~2023.04.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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