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광주가 품어준 전두환 손자
혈육의 끔찍한 과거 범죄를 직면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유태인 학살을 주동한 나치 게슈타포의 수장 하인리히 힘러의 딸 구드룬은 일생을 ‘나치즘의 공주’로 살았다. 그는 자신을 끔찍이 사랑했던 아버지가 저지른 일들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역사를 외면했다. 반면 나치 치하 폴란드 총독으로 강제수용소를 운용했던 한스 프랑크의 아들 니클라스는 언론인으로서 부친의 과거 행적을 파헤쳤고, “아버지는 권력에 눈이 먼 기회주의자였다”고 책으로 기록했다.
5·18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3남1녀는 역사에 눈감은 쪽이다. 전씨가 2017년 회고록에서 ‘북한군 개입설’ 음모론까지 빌려 자신의 학살을 정당화했을 때도, 2021년 사죄 없이 사망한 이후에도 침묵했다. 막대한 비자금과 ‘광주 폭동’이란 왜곡된 역사인식을 대물림한 일가의 침묵을 깬 것은 차남 재용씨의 아들 우원씨였다. 신앙을 통해 각성했다는 그는 소셜미디어에서 “할아버지는 학살자”이고, “나라 지킨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라고 선언했다. 지난 28일 미국에서 입국한 그는 스스로 공개한 대로 마약 혐의 피의자로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났다. 그러곤 바로 “5·18 유가족과 피해자분들께 사과하겠다”고 했고, 귀국 전 약속대로 31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할 예정이다.
5·18 피해자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우원씨의 용기를 높이 산 누군가는 “광주행을 격하게 환영한다”고 박수를 보냈다. 손자가 전씨 일가의 죄를 몽땅 짊어지는 대표성을 가질 순 없다는 의견도 있다. 마약이 빚은 충동적 행위일 뿐이라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그래도 오겠다는 우원씨를 광주는 막지 않고 받아들였다. 할아버지가 저지른 죄악의 무게를 뒤늦게 깨닫고 짓눌린 젊은이의 불행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마음일 것이다. 다른 학살 책임자인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 아들 재헌씨가 5·18묘지에 무릎 꿇고 아비 대신 사죄할 때에도 광주는 받아들였다. 1980년 5월18일, 그날을 겪은 이들만큼 고통을 평생 짊어지고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헤아리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혈육이 저지른 범죄를 대신 괴로워하는 이에게 공감하며 기꺼이 포용하는 것일 테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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