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4. 광주 ‘영은미술관’

경기일보 2023. 3. 3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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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봄, 현대미술의 발견
광주시 쌍령동에 위치한 영은미술관은 동시대 근현대 작품을 연구,소장, 전시하는 현대미술관이자 창 작스튜디오에서 작가와 대중, 기획자가 소통할 수 있는 복합문화시설이다. 영은미술관 전경. 윤원규기자

 

활짝 핀 살구꽃과 벚꽃이 눈부시다. 광주시 청석로 300에 자리 잡은 영은미술관(관장 박선주)에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고 있다. 1992년 한국예술문화의 창작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한 대유문화재단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2000년 11월에 개관한 영은미술관의 설립이념과 추구하는 지향점은 분명하다. “영은미술관은 동시대 현대미술 작품을 연구, 소장, 전시하는 현대미술관이며 또한 국내에서 처음으로 창작 스튜디오를 겸비한 복합문화시설입니다. 우리 미술관은 기존의 미술관 형태를 과감히 변화시켜 미술관 자체가 살아있는 창작의 현장이면서 작가와 작가, 작가와 평론가와 기획자, 대중이 살아있는 미술과 함께 만나는 장입니다. 종합미술문화단지의 성격을 지향하는 영은미술관은 조형예술, 공연예술 등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예술을 수용하고 창작, 연구, 전시, 교육 등의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여 참여계층을 개방하고 문화를 선도해 나가고 있습니다.” 박선주 관장의 소개말에서도 봄기운이 느껴진다.

김영원 작가의 ‘한국의 네오모더니스트:氣오스모시스 조각과 회화’전이 열리고 있는 제1전시장. 윤원규기자

■ 아버지의 사랑과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는 미술관

영은미술관 설립배경에는 고(故) 이준영(1917~2007) 대유문화재단 이사장의 문화예술에 대한 의지와 먼저 떠난 아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숨어있다. 그는 회고록에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내 이름 이준영의 마지막 글자인 ‘영’자와 큰아들 상은(고(故) 이상은 회장, 1940~1992)이 이름의 마지막 글자인 ‘은’자를 따서 영은미술관이라고 지은 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 진흥 발전에 기여하고 세계미술 속에 한국미술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명명한 것이다.”

영은미술관은 터도 넓고 공간도 넉넉하다. 33만7천607㎡(10만2천126평)의 널따란 부지에 미술관동과 레지던시 작가들을 위한 스튜디오와 연구동이 자리 잡고 있다. 지하1층~지상3층의 미술관동은 3개 전시장과 세미나실, 자료실, 강의실 및 평면스튜디오를 두루 갖추고 있다. 미술관과 스튜디오 시설로 구분되어 두 기능이 상호 분리되고 호환될 수 있도록 설계된 독특한 구조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이다.

영은미술관의 모태인 대유문화재단이 1992년부터 한국 근현대미술의 경향과 스타일을 대변하는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매년 구입하고 기증을 받아 현재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500여 점에 이른다. “회화, 조각, 설치, 공예, 사진,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 김창열의 「회귀」를 비롯해 도흥록의 「Drawing_05-I」, 강영길의 「GODOT」, 강형구의 「Maria Callas」, 방혜자 「빛의 눈」, 이우환의 「From the Line」, 박서보의 「묘법 52-73」 등을 비롯해 영은창작스튜디오를 거쳐 간 역대 작가들의 기증 작품 역시 주요한 소장품입니다.”

진민욱 작가의 입주작가 개인전 ‘펼쳐지고 깊어지는, Unfolding and Deepening’이 열리고 있는 제2전시장. 윤원규기자

■ 조각과 회화로 표현한 생명의 기운·우주의 기운

영은미술관 특별기획전 ‘한국의 네오모더니스트 김영원 기(氣) 오스모시스 조각과 회화전’은 6월18일까지 이어진다. 특별전이 열리는 제1전시장은 130평에 전시실로 기둥이 없고 벽면 높이가 7m나 되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공간 연출이 가능한 공간이다. 특별전을 기획한 정효정 학예연구사의 해설에 귀를 기울인다. “김영원 작가는 1994년 2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영상을 통한 기조각과 퍼포먼스를 처음 발표하여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무렵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작업하고 있는 작가의 기공명상을 통한 예술작업은 영은미술관 특별기획전을 통해 ‘기(氣) 예술art’이라는 장르와 이를 해석할 수 있는 미학이론을 함께 제시하는 전시입니다. 전시한 169점의 회화작품과 23점의 조각은 거의 대부분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지요.”

사실 ‘기(氣)’라고 하는 것은 존재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그 실체를 알기 어렵고, 이를 미술 작품에 적용한 미학이론은 아직 없다. “이번 전시는 세계 미술계에 김영원 작가의 기 예술을 이론으로 정립한 ‘기(氣)오스모시스’라는 새로운 미학을 화두로 던지는 것입니다. 우주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기로 구현한 작가의 예술작품 공간 속에서 기오스모시스를 느끼고 체감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삼투, 스며들기로 풀이되는 ‘오스모시스(Osmosis)’와 ‘기’의 결합을 머리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가까이에서 탐색하고 깊이 분석한 평론가 홍가이의 해설을 살펴본다. “동양에서는 우주의 모든 것이 기의 모임과 흩어짐이라고 하니 ...김영원의 기공명상 예술행위를 기오스모시스를 통한 예술행위로 간주하면 좀 더 현대적 감각과 용어로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의 흐름을 표현한 회화와 조각 작품을 감상하며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쪽에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창작 과정과 작품 세계를 해설하는 김 작가의 인터뷰를 들으니 궁금증이 하나둘 풀린다. 조각 기둥에 새겨진 꿈틀대는 형상은 손가락으로 후벼 파낸 것이다. 기공체조를 하며 작품에 몰두하는 작가의 몸짓에 생기가 감돈다.

정영한 작가의 입주작가 개인전 ‘발견된 신화, The Founding MYTH’전이 열리고 있는 제4전시장. 윤원규기자

■ 시대를 증언하고 해석하는 예술가의 상상력

제4전시장과 제2전시장에서는 영은 창작스튜디오 12기 입주작가 정영한 개인전 ‘발견된 신화’와 진민욱 개인전 ‘펼쳐지고 깊어지는’이 4월23일까지 열린다. 실험적인 전시공간인 지하의 제4전시장부터 안내한다.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 정영한 작가의 작품이 어쩐지 친숙하다.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쇼셜미디어, 잡지, 등 대중매체에서 떠도는 이미지 혹은 관습으로 자리 잡은 신화적 이미지를 차용하고 재구성하여 작품의 모티브로 활용했기 때문이죠.”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나 파블로 피카소의 ‘황소’를 등장시켜 관객들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전시실 안쪽에서 만나는 브릴로박스는 또 무엇일까. “일반적인 팝아트의 차용기법과는 맥락을 달리하여 박스 안에 작품을 숨겨둠으로써 ‘해석의 절단’을 맞이한 미술사의 이면을 지적하고 작품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고민이 담긴 작업 노트를 살펴본다.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시대와 이미지에 대한 거대 담론을 탐구한 끝에서야 발견한 어떠한 커다란 상자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참신한 메시지와 이미지를 꺼내 보여주는 것과 같다. ...나의 작업은 나의 꿈, 누군가의 즐거움, 그렇게 우리 모두의 삶에 감각적 질문을 던지는 ‘그림’이 될 것이다.”

2층 제2전시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젊은 한국화가 진민욱의 개인전 ‘펼쳐지고 깊어지는’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을 세밀히 관찰하여 비단으로 된 화폭에 옮긴 것이다. 활짝 핀 매화, 수선화, 가을에야 볼 수 있는 석류가 있다. 새와 애벌레와 나비도 있다. 얼핏 보면 정물화인데, 사계절의 풍경이 담겨 있다. 사각의 고정된 틀을 부수고 윗부분이 산모양이거나 병풍처럼 포개진 화폭에 펼쳐놓은 풍경이 재미있다. “보시는 것처럼 여러 시점에서 그려진 자연 속 오브제들이 긴밀하게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진민욱 작가의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은 ‘산책’이다. 산속의 나뭇잎이나 길가에 놓인 화분,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에 이르기까지 곳곳을 걸으며 발견하는 일상의 자연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새로운 형식을 편안하게 전달하는 작가의 재주가 놀랍다.

다양한 조각을 관람하며 만발한 봄꽃사이로 산책을 할 수 있는 야외조각 공원. 윤원규기자

■ 새봄 나들이 유혹하는 미술관

국내외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영은창작스튜디오’는 오래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창작기능을 활성화하는 공간답게 작가와 연구자가 생활하면서 작업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평면작업실과 입체작업실, 생활공간은 물론 해외미술계와 교류할 수 있는 자료정보센터와 도예공방과 유리공방까지 갖추고 있다. 작가들에게 최적의 창작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때때로 이곳을 개방하여 지역 주민들이 창작체험과 미술문화 교육을 받는 곳으로 쓰고 있다. 화사한 꽃들과 연둣빛 새싹이 눈부신 영은미술관에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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