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화 더 큰 울림... '불멸의 여자', 그리고 '찬란한 나의 복수'
동명의 연극, 영화적으로 치환
감정노동자 찐내면·울분 표출
봉준호 감독 “스테이지 시네마”
임성운 감독 ‘찬란한 나의 복수’
일상이 파괴된 남자의 이야기
절제된 감정 카메라에 담아내
분노의 복수, 그 끝에 대한 질문
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좋은 영화를 위한 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이 되진 않는다. 수십억원의 제작비를 들여도 관객이 외면하는 졸작이 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제작비가 많지 않아 홍보에 어려움을 겪고 극장가 변방에서 개봉관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 중에 의외로 좋은 작품이 있기도 하다.
영화 ‘불멸의 여자’와 ‘찬란한 나의 복수’는 후자다.
오는 4월5일 개봉하는 최종태 감독 연출의 불멸의 여자는 동명의 연극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긴 실험적 작품이다.
최 감독은 2020년 10월 대학로에서 2차 공연을 한, 잘리지 않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웃어야만 하는 화장품 매장 직원과 어떻게 해도 마음을 풀지 않는 진상 고객의 대치를 통해, 감정노동자의 문제를 건드린 연극 ‘불멸의 여자’를 보고 강렬한 캐릭터와 영화적 요소에 반했고,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연극판에 도움도 줄 수 있겠단 생각에 영화화를 결심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실제 연극 무대 위에서 연극 형식으로 진행되는 딱히 장르도 없는 이 참신한 시도에 대해, 영화를 본 봉준호 감독은 ‘스테이지 시네마’로 부르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연극 무대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겼다고 하면, 연극의 중요한 특성인 현장감을 놓치고 재미도 없는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노란 백라이트의 후광을 받으며 무릎 꿇고 앉아있는 주인공 희경(이솜)과 다른 등장 인물의 상반신 사진이 줄줄이 박혀 있는, 극장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에 만든 것 같은 포스터를 보면 이런 심증은 확신으로 굳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이런 선입견은 산산이 깨진다. 처음 몇 분간은 익숙한 영화 문법에서 벗어난 영상에 어색함을 느낄 수 있지만, 이내 지금 보는 게 연극인지 영화인지는 별로 중요치 않고 스토리 자체에 몰입하게 된다.
촬영 기간은 짧았지만 지루함에 빠지지 않고 텐션이 살 수 있도록 연출진은 카메라워크와 조명 계획을 짜는 데 한 달 이상을 고민했다. 여기에 연극판에서 활약하는 이음, 윤가현, 이정경, 윤재진 그리고 안내상의 강렬한 연기가 어우러진다.
원작자이자 연극무대를 연출한 최원석 감독은 “처음 희곡을 영화로 만든다고 할 때 (최종태 감독이) 술 취했나, 한 개의 장면이 한 컷으로 벌어지는데, 영화적으로 치환이 가능한 건가” 의문이 일었다. 그렇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곤 “연극이 인물의 골격이나 외형적 행동의 근육을 만들어 가는 데 치중했다면, 영화는 극단적인 클로즈업이나 빛과 어둠의 강력한 대비를 통해 인물 내면을 리얼하게 드러냈다”고 생각을 바꿨다.
뺑소니 사고로 아들을 잃은 형사 류이재(허준석)는 공소시효가 끝나도록 범인을 찾지 못하고, 아내는 그를 떠난다. 술에 찌들어 피폐한 일생을 보내던 그는 전출지인 남원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소현(남보라)을 만나면서 새 삶을 꿈꾸지만, 아들을 죽인 범인인 임학촌(이영석)이 뒤늦게 나타나 그의 일상을 다시 파괴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예술영화 지원작으로, 순제작비 3억2000만원을 투입해 찍은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건 분노와 증오를 대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을 통해 분노를 폭발하고, 사적 제재를 가하는 콘텐츠에 노출되고 이내 익숙해져 가고 있다. 임 감독은 이런 분노의 복수가 우리를 어디로 몰고 가는지 질문을 던진다.
임성운 감독은 “영화의 시작은 이 남자의 일상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데서 시작한다”며 “삶의 무게를 못 이겨 깊은 심연으로 빠져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심연 깊은 곳에 괴물이 살고 있는데, 그 괴물은 이 남자를 잡아먹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괴물로 만들고 싶을 것”이라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절제된 감정을 카메라에 담아낸 영화는 제목처럼 찬란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괴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서사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나의 관점을 제공한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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