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반도체 대공황 게임, 이젠 뭘 해야 하나

2023. 3. 3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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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자원과 기술을 무기로 한 경제안보 전쟁 시대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철강, 알루미늄, 태양광, 배터리, 자동차에 이어 반도체까지 전쟁터다. 미국은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68조원에 달하는 정부보조금을 무기로, 중국에 대한 신규투자 제한, 국가안보기관의 핵심공정 접근 허용, 예상 초과이익 공유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국 등 다른 나라로의 반도체 투자를 미국 내로 대체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것이고, 사실상의 반도체 기술이전을 요구한 것이다. 중국, EU, 대만, 일본 등 대체효과가 나타나는 국가들도 서둘러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유치를 위해 대응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도 수도권에 300조원 규모의 민간투자를 유치해 세계적인 반도체 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반도체를 각 종류별로 다른 나라들이 대량생산 후 교역을 통해 서로 교환하는 산업 생태계가 갑자기 무너짐을 의미한다. 여러 종류의 반도체를 각국이 모두 생산하여 조달해야 하는 생태계가 궁극적으로는 도래할 것이다. 대량생산에 따른 규모의 경제 효과가 시장단위 소규모 생산으로 인해 감소하게 되는 셈이다. 각 시장에서의 투자 규제가 강화되고 변동함에 따라 투자의 위험과 손실도 커질 것이다.

과거의 보호주의는 주로 개도국들이 신흥 산업이나 유치산업과 같은 잠재적 경쟁력이 있는 산업을 보호해 경쟁력을 키워줌으로써 세계경제에도 기여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신보호주의는 미국과 같은 최선진국이 이미 국제경쟁력을 상실한 사양 산업을 억지로 유치하기 위해 투자를 압박하면서 적대국가로의 투자까지 동결하는 식의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경제에 장기적 자원배분의 왜곡을 대폭 초래하게 됨은 물론이고, 상호주의에 기한 상대국의 보복 악순환을 촉발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주요 원인이 된 경제대공황이 국가간 관세보복으로 인한 것이라면, 이제는 핵심 산업의 공동화를 막으려는 각국의 필사적 보조금 정책의 연쇄효과로 인해 새로운 대공황이 촉발될 위험이 크다.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충분한 메모리 관련 생산설비를 미국 내로 유치하고 그 기술을 전수받는 일을 필수적 경제안보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기술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현재의 한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의 상당부분을 미국 내로 이전해야만 그러한 미국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은 우리 국내 생산설비, 고용, 연관산업, 기술의 상당부분이 결국 미국 내 기업으로 전환되고, 미국 정부의 효과적 통제 하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공동화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전략과 대응이 요구되는 것이다.

중국이 대만을 접수해 반도체 설비나 기술을 한순간에 장악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그런 중국의 노력이 강해질수록 한국이 더 필요해진다. 메모리 분야의 K-미세공정 노하우가 더욱 절실해진다. 우리로서는 더 큰 대미협상의 지렛대를 확보하는 셈이다.

동맹과 가치 공유는 호혜적 관계가 기본이고 핵심이다. 미국이 메모리 분야의 기술이전을 원한다면 그 대가로 비메모리 분야의 기술을 우리 측에 이전하는 것이 당연시 돼야 한다.

경제·기술 협력을 심화해가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나, 동맹 상대국의 핵심 산업의 축소나 공동화를 초래하는 것을 협력의 이름으로 추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한미 기술협력과 투자를 강조함과 동시에 반도체 분야의 양국간 분업체계 심화라는 커다란 원칙에도 합의해야 한다.

이러한 호혜와 분업의 원칙에 합치하는 범위 내에서 우리의 반도체 대미투자와 협력은 조율돼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IT강국인 한국의 미래가 걸린 분야다. 또한 정보력과 첨단무기가 국가안보를 좌우하기에 한국의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도 적정 반도체 국내 생산능력 보유의 크기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계산해내야 한다. 상대국이 취하는 정책에 따라 이러한 능력이 영향을 받는 정도를 항시 체크하면서 국내의 적정 생산능력 확보를 마지노선으로 설정해야 한다. 대외 투자는 그 다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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