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혁신기업] 기술로 美 심장부 뚫은 강소기업… 세계에 K-교통시스템 심는다
"대기업 못지않다" 호평… 美 톱3 목표
UWB방식 도입때 지하철 이용 일대혁신
무인전동차·전기차 충전분야서도 두각
교통·SOC DX 이끄는 '에스트래픽'
#1. 2003년 중국. 광저우에서 시작된 사스(SARS)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당시 광저우 지하철 사업을 하던 외국계 회사 직원들은 모두 철수했다. 그 와중에 현장을 지키며 AFC(승차권발매) 시스템을 구축한 회사가 있었다. 삼성SDS다. 마그네틱카드 대신 코인 모양의 RF(무선통신) 승차권을 도입한 세계 최초 사례였다.
#2. 2020년 미국.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다시 멈춰선 가운데 수도 워싱턴 지하철 AFC 구축에 나선 기업이 있었다. 에스트래픽이다. 미국 AFC 시장의 80% 이상을 잡고 있는 현지 기업과 경쟁해 이겼다. 한국 강소기업의 실력을 확인한 워싱턴지하철공사 측은 일감을 더 늘려줬다. 3900만달러 짜리 사업이 5200만달러로 커졌다.
미 워싱턴 지하철 프로젝트를 이끈 문찬종 에스트래픽 대표는 2003년 삼성SDS 사업팀장으로 광저우 사업을 수주한 장본인이다. 팬데믹을 이겨내며 워싱턴 사업을 성공적으로 해낸 기술인력들은 20년 전 광저우 현장을 지킨 바로 그들이다.
에스트래픽은 2013년 삼성SDS의 도로·철도·공항사업 조직이 독립해 출발한 회사다. 시작은 삼성전자 SOC 사업조직이었다. 이 회사 AFC 사업의 출발은 삼성전자가 국책 R&D 과제를 통해 AFC를 최초로 국산화한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실무자이던 문 대표가 사업 아이디어를 냈다. 경쟁사들은 프랑스나 일본의 장비를 수입해서 팔고 있었다. 이후 철도, 지하철 건설이 크게 늘어나자 삼성전자는 국산 AFC로 시장을 주도했다. 이후 삼성전자에서 삼성SDS, 에스트래픽으로 사명은 달라졌지만 구성원들은 그대로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장인 엔지니어들= 4월 30일 설립 10년을 맞는 에스트래픽은 세계 최초, 국내 최초를 익숙하게 해내는 회사다. 글로벌에서 잔뼈가 굵은 시장 전문가들은 알스톰, 지멘스, 탈레스 같은 글로벌 공룡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그들이 사업을 수주하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내는 장인 엔지니어들이 작품을 내놓는다. 그들의 기막힌 팀워크는 에스트래픽을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알아주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문찬종 대표는 "에스트래픽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 세계 최고다. 2013년 창업 직후 한 대기업이 찾아와 '우리 뒤에 서서 사업을 해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독일, 프랑스, 일본 기업에 안 밀리는 인력을 자신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광저우 사업은 사스가 아니라도 힘든 프로젝트였다. 글로벌 기업이 포기한 사업을 이어받아 8개월만에 세계 최초 기술을 적용해야 했다. 직원들은 현장에 천막을 치고 결국 해냈다"고 했다. 워싱턴 사업에서는 많게는 20명이 현지에 투입됐다. 한국에서 부품을 현지로 보내 조립했는데, 물류비용이 10배 이상 치솟는 어려움도 겪었다. 사내 소프트웨어 실력자인 한 여성 부장은 고등학생 아들을 둔 채 6달 이상 현지에 가 있었다. 방학 때 현지에 가서 사업현장과 백악관 등을 둘러본 아들은 "엄마가 정말 자랑스럽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건설·IT를 통틀어 국내 기업이 미 정부기관의 교통IT 사업을 따낸 것은 에스트래픽이 최초다.
◇SOC 투자 쏟아붓는 미국서 승부한다=실력과 근성으로 무장한 강소기업은 해외시장의 높은 장벽도 뛰어넘는다. 불가능한 기간에 감염병을 이겨내고 사업을 끝내자 광저우 지하철공사 고위 관계자는 한국산 AFC 영업사원을 자청하고 나섰다. 베이징 등 다른 도시가 AFC를 도입할 때마다 도움을 줬다. 삼성SDS는 중국에 1억2000만달러 넘는 AFC를 수출했다.
미국에서도 '워싱턴 효과'가 시작했다. 처음엔 미심쩍어하던 미국 도시들이 사업 기회를 주고 있다. 미국 기업이 쥐고 있던 시장에 균열이 일고 있다. 에스트래픽은 워싱턴 사업과 규모가 비슷한 다른 주요 도시 AFC 사업 입찰에 참여한 상태다.
문 대표는 "어려운 가운데도 작년 12월 사업을 성공적으로 끝낸 후 고객이 우리를 '부띠크 회사'라고 평했다. 규모는 작지만 혁신적이고, 일하는 것이 대기업 못지 않다는 의미"라고 했다. 에스트래픽은 코로나 이후 SOC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는 미국에서 승부를 건다는 계획이다. 2~3년 내에 미국 AFC 3위 안에 드는 게 목표다.
◇UWB·오픈 페이먼트로 혁신=자회사 서울신교통카드를 통해 서울 지하철 1~8호선 교통카드시스템도 구축·운영하는 에스트래픽은 UWB(초광대역), 오픈 페이먼트 등 신기술 R&D에도 적극적이다. 현재 지하철 요금징수는 NFC 기술을 이용해 카드나 휴대전화를 설비에 갖다대는 방식인데, UWB를 도입하면 갖다댈 필요가 없어진다. 스마트폰의 위치를 10㎝ 이하 오차로 파악함으로써 이용자가 타고 내리고 갈아타는 것을 자동으로 감지해 요금을 징수한다. 지하철역의 구조부터 이용자 서비스가 완전히 달라진다.
문 대표는 "UWB 방식 AFC 장비를 2년째 개발 중인데 올해중 완료할 예정"이라며 "지하철 이용 방식의 일대 혁신이 올 것"이라고 했다. 오픈 페이먼트는 대중교통 요금 지불·정산시스템을 은행, 신용카드 등 금융시스템과 연계해 폐쇄형이 아닌 오픈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해외에서 이미 자리잡은 형태로, 에스트래픽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전세계 교통시스템에 솔루션 넣겠다"= AFC는 미국에 올인한다면 요금징수·ITS(지능형교통시스템) 등 도로교통 솔루션은 동남아·서남아·중남미 등 더 넓은 시장을 겨냥한다. 아제르바이젠, 방글라데시, 콜롬비아 등에 솔루션을 수출했다. 정교하지만 비싼 DSRC(근거리전용통신) 방식의 하이패스 시스템보다 간단하고 저렴한 RFID 요금징수시스템을 수출용으로 개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작년 500억원 수주를 안겨준 방글라데시 프로젝트에도 RFID 방식이 적용됐다.
문 대표는 "작년말 기준 총 수주잔고가 2045억원인데 그중 약 900억원이 해외사업이다. 해외 수주 비중이 절반에 육박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실적도 상승세다. 작년 매출은 1320억원으로, 설립 첫해인 130억 매출의 10배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96억, 324억이었다. 작년 신규 수주는 1920억원으로, 올해는 2000억원 이상을 수주하고 매출과 이익도 20% 이상 높이는 게 목표다. 세계 최초로 LTE-R(철도통합무선망)을 상용화한 자회사 에스티전기통신은 작년 흑자전환에 이어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확대가 기대된다. 자회사 서울신교통카드도 대규모 적자에서 벗어나는 원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로 줄었던 지하철 승객이 빠르게 늘어나는 덕분이다.
◇AI·디지털트윈·MaaS로 진화= 창업 첫 해 직원 30명이던 회사는 250명 이상으로 8배 넘게 늘었다. 회사의 규모만큼 기술의 깊이와 넓이도 더해가고 있다. AI(인공지능)·클라우드를 솔루션에 녹여넣고, 설비 공급이나 시스템 구축 중심이던 사업은 플랫폼 서비스로 진화시켜 가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 SW사업부를 MaaS(모빌리티 서비스)사업부로 확대 개편, 이동 서비스 예약부터 결제까지 지원하는 단일 플랫폼을 완성시킬 계획이다. MaaS 관련해선 현재 전남 전체 대중교통과 연결한 관광 플랫폼 'J-TaaS'를 구축 중으로, 6월까지 끝낸 후 다른 지자체, 기관과도 협력해 시장을 키운다는 방침이다. 도로·철도·요금징수·공항 등 회사의 모든 솔루션과 기술을 녹여넣는다는 구상이다.
문 대표는 "5년 전부터 딥러닝을 활용한 차량 번호인식 기술을 연구한 결과 딥러닝 모델 경량화와 최적화 기술을 확보해 빠른 속도에도 높은 정확도를 갖춘 번호인식 엔진을 개발했다"면서 "번호판이 꺾이거나 훼손돼도 AI가 자동으로 인지하고, 톨게이트 내 차량·사람 검출 기술까지 확보했다"고 했다. 이 기술은 250여 개 전국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한국도로공사 서버에 적용됐다. 현재 구축중인 방글라데시 파드마대교 요금징수 사업을 위해 뱅골어 번호판 인식기술도 개발 중이다.
문 대표는 ""AI와 빅데이터를 방향으로 핵심 기술을 계속 진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모바일, AI 영상인식, GPS(위성측위시스템) 연동을 키워드로 하는 차세대 스마트톨링 시스템 R&D도 시작했다. 앞서 서울 서부간선도로에는 세계 최초로 지하도로용 요금징수설비를 개발해 적용했다. 전파 난반사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경부고속도로·동부간선도로 등 지화화 사업에서 기회가 기대된다.
지하철이나 기차 역사의 사고 위험을 줄여주는 VPSD(상하 개폐식 스크린 도어 플랫폼)도 에스트래픽이 세계 최초로 사업화했다.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시범 설치하고 확대가 기대됐지만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이 역시 위드 코로나로 회복이 기대된다. 문 대표는 "확실히 최초는 외롭고 힘들다. 그러나 시장이 커지면 확실한 보상이 따른다"면서 "2024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파리가 투자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 작년 독일 국제전시회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VPSD가 효자사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무인 전동차 운전 기술 국산화= 철도 운행에 핵심인 신호와 통신 분야에서도 위치가 굳건하다. 현재 경부 고속철도와 수도권 고속철도 연동장치 사업, 인천지하철 검단연장선 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기대를 거는 것은 한 단계 발전된 열차제어와 무선 데이터통신이 가능한 CBTC(무선통신 기반 열차제어시스템)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기관사 없이 무인 전동차 운전이 가능하다. 신분당선 등에는 외산 솔루션이 적용된 상태다.
에스트래픽은 국책 연구사업에 참여해 한국형 CBTC 기술을 확보하고 사업화에 착수했다. 회사는 한국형 CBTC인 KTCS-M(한국형 열차제어시스템-메트로) 시스템을 개발 완료하고 최고 레벨의 안전성 인증을 받은 데 이어 일산선 KTCS-M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에 이어 국내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 대표는 "올해 부산 실제 상용 노선에 한국형 CBTC가 적용될 예정"이라며 "이 사업에 참여해 실적을 확보한 후 국내 도시철도·경전철에 이어 해외 시장에 나가겠다. 이 분야 전통적 강자인 유럽·일본 회사들과 붙어보겠다"고 했다. 트램이나 일반·고속철도에 적용되는 KTCS-2 솔루션도 개발할 예정이다. 철도기술연구원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철도전용 무선통신 장치 LTE-R도 기대를 모은다. 서울지하철, 김포경전철 등에 에스트래픽이 납품한 LTE-R 장비가 설치돼 운영 중이다. LG유플러스와는 LTE-R 차상장치를 위례선 트램에 공급하는 계약을 최근 맺었다. 국내 트램 노선에 LTE-R이 적용되는 첫 사례다. 이 사업을 계기로 해외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역사·공항 스마트화도 이끈다=철도·지하철역사와 공항의 스마트화도 이끌고 있다. 비대면화와 이용자 쾌적성, 안전성 강화가 키워드다. 문 대표는 "미래 도시철도 역사는 무인화로 갈 것"이라며 "디지털트윈 상에 현실과 똑같은 시설물을 구축하고 AI·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해 각종 설비와 시설을 관리하고 관제하는 형태로 진화할 전망"이라고 했다.
회사는 도시철도 통합관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스테이션 사업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공항사업은 인천공항 4단계 프로젝트에 참여해 운항통신, 경비보안, 공항통신시설 등 4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운항통신은 SKT, 공항통신은 KT, 경비보안은 에스원과 손잡았다. KT와 국가재난망 휴대단말기, 철도 LTE-R, LG유플러스와 강릉 ITS(지능형교통시스템), 서울지하철 9호선 통신, LTE-R에 협력하며 통신 3사 모두와 협력한다.
◇"전기차충전 합작사와 협업"= 에스트래픽은 지난해 급속충전 민간사업자 중 1위를 이어온 전기차충전 사업부문을 분할해 SK네트웍스와 합작사 SK일렉링크를 설립했다. 합작사는 SK네트웍스가 주요 지분을 갖고 사업을 주도한다. 에스트래픽의 지분은 현재 16.58%가 약간 넘는다. 장기적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전기차충전 사업을 중소기업이 이어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주유소 사업경험이 있고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과 손잡았다.
문 대표는 "차량인식, 요금지불 등 우리 솔루션이 충전 서비스에 녹아들어가야 한다. 합작사와 기술적인 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판교 제2 테크노밸리에 부지를 분양받아 내년 6월 자체 사옥에 입주할 예정인 문 대표는 "구주를 팔아서 확보한 약 420억원의 자금은 아직 용도를 정하지 않았다. 전세계 교통솔루션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곳에 쓰겠다"고 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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