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500명" 임상병리사들, 복지부 앞 게릴라 시위 나섰다

정심교 기자 2023. 3. 3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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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진행한 게릴라 시위 현장에선 '응급구조사 무면허 업무가 국민 생명을 위협한다'는 메시지의 피켓이 활용됐다. /사진=정심교 기자

"응급구조사의 심전도 검사와 채혈은 병원 밖 현장 이송 단계에서만 하게 하라."

30일 전·현직·예비 임상병리사 500여 명이 충북 오송의 보건복지부 앞에서 게릴라 시위에 나섰다. 앞선 지난 16일, 대한임상병리사협회 임원진 30여 명이 같은 곳에서 펼친 1차 시위 때보다 17배 더 많이 모인 것이다.

이번 시위는 지난 2일 보건복지부가 '2023년 제1차 중앙응급의료위원회'에서 제출한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조정안을 2024년 하반기부터 제도화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항의하기 위한 취지로 기획됐다. 이 조정안에 따르면 응급구조사가 병원 응급실 등에서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업무로 '정맥혈 채혈', '심전도 측정 및 전송 '이 추가됐다. 이에 대해 임상병리사 측은 '의료기관(병원 응급실 등)에서 면허가 없는 응급구조사에게 이들 검사 업무를 수행하게 해주는 건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장인호 대한임상병리사협회장이 이날 무대에서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조정안에 대한 임상병리사의 입장을 언급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이날 장인호 대한임상병리사협회장은 "임상병리사는 정규 대학 교과과정을 거쳐 보건복지부에서 인정하는 면허를 취득한 의료기사이지만 응급구조사는 이런 면허가 없는 자격증 소지자"라며 "만약 이번 업무 범위 확대가 결정되면 결국 불필요한 의료비용 지출 증가의 피해뿐만 아니라 국민의 보건과 의료 향상에도 기여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임상병리사를 양성하는 한국임상병리학과 교수협의회도 입장을 냈다. 육근돌 대전보건대 임상병리과 교수는 "이번 결정에서 잘못된 건 의료기사의 전문성을 왜곡하고, 의사 지도하에 응급구조사도 해당 업무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복지부는 응급구조사 업무 영역의 확장이 현장에 종사하는 응급구조사의 권익 향상을 위한 건지 국민 보건 향상에 도움 되는 결정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신경아 신성대 임상병리과 교수는 "응급구조사는 응급상황 발생 현장으로 재투입되는 게 마땅하다"며 "응급실 내에서 응급처치에 투입할 의료 인력을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공감하며 그 해법은 법적으로 각 업무에 전문성을 가진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응급실 내 추가할 인력으로 응급구조사가 아닌 임상병리사를 배치해야 한다는 견해다.

30일 충북 오송에 위치한 보건복지부 앞에서 전·현직 임상병리사와 임상병리학 전공 학생 등 500여 명이 피켓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이날 시위에 참석한 임상병리학 전공 대학생 등 500여 명은 '응급구조사 무면허 업무 국민 생명 위협한다',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강행 처리, 보건의료체계 붕괴된다'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투쟁"을 연신 외쳤다. '예비' 임상병리사인 연세대 임상병리학과 학생회장 박범준 학생은 "중간고사를 앞둔 중요한 시기이지만 졸속을 자행하는 보건복지부를 규탄하기 위해 용기를 내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씨는 "면허증을 내주는 보건복지부가 면허와 자격증의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며 "임상병리사는 심전도 결과를 정확하게 보기 위해 보수교육도 받고 모여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노푸름 혜전대 임상병리과 학생은 "현재 취업을 준비하며 매년 배출되는 임상병리사 졸업생의 취업 현실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심전도 검사까지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허무하다"고 토로했다. 노씨는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 임상병리사 면허증을 위해 공부하는 우리는 이제 뭘 바라보고 어떤 희망을 품고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가"라며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확대 조정안 가운데 임상병리사 업무를 빼앗는 정책을 폐지할 때까지 학생들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성훈 충북임상병리사협회장이 무대에서 투쟁 의지를 어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현직 임상병리사들의 개탄도 이어졌다. 조성훈 충북임상병리사회장은 "임상병리사는 코로나19 범유행 기간 검체 채취 등 빠르고 정확한 진단검사를 위해 살인적 업무량을 소화하며 'K-방역'의 핵심 주역으로 찬사를 받았다"며 "하지만 잘못된 이번 결과처럼 우리나라 의료현장에서는 여전히 의료기사 업무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위한 업무환경 개선 정책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조대현 경북임상병리사회장은 "의료기사법에서 명시한 병원 내 면허권자인 임상병리사를 제쳐두고 응급이라는 핑계를 명분으로 무면허 의료행위마저 정당화하려는 복지부의 정책은 지금 이 시각에도 현직 임상병리사와 예비 임상병리사(학생)들에게 좌절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고 호소했다.

충북 오송에 위치한 보건복지부 건물 앞에 대한임상병리사협회가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조정안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사진=정심교 기자

한편 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내일(31일)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을 만나 응급구조사 업무 조정안 가운데 임상병리사의 업무 권역을 침탈하는 내용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할 예정이다. 이 협회는 28일 주요 병원 등 의료기관 9곳에 ▶응급실 내에서는 심전도 검사 분야인 운동부하 심전도 검사, 24시간 심전도 검사는 임상병리사의 고유 업무라는 점 ▶의료기관(병원 응급실)에서 응급구조사가 시행하는 심전도 검사 및 정맥혈 채혈은 불법이라는 점 ▶간호사가 심전도 검사를 수행하는 건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점 등을 담은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해당 공문을 받은 기관은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대한응급의학회 ▶대한응급의료지도의사협의회 ▶중앙응급의료센터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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