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겨릿소'와 '소짝집'

세종=박효정 기자 2023. 3. 3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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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서울경제]

산 깊은 강원도에서 농사 짓는 데는 소의 힘이 필요했다. 돌 많고 척박한 땅을 갈기 위해서는 소 한 마리로도 힘에 부쳐 두 마리가 연장을 메고 함께했다. 밭을 가는 도구를 ‘겨리연장’이라 불렀는데 이 연장을 끄는 두 마리의 소를 ‘겨릿소’라고 불렀다.

가난하던 시절 소가 여러 마리 있는 집은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 있는 집과 없는 집 등 몇몇 집이 짝을 이뤘는데 그 이름이 ‘소짝집’이다. 당시 집에서 키우던 소가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소고기를 나눠 먹고 대신 돈을 모아 송아지 한 마리를 소 잃은 집에 사줬다고 한다. 소 잃은 주인의 서운한 마음을 이웃들이 어루만져주던 인정 많은 곳이었다. 이 같은 강원도 홍천의 ‘겨리농경문화’는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이러한 풍습이 이어진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새로운 양수발전소가 건설될 곳이기도 하다. 국가와 지역경제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양수발전소를 유치해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발전소 건설로 삶의 터전은 바뀌겠지만 소짝집을 이뤄 농사를 짓던 따뜻한 정(情)과 전통, 아름다운 문화는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어려운 일을 짝을 이뤄 해낸다는 점에서 양수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는 겨릿소를 닮았다. 전력 수요가 적은 밤에 원자력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로 양수발전소에 물을 끌어올렸다가 전력 수요가 많은 낮에 물을 방류해 전력을 생산한다. 원전과 양수발전은 자원이 없어 메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지던 황무지인 국내 전력 공급 시장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에너지 짝꿍 노릇을 충실히 해왔다.

양수발전소는 친환경 발전소이자 최첨단 에너지저장시스템, 최고의 성능 좋은 배터리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아지게 되면 간헐적으로 전력계통 안전에 적신호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기도 하다. 온실가스 배출이 없고 환경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이유다.

우리나라에는 총 16기의 양수발전소가 있고 홍천과 포천·영동에 6기의 신규 양수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양수발전소가 들어설 지역을 살펴보면 첩첩산중에 위치해 ‘가도 가도 그 자리’라는 뜻의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와 소백산맥 천마산 자락에 먹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 ‘먹뱅이’로 불리던 영동군 양강면 산막리가 있다. 백운계곡 등 수려하고 빼어난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와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도 포함된다.

이곳들은 수많은 분의 삶의 이야기가 서린 곳이다.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미풍양속, 전통을 오롯이 간직하고 계승하면서 신규 양수발전소를 건설하고자 한다. 지역 주민 여러분의 말씀을 귀담아들으면서 마음을 함께하고 국가 에너지 안보를 위한 좋은 이웃이 되고 싶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더 잘 사는 지역이 돼서 인심 좋고 웃음꽃 피는 지역이 되도록 양수발전소가 힘을 보내고자 한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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