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규제·낮은 생산성에 발목 … 투자순유출 5년만에 두 배

김정환 기자(flame@mk.co.kr), 송광섭 기자(opess122@mk.co.kr) 2023. 3. 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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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투자 年 77조원 한국 빠져나가 역대 최대
기업규제 OECD 38국중 33위
생산성도 29위…韓이탈 가속
K칩스법 최저세율 17% 발묶여
반도체 대규모시설투자 한계
日·獨등 30개국 최저세율 없어
작년 총투자 증가율 -0.8%

◆ 기업투자 엑소더스 ◆

최근 '장시간 근로' 논란으로 근로시간제도 개편을 담은 노동시장 개혁이 답보 상태에 빠진 가운데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953년 만들어져 70년 묵은 경직적인 주 단위 연장 근로시간이 산업현장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가뜩이나 뒤처진 노동생산성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역대 최대인 591억3400만달러의 기업 투자자금이 한국에서 이탈한 것은 노동시장 경직성 등 갈수록 떨어지는 국내 투자 매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30일 한국생산성본부 데이터를 보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0년 기준 41.9달러로 OECD 29위에 그쳤다. 미국(73.4달러·7위), 독일(67.7달러·11위), 일본(48.1달러·21위) 등에 비하면 크게 뒤처지는 성적표다.

이날 국회가 본회의에서 K칩스법을 통과시키며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8%에서 15%(대기업 기준)로 높아졌고, 정부가 최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15개 국가산업단지 지정 계획을 밝혔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에 대한 투자 온도가 식고 있는 원인으로 노동시장 경직성과 비호의적인 세제 환경 등을 손꼽는다. 한국이 세계 2위 수준의 연구개발(R&D) 투자 역량을 갖고 있지만 노동생산성이 약하고 기업 경영 환경도 좋지 않아 기술력이 실제 국내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세계지식재산권기구에 따르면 민간에 대한 정부 규제 정도를 지수화한 한국의 규제환경지수는 지난해 67.7점으로 OECD 38개국 중 33위에 머물렀다.

한국은 기술력 부문에서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행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한국에서 집행된 R&D 자금은 2020년 기준 788억600만달러로 세계 5위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용 비중은 4.8%로 이스라엘(5.4%)에 이어 세계 2위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산업본부장은 "R&D 투자가 상용 기술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핵심 기술에 대한 세제 지원을 늘리고 기업 규제를 추가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화 고려대 특훈교수는 "인구가 줄더라도 기술 혁신을 통해 성장률 하락을 막을 수 있다"며 "국내 기업의 복귀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투자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입지 여건을 개선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칩스법에 대해서도 국내 최저한세율이 높아 투자 효과가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저한세는 시설투자 세액공제 등 정부가 법인세를 깎아주더라도 반드시 내야 하는 최소한의 세금으로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10~17%, 중소기업은 7% 세율이 적용된다.

예컨대 과세표준 1조원인 대기업이 현행 법인세 최고세율 24%를 적용받아 산출세액 2400억원이 나왔고, 반도체 시설 투자로 1000억원 세액공제를 받는다면 최종적으로 내야 할 세금은 1400억원이다. 하지만 이 기업에 최저한세율(17%)을 적용하면 세액공제를 받았음에도 납부해야 할 법인세는 1700억원이 돼 300억원만큼 세금 혜택을 볼 수 없게 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법인세를 신고할 때 최저한세를 적용받는 기업은 5만1563곳(2021년 기준)으로 1년 새 77.7% 급증해 역대 가장 높은 수준까지 늘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 투자를 촉진하고자 한다면 최저한세율을 인하하거나 폐지해 세액공제 확대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OECD 38개국 가운데 최저한세를 적용하는 나라는 한국, 룩셈부르크,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 8개국에 불과하다. 반면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30개국은 최저한세를 운용하지 않으면서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날 재계는 K칩스법 통과에 대해 환영한다는 뜻을 내비치면서도 추가 대책을 주문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공식 논평을 통해 "정부와 정치권이 첨단산업 육성과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위해 더욱 과감한 지원 대책을 추진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국내 투자 온도는 영하권을 가리키며 세계 금융위기 때보다 상태가 안 좋아졌다. 한은 국민계정 데이터 분석 결과 지난해 국내 투자(총고정자본형성) 증가율은 -0.8%로 1998년 외환위기(-20.5%) 이후 네 번째로 저조했다. 총고정자본형성은 정부와 민간에서 단행한 설비·건설·지식재산물 등 투자로 한 나라에서 얼마만큼 투자가 이뤄졌는지 측정하는 지표다.

[김정환 기자 /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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