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시간 일하고, 번호판 사용료 개인 계좌로 요구”
■"지입제 피해사례 총 790건 접수"
국토교통부는 '지입제 피해 집중신고 기간' 운영 결과, 모두 790건의 피해사례가 접수됐다고 오늘(30일) 발표했습니다.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17일까지 26일 동안 피해 화물차주의 신고를 취합한 결과인데요.
국토부는 212건은 각 지자체에 사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탈세 의심사례 97건은 국세청에 세무조사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입니다. 또, 불법이 의심되는 사례 32건은 경찰에 수사 의뢰할 예정입니다.
"우리 사회 만연한 빨대구조를 퇴출하는 것이다. 빨대 퇴출이다. 국가면허인 번호판을 장사 또는 그걸 통해서 수익 중간에서 뽑아가는 이 구조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손을 보겠다는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2023.02.06.)
국토부는 지난 60년 동안 추진하지 못했던 화물자동차 지입제를 개혁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빨대'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는데요. 도대체 지입제가 뭐길래 그러는 걸까요?
보통 화물차주가 자기 돈으로 산 화물차를 운송사 이름으로 등록해 영업용 번호판을 얻은 뒤, 일감을 받아 화물을 운송하는 식인데요. 화물차주는 영업용 번호판을 얻기 위해 운송사에 돈을 내고, 이른바 '관리비' 명목으로 매달 수수료도 지급합니다.
이런 관행이 굳어진 건 정부가 화물차의 과잉 공급을 막기 위해 운송사업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새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운송사로부터 기존에 허가된 번호판을 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사라진 취득세…17년 이어진 악연
취재진과 연락이 닿은 화물차주 임 모 씨는 지난 2006년 트럭을 운송사를 통해 신규 등록을 했습니다. 취·등록세를 대신 내준다고 했는데 당시 520만 원 정도를 보냈다고 합니다. 번호판을 받는 데 별도로 3백 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 취득세 체납으로 구청으로부터 압류가 들어왔습니다. 당시 운송사 임원이 취득세를 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임 씨는 운송사에 항의했지만, 운송사는 임원 개인 통장으로 입금한 임 씨 잘못이라며 책임을 임 씨와 임원에게 돌렸고, 해당 임원은 돈을 돌려주지 않고 회사를 나갔습니다.
임 씨는 구청에 체납 세금을 냈고, 운송사 측에 그 금액만큼 관리비를 내지 않고 버텼습니다. 하지만 차량을 바꾸려고 하자, 운송사는 관리비가 미납됐다며 이걸 납부하지 않으면 회사 명의로 등록된 차량을 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입제 구조상 회사 이름으로 등록된 차량이기 때문에 차를 바꿔 일해야 할 임 씨는 회사의 억지 주장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합니다.
관리비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내고 재계약을 하려고 하자, 앞으로는 관리비를 연체하면 연 24%의 이자를 내야 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넣어야 한다고 운송사는 주장했습니다. 생계를 이어가야 할 임 씨는 이 조건을 받아들여 재계약을 합니다.
기자: 왜 이런 계약서 쓰시는 거예요?
임 씨: 기존 회사에서 번호판을 정리하고 나오면, 다른 번호판을 살 여유가 안 됩니다. 밀린 공과금 정리 다 하고, 나와서 새로 번호판을 사려면 현실적으로 4~5천만 원 있어야 합니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소득금액증명원을 받아도 1년에 저희 연봉으로 잡히는 게 1,600만 원 정도밖에 안 잡힙니다. 대출 자체가 안 돼요. 당장 번호판을 뺏겨버리면 저는 생계를 이어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기자: 차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는 없나요?
임 씨: 회사에서 도장을 찍어줘야 해요. 회사에서 서류작업을 해줘야 차를 사고팔 수 있거든요. 어차피 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중략)…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요. 왜? (회사에서) 나오면 지금 금리에 차를 살 수 있는 형편도 안 되고, 배운 건 이거고 먹고 살려면 그냥 이 짓밖에 못 하니까 이거라도 하려면 거기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 거죠."
■하루 20시간 근무, 번호판 사용료 개인 계좌로 요구
임 씨처럼 지입제에 문제가 있다며 국토부가 한 달 동안 피해 사례를 접수했는데, 이런 피해 유형들이 대표적입니다.
▲번호판 사용료를 요구한 사례가 424건으로 53.7%, ▲지입료(관리비)를 받고 일감은 제공하지 않은 사례가 113건으로 14.3%, ▲화물차량을 대폐차하는 과정에 동의비용으로 '도장값'을 받아 챙긴 경우가 33건 4.2% 등이었습니다.
국토부는 사례 5개도 공개했습니다. 이 가운데 '노예계약'이란 단어도 눈에 띕니다.
집중 출하 기간 하루 18~20시간 동안 수송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계약을 강요하고,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더 가혹한 내용을 추가하겠다고 화물차주를 겁박했다는 내용입니다.
운송사의 계약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던 임 씨 사례와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계약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토부는 해당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할 예정입니다.
번호판 사용료를 운수회사가 아닌 운수회사 대표의 아들 통장으로 입금하라고 한 사례도 있습니다. 계약서에 없는 3천만 원 정도인데요. 국토부는 국세청에 세무조사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그 외에 위수탁계약서를 차주에게 주지 않고 눈으로만 열람을 허용하고, 자동차등록원부에 현물출자자로 화물차주를 기재하지 않은 사례. 현물출자자 미기재 민원을 제기한 화물차주에게 계약해지 통보를 한 사례 등도 있었습니다.
국토부는 화물차주에게 일감은 제공하지 않으면서 관리비만 받아 챙기는 '전문지입회사'를 업계에서 퇴출시키겠단 계획인데요.
국토부는 우선, 지입 계약을 할 때 차량을 운송사 명의로 등록하던 걸 차량 실소유자인 차주 명의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박진수 기자 (realwa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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