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이름을 부른다는 것
숫자에는 영혼이 없다.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100만명이 죽으면 그저 통계 수치일 뿐"이라고 했을 정도다. 1명이 죽으면 우리는 그 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의 고통을 느끼고 아파한다. 그러나 100만명이 죽었다고 하면 잠깐 놀랄 뿐, 금세 무덤덤해진다. 100만이라는 숫자 속에 개개인의 고통은 묻히고 만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애덤 스미스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1억명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고 해도 그 현장을 보지 않은 사람은 코를 골며 매우 편한 마음으로 푹 잘 것"이라고 했다. 숫자는 영혼의 끝 한 자락조차 담을 수 없다.
그러나 이름에는 영혼이 있다. 우리가 죽은 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를 때, 그 영혼은 숫자 속에서 깨어난다. 일어나 움직인다. 우리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그가 생전에 전장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몸을 던진 이였다면 더욱더 그럴 것이다. 그의 희생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55명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컥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옛말에 한 생명은 하나의 우주라고 했다. 한 생명이 소멸할 때마다 한 우주가 소멸한 것이다. 그 우주의 소멸이 남아 있는 우리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희생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서해수호의 전사자 55명이라는 숫자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무시로 그들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게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15년 전 미국을 여행했을 때였다. 작은 시골 마을에도 한국전쟁 전사자의 명패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돌에 새겨진 이름을 수십 년째 불렀을 것이다. 왜 태평양을 건너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서 목숨을 던져야 했는지 이유도 물었을 것이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그 답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그 가치를 지킬 의무가 있다. 이 땅에서 산화한 이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우리는 그 의무를 기억해야 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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