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어느 평론가의 변

2023. 3. 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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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평론가 A씨가 누리꾼들의 눈총을 산 일이 있다. '웅남이'라는 영화의 한줄평에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웅남이'는 유명 개그맨 박성광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A평론가에 대한 비난의 핵심은 영화판의 텃세가 심하다는 것이다. 개그맨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영화평을 박하게 줬다는 건데,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약 16년 전,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개봉했을 즈음이다. 그때는 평론가가 아니라 감독과 제작자의 혹평이 시발점이었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거의 판박이였다.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매주 '유머 일번지'를 보며 울고 웃었던 세대들이라 심형래에 대한 충성도는 꽤 견고했다.

여기에 한 문화평론가가 '디 워'의 애국주의 마케팅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공방에 더 불이 붙었고,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당시로선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그렇게 2007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디 워' 논쟁은 영화전문가들의 권위가 추락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평론가가 되고 싶어서 2003년부터 영화과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던 나는, 그러니까 그때라도 다른 직업을 알아봤어야 했다. 30대 초반에 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까지 영화판 언저리에 기생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긴 하지만 평론은 내가 하는 '일' 중 하나지, 온전한 '직업'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간 평론가들이 해왔던 방송이나 영화 행사 진행 등은 영화전문 기자에 이어 연예인이나 그에 준하는 인기 유튜버들에게 대부분 자리를 내어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평론가의 한줄평에 뜨겁게 반응해주는 이들을 보니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든다. 평론가의 글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었던가.

다만, A평론가는 감독에 대한 편견이 아니라 '웅남이'의 낮은 완성도를 두고 그런 글을 남겼으리라고 본다. 나 역시도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허술한 각본에 40억원을 투자받다니 오랫동안 절차탁마하면서 시나리오를 준비해 온 영화감독들은 또 한 번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까 씁쓸했다. 물론, '웅남이'의 감독이나 배우들도 열정이나 노력 면에서 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들보다 운이 좋았던 반면 결과가 아주 많이 나빴을 뿐이다.

어쩌면 오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평론가들은 늘 예술 운운하면서 상업영화의 별점을 낮게 주거나 결점만 끄집어내는 존재라는 편견 말이다. 만약 그런 것이 수입이나 명성에 도움이 되었다면 앞다투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벌써 '디 워' 이후에 그런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 영화평론가는 집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관점을 기준으로, 각자의 성향대로 말하고 쓸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일반 관객들과의 차별성도 많이 사라졌다. 순수한 관객들만이 영화판을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윤성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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